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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esta/2016 Shanghai

[상해여행] 3. 출발 전

by 여름햇살 2016.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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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이 아니라 내 생에 이보다 허술하게 여행을 준비한 적이 없었다. 과연 출국 할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덕였던 나의 상해여행.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기도 하다(물론 음식도 한 몫 하셨다)

#1


22일. 외근을 나가서 열심히 문서를 보던 중 싸한 기운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이날까지도 중국비자를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뿔싸 하는 심정에 일이고 나발이고 내팽겨치고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했다. 2인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는 별지비자는 하필 8월 15일부터 9월 초까지 발급이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단수비자를 발급 받아야했고, 두명의 비자 가격이 수수료 포함해서 153,000원(개인이 하면 1인당 70,000원 인 듯 했다)이었다. 와.. 이 중국 도둑놈의 새끼들.


몰랐는데 중국 비자를 발급 받으려면 여권과 증명사진 1매가 필요했다. 여행사로 황급히 여권과 증명사진을 등기로 붙였다. 엄마에게도 주소를 알려주며 바로 보내달라고 메세지를 넣었다. 시간이 아슬아슬하다고 여행사 직원이 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9월 1일에 수령할 수 있었다. 간이 서늘.

#2

정확히 여행 가기 일주일 전에 짐을 싸두었다. 이때 러프하게 싸두자는 생각으로 좀 챙겼던 것인데... 너무 바빠서 결국에는 그대로 캐리어를 이끌고 공항을 가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였냐면 나는 3일 내내 같은 옷을 입고 여행을 했다.(미니멀리즘 끝판왕) 여벌의 옷이 한 세트 있었으나, 4일째에 한국으로 들어올때 깨끗한 옷을 입고 싶어서 남겨두었던 것이다. 이런 여행 처음이야..



나의 이상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세안용품 챙기기. 호텔에 다 있는데 굳이 다 챙겨간다. 더 웃긴 건 호텔것은 다시 가지고 와서 그 다음 여행지에 챙겨간다. 그리고 그 호텔것은 안쓰고 가져간것을 쓰고 또 챙겨온다. ...... 나 좀 또라이인듯. 집에 쌓여있는 샘플과 함께 지난 대만 여행때 챙겨왔던 칫솔 등도 이번에 챙겨넣었다. 왜 이러나 몰라...........  (근데 이번에는 안 챙겨왔다. 중국 것은 가지고 오고 싶지 않았다.......)


엄마랑 얼굴에 붙일 팩과 화장품 샘플들을 들이 부었다. ​정리따위 엄슴.


이렇게 파우치 하나 완료.​


그리고 운동화와 운동복. 헬스장과 수영장(이건 엄마를 위해)이 있는 호텔을 굳이 예약했기에 악착같이 챙겼다. ​


그리고 모자. 여행가방에 처박아 두었더니 이렇게나 구겨져 있었다.... 울면서 열심히 펴보았더니​



그나마 모자다워졌다. 상해는 위도가 낮으니 필요할것 같아서 악착같니 챙겼지만 결국 사용하지 않았다.​ 엄마가 계속 양산 씌어줌. (알겠어요.. 관리 할께요.. 한다니깐요........)


그리고 여행때마다 챙기는 쇼퍼백.​


선글라스.

이렇게 중간 정도 챙겨 놓고 나중에 짐 싸야지~ 했다가 진짜 말도 안되게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핸드폰 충전기 조차 냅두고 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 나름 꼼꼼하게 물건을 잘 챙겨가는 편인데, 아니 너무나도 지나치게 챙겨가는게 문제였는데.. 이번엔 필요한 것 조차 냅두고 가다니... 

#3

출발 하루 전. 이날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그래서 발표 준비로 거의 밤을 샜다.


준비 안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병리학책까지 뒤져가며 밤에 공부를 했다. 이렇게 공부 할 줄 알았으면 학창시절에나 열심히 해서 의대를 갈 걸 그랬다. 내가 뭘 읽고 외우는 건지 알수 없는 지경에 이른 벼락치기였다. 새벽에 암공부하다가 암걸릴뻔. 


나는 지독한 무대공포증이 있다. 남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래서 첫 잡 인터뷰는 진짜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망쳤었다, 사장이 면전에 대고 호통을 쳤을 정도였다) 약국에서 두 종류의 약을 사서 갔다. 처음 먹어보았는데, 결론적으로 둘다 도움이 안 됐다. 여전히 나는 긴장했고, 준비한 것만큼 잘하지 못했다. 그런 못난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


그 와중에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사진으로 남겼다. 내 심정 만큼이나 답답한 풍경이었다.

미팅은 열시가 다되어서 끝났다. 엄마도 그 시간에 맞추어 올라오는 버스를 타셨고, 나는 택시를 타고 고터로 가서 엄마를 픽업했다. 다음날 아침에 바로 공항을 가야하는데도 엄마는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다. 호텔에서 중식코스로 실컷 먹고 왔던지라(팀장님이 김영란법 시행되기 전 마지막 만찬이니 맛있게 먹으라는 농담도 하셨지)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효도하는 셈 치고 주시는대로 먹었다. 발표로 자괴감을 맛본 뒤에 엄마의 무한한 사랑으로 힐링 받는 시간이었다.​ 복숭아 먹다가 눈물날뻔.


유기농 재배법을 사용하는 무슨 독특한 과수원에서 재배한 것이라 외관이 이렇다고 한다. 못생겨도 맛은 꿀맛이었다. 모든 복숭아는 맛있는 듯 하다. 


맏며느리 우리엄마의 손크기. 내가 좋아하는 오쿠 계란 한가득, 옥수수 여덟개, 오징어를 다섯마리를 구워오시고 복숭아 열개, 땅콩까지 삶아 오셨다. 엄마.. 엄마는 코끼리를 키우는 중이 아니얌.............

그간의 피로와 긴장이 한 순간에 풀리면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이 감겼다. 짐 챙기고 자라는 엄마의 경고를 뒤로하고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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