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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

by 여름햇살 2016.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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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멍청하게도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기 직전까지  팀버튼의 후속작인 줄 알았다. 대기석에 있는데 옆 사람들이 이게 팀 버튼 영화가 아니라고 대화하는 것을 듣고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전에 그 어떤 선입견도 갖고 싶지 않아서 기사나 댓글조차 안 읽는 내 성격탓이었다. 그럼에도 전작을 꽤 재미있게 보았던 나는 실망은 커녕  더 재미있게 영화를 보았다. 그건 아마도 첫째 내가 팀 버튼의 팬이 아니고 둘째 이걸 볼 당시에 내가 고민하고 있던 주제가 영화의 주제와 맞물렸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인생에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철학적으로 다루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쌍수를 치켜드는 편인데, 그 주제가 뻔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래동화마냥 뻔하다. 과거를 바꾸려 들지 말고, 현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세상에 마냥 나쁜 사람은 없다는 아름다운 가치관을 전달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내는 '여'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를  강조한다. 그런 뻔한 내용이지만 아름다운 영상과 배우들의 연기는, 잊고 있던 그 뻔한 가치들을 관객들에게 환기시켜주기에 충분히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좋아하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구성으로 내용도 흥미로웠다.


이때 나는 한창 유학을 가느냐 한국에 남느냐를 고민하며 쓸데 없이 현실에 불만족해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몇 차례 고민과 함께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많이 공감한다. 뭘 선택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내린 결론은 삶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 정답이 없으니 무엇을 선택하든 자유이다. 다만 그 선택에 책임은 져야한다.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 삶을 선택하면 되고,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면 충분한 삶을 산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그 어떤 선택지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인생이란 것이 단 한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은 또 아니니, 소심해져서 덜덜 떨 필요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총합이니 말이다. 처음으로 삶이 어렵지만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때는 삶의 불확실성때문에 삶이 더 재미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꼭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가정이 부유하거나, 똑똑해서 학문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한 사람들만, 혹은 낭만에 빠져있는 소설가와 시인들만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고, 생각이 조금씩 깊어지니 예측불가능한 것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난 겁이 많아서 지독하게 계획적인 삶, 예측 가능한 미래에서만 안정함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더 신선하다. (나이가 드는 것이 이렇게나 좋다)


앨리스의 여정도 우리는 가늠할 수가 없다. 출항 후에 바로 태풍을 만나 침몰할 수도 있고, 당당한 그녀의 기백으로 대성공을 이룰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더 설레이는 것 같다. 나의 미래도 다른 사람의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우리는 설레이는 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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