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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

by 여름햇살 2017.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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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국내도서
저자 : 테드 창(Ted Chiang) / 김상훈역
출판 : 엘리(북하우스)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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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컨택트를 보고난 뒤, 원작이 몹시 궁금해져서 읽게 된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을 나는 단편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육성으로 '미쳤네 미쳤어' 라는 말을 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써낼 수가 있을까? 그리고 왜 진작 이 소설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까 라고 매우 아쉬워했다. 작가의 지적인 상상력으로 단단히 무장된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개호들갑 떨어서 지인의 3명이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ㅋㅋ)


 도서관에서 한 달을 기다려 대여하게 된 이 책. 나는 당연히 단편 중 '네 인생의 이야기' 부터 읽었다. 소설과 영화는 내용과 결말은 조금씩 다르지만, 둘 다 각자의 매력으로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에서는 소설이 압도적으로 완승(?)을 했다. 영화는 헵타포드와의 교감에 조금 더 초점을 두었다면, 소설은 언어와 물리학적인 관점에 중심을 두어 지적인 재미를 증폭시켜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금 어렵게도 느껴졌지만(처음 들어보는 문자소같은 단어들이 나오는바람에, 간만에 한국어책 읽으면서 사전 찾으며 읽어봄), 그러한 성가심을 한번에 날려버릴 만큼 소설은 매우 흥미로웠다. 페르마의 원리와 뉴턴의 물리학의 비교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 점이 이 소설의 정점이 아닐까 감히 말한다. 


수능 공부를 할 때에 어느 모의고사의 언어 영역 지문 중 인식에 관한 지문이 실렸었다. 우리는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 색깔로 구성되어 있다고 어렸을때부터 배우기 때문에 무지개가 7가지의 색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무지개의 색을 30가지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의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었기에 아직까지 기억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이 것은 무지개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그 만큼만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 말인 즉,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 내가 인지하는 세상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소설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의 현상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는 물리학(헵타포드들에게도 물리학이라고 불리울지는 모르겠지만)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다른 차원의 기술과, 그리고 그 차이들을 반영하는 소통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 소설의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의 아이디어에 뇌가 춤을 추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아무리 극찬을 해도 모자라) 그런 관점의 차이는 시간의 인식에도  반영된다. 외계에서 온 헵타포드는 시간이 선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느끼지 못하고,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사실 이 부분은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지 않았으면 100%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놀란 만세) 그들의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문자 언어인 헵타포드 B였고, 그 언어를 이해한 주인공 루이스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아니 그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과거-현재-미래가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모든 시간대는 동시대에 존재할 뿐이었다. 


 내가 소설에서 이 내용을 접했을때 떠 올랐던 생각은 비선형적인 시간의 형태였다. 시간이 비선형적이라는 의미는 나의 미래는 아직 내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존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현재와 동시에 과거가 있고 과거와 함께 미래가 있다. 과거의 내가 현재가 되고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도 있고 현재의 나도 있고 미래의 나도 모두 존재한다. 미래가 시작 시점부터 이미 정해져있다는 개념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명리학과 비슷하다. 명리학이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난 사주(연, 월, 일, 시) 에 의거하여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인데, 이 학문에 의하면 사실 사람은 운명론에 가까워서 한 사람이 태어나는 그 순간에 그는 그의 미래와 함께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시작과 함께 끝이 동시에 존재한다. 책을 읽으며 헵타포드 B의 언어의 개념을 처음 이해했을때, 이러한 명리학이 떠오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명리학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자 나는 우리의 세계가 어쩌면 지금과 다를 수도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상상했다. 우리의 현대 문명은 서양에서 발달한 철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쌓아 올려 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만약에 아시아쪽에서 좀 더 빨리 과학을 발전 시켰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명리학같은 학문이, 그리고 기혈진액으로 설명하는 한의학(혹은 중의학)이, 서양의 철학,과학과 다른 관점에서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동양 철학과 과학이 만약 더 빠르게 발전하였다면 우리의 세계는 지금과도 같았을까? 빛의 진행방향이 뉴턴의 역학으로 설명하는 이와 페르마의 원리로 설명하는 이가 서로 다른 세계를 만들었듯이, 관점의 차이로 사실 우리 또한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였다. 


서양의 과학을 생각해보면 물질은 가장 작은 성분들의 합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반면 동양의 과학은 존재하는 물질은 그 특유의 에너지(기 혹은 기운)가 있고 그것이 순환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가장 작은 성분들의 합이 물질이라고 생각했던 서양 과학은 원자도 발견하고 그보다 더 작은 소립자도 발견하였다. 사실 지금인 이게 너무나도 정설이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원자라는 개념도 소립자라는 개념도 생겨난 것은 아닐까. 반면 흐르는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믿는 세상에서는 원자와 소립자는 없고 에너지라는 것이 당연히 존재하는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실제로 한의학만 존재하던 옛시절에 우리에게 '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여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원자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렇게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 주변의 당연하게 여겼던 그 모든 존재와 현상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것이 유발 하라리가 말한 호모 사피엔스의 상상의 능력인가보다. 


보통 인문학 책을 읽었을 때 이런류의 영감을 받는데, 이번에는 지적인 아이디어로 꽁꽁 뭉친 소설로 제대로 자극이 받았다. 올해 읽은 책 중 최고는 이기적 유전자(1월에 읽었음에도 바로 결단내리는 이 급한 성격) 일꺼라 예상했는데, 이제는 둘 중에서 우열을 가르기 힘들 정도다. 이래놓고 5월쯤에 인생책 만났다며 또 호들갑 떨겠지만.



네 인생의 이야기만 썼지만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이 소름돋을만큼 재밌다. 진심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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