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습관을 이기는 작은 책
국내도서
저자 : 페트르 루드비크(Petr Ludwig) / 김유미역
출판 : 비즈니스북스 2018.08.24
상세보기


백수생활이 나태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서 서점을 뒤적이다 발견하고 읽은 책.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그랬다. 예전에 읽었던 '미루기 습관은 한권의 노트로 없앤다' 가 훨씬 나에게 더 와닿았다고나 할까. 


2018/07/21 - [일상/불친절한 감상자] - 책 미루기 습관은 한권의 노트로 없앤다


사람들은, 아니 나는 항상 일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고 게으른 나의 마음가짐,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멍청하게도 미루는 습관을 극복하려면 뭘 하면 될까, 하며 자기 계발책을 뒤적이는데 이건 감기로 인해 열이 난다고 해열제만 주는 꼴이다. 문제의 접근 방식이 잘 못된 것이다. 게으름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라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왜 게으름을 피울까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게으름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문제를 올바르게 접근 할때에만 올바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게으름을 각종 생산성을 높이는 어플을 깔고 마음을 다 잡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게 만드는 이유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 그걸 지금 미루더라도 당장 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벼랑끝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구조 요청은 나중에 하지뭐 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루는 것은 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위해서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봐도 내일 회사에 짤리는 것은 아닌 것이다. 둘째로 하기가 싫은 것이다. 공부는 졸음을 참아가며 밤새워 하기 힘들지만, 중독적인 게임은 밤새워 하면 잠도 오지 않는다. 즐겁고 재미있으면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면 즐겁고 재미있는 일만 좇으며 살면 될까? 그 것은 극단적인 질문으로 역시 접근법이 틀렸다. 1.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2. 그것을 지속가능한 방법을 연구하여 3. 즐겁고 재미있게 해보자는 것이 내가 내린 정답이다. 설거지나 청소처럼 하기 싫지만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들도 있다. 그렇다고 평생 회피하며 살 수 없듯이, 이왕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것을 귀찮게 여기지 않게 여기는 마음가짐의 변화가 첫번째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탐색이 두번째요, 그 것이 인생의 주가 되게 하며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탐구가 세번째인 듯 하다. 


작년의 나는 마음가짐을 고쳐먹는데 노력을 했고, 올해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탐색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지금의 나는 그 것을 하며 어떻게 삶과 일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간만의 백수 생활인데도 밑도 끝도 없는 게으름이 사라졌다. 나태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회사생활때보다 삶의 만족감이 높아진다. 결국 인생은 방향의 문제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게으르다고 나를 채찍질만 할 것이 아니라.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국내도서
저자 : 디아
출판 : 웨일북 2018.05.11
상세보기



지금은 다시 본래의 습성인 나로 돌아와 게으름을 피우고 있지만, 2017년 하반기에 한창 명상에 관심을 가지며 짧게나마 매일 수련을 해가던 때에 있었던 일이다. 나를 지금의 회사로 불러오셨던 분이 여태 해오던 일과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회사를 그만두셨는데, 회사 근처에 방문할 일이 있어 들렀다가 내 얼굴을 잠깐 보고 간 적이 있었다. 퇴사하시기 전에 부탁했던 것을 잊지 않고 챙겨오신 그 섬세함에도 감동을 받았고, 퇴직 이후에도 인연이 끊기지 않은 것도 좋았던 짧은 만남의 순간이었다. 그러다 이상한 경험을 했다. 건네주신 선물을 받고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당황했고 상대방도 적잖이 당황했다. 왜 우냐고 묻는 상대방에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난다고 대답했다. 찔끔이 아니라 눈물이 폭푸수마냥 흘러내려서 오가는 사람이 많았던 회사 로비에서 나는 어쩔줄을 몰라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지인은 "이 이야기 안하려고 했는데.." 라고 하면서 최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셨다. 한달 전에 친 오빠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너무 젊은 나이라 충격도 많이 받았고 상처도 많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힘든 것은 자기인데 왜 나보고 우냐고 같이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과 내 마음이 공명했다는 것을. 올해 요가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아니라 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런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내가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 배움은 내게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다가 왔으리라.  그래서 조금 더 소중한 경험이었다.


과거의 나는 내 몸은 사라지고 생각만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추장스러운 육신에서 벗어나 내 뇌만 컴퓨터에 연결되어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순식간에 지식을 검색하고 당면한 업무를 해결 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를 깨닫는다. 몸이 사라지고 뇌만 남게 된다면, 저장할 기억도, 검색할 지식도, 당면할 업무도 없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몸을 하대하며 한 평생 살다가, 크게 아프고 나서야 몸의 중요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몸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가지고 난 다음에야 나의 마음과 몸이 하나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 의식을 갖고 난 다음에야, 몸을 통해서 내 마음의 상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내 마음이지만 나도 모르겠다"는 통속적인 사랑 노래 가사같은 상황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몸을 관찰하다보면 내 마음이 드러났다. 긴장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는 호흡을 제대로 쉬고 있지 않았다. 가끔씩 멈추고 있는 내 자신도 보였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에 긴장을 할 때에는 어김없이 어깨가 딱딱해지고 위로 올라가 있었다. 스트레스 많은 상항에서느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에는 몸도 같이 처졌다. 평상시 잠을 많이 자지 않는 나이지만 이럴때에는 꼭 늦잠을 잤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잠깐의 그런 경험을 하고난 후라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은 피부로 다가왔다. (물론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몸'의 체험에 대해서는 '머리'로 이해하려는 내가 불쑥불쑥 나타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나도 요가와 마음수련을 통해서 본질의 나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바라는대로 산다기 보다 '내가 만들어낸 나의 욕망'이 이끄는대로 살아간다. 나라고 착각하는 그 '욕망'에 따라가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게 아닌데 라며 고통스러워한다. 삶이란 것은 진짜 나와 욕망을 분리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고로 내일 새벽에는 꼭 요가를 수련하러 가야겠다.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국내도서
저자 :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Aleksandr Isaevich Solzhenitsin) / 이영의역
출판 : 민음사 2000.04.30
상세보기



독서 모임 선정 도서로 읽게 된 책이다. 나는 고전은 흥미로워 보이는 책만 골라 읽는 펴느로, 즉 다시 말해 거의 읽지 않는다(!). 이 책은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과 '청춘의 독서' 에서 언급된 책이라 제목도 알고 있었고 실제로 읽고도 싶다고 생각을 했던 책이었다. 그러나 나의 게으른 성격으로 책 읽기를 하루 이틀 미루다가 이렇게 우연히 강제로(?) 읽게 되었다. 7월은 게으름을 피우느라, 이 얇은 책을 독서 모임 당일까지 완독하지 않아 좀 아쉬웠다.(읽기만 해도 수감생활을 하는 기분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솔제니친이 스탈린 시대에서 억울하게 수용소 생활을 한 이후에 쓰여진 책이다. 주인공 슈호프의 수용소 안의 비참한 삶의 하루를 그려내며, 현실을 고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혁명과 그 시대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로 글을 읽었다면 러시아의 역사에 비추어 해석을 했을테인데, 무지한 나라서 역사와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감상만 남았다. 


첫째가 나는 수감생활을 잘 견딜 수 있었을까이다. 책에서 나오는 수감생활은 비참하기 그지 없다. 허기를 면할 수 없을 정도의 터무니없는 음식들, 그리고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추위, 그리고 그 속에서 해야 하는 노동의 양. 이런 수용소의 생활의 묘사를 읽으며 내가 슈호프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나는 수용소의 생활을 잘 버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이런 말에 독서 모임 사람들은 슈호프가 여기에 있었다며 장난을 쳤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책을 완독하지 않아 슈호프가 어떤 캐릭터인지 파악을 하지 못해 기다 아니다 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에서는 슈호프와 나는 다른 이유로 수용소의 생활을 잘 보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건 그냥 잘 견디는 편이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이 마음에 들건 안들건 묵묵히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나는 수용소 생활을 잘 했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이 있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규칙 생활에 매우 잘 적응하는 나의 모습을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이 말에 내 남자친구는 알면 알수록 군대 체질이라고 또 한 번 감탄을.... 아놔) 


두번째는 슈호프의 생각을 보며 삶의 이유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슈호프에게 미래란 없다. 슈호프의 아내는 가끔씩 슈호프가 수용되기 이전과 달라진 사회의 모습을 편지로 전했다. 8년이라는 시간을 수용소에서 보낸 슈호프에게는 그 변화가 낯설기만 했다. 슈호프의 아내는 슈호프에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카펫 염색에 대해 알려주며, 슈호프가 돌아온다면 그 일로 많은 돈을 벌자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슈호프에게는 약속된 미래가 없다. 하루하루 살아갈 뿐, 먼 훗날의 미래에 대해서는 기대하는 바가 없는 신기루일 따름이다. 


기약된 미래가 없다라, 그렇다면 왜 슈호프는 이 비참한 삶을 끝내지 않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인간은 보통 참기 힘든 오늘을 희망찬 미래에 대한 상상을 진통제삼아 버텨 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 진통제가 필요할 것 같은 슈호프는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선고된 형량을 채운 뒤에도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만이 있는 그였다. 더 나아질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그는 왜 굳이 지금의 비참함을 견디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슈호프는 작은 일 하나하나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을 속여 야채죽을 한 그릇 더 빼돌린다던지, 질 좋은 담배를 구입하게 되었다던지, 연장을 몰래 수용소로 가지고 왔다던지 등등의 아주 작은 일로 즐거워하고 있다. 조금은 비굴해 보일 수도 있는 그의 태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지혜를 배웠다.

 

우리의 행복은 기약된 미래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약되었다고 한들 그 미래에 당도했을 때에는 그게 나의 현재가 될지 안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대신 지금 당장 현재는 나의 일이고, 손에 잡히는 현재만이 실재이다. 지금 현재에 만족하는 일, 그 것이 우리가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 져서 좋은 것도 아니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나쁜 것이 아닌, 좋은 일들만 이루어진 삶이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일도 겪고 나쁜 일도 겪고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그 깨달음을 솔제니친은 수용소에서 배웠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억울하게 수감된 슈호프의 삶을 부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부조리는 맞서 싸우되, 그와 함께 지금의 나는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슈호프와 다른 수감자들의 비참한 삶을 보며 이들을 수감시킨 타인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의 욕망의 확장을 위해 이들을 수용소로 보냈고, 그들의 욕망이 확장된만큼 수감자들의 욕망(자유)이 축소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세상에서는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의 크기는 한정되어있고, 인간이란 그 한정된 욕망의 파이를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한 투쟁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욕망은 확실하게도 '돈'이다.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이 책이 그리고 있는 부조리한 사회가 개선되었냐 묻는다면 '합리적인 사회 합의' 라는 명목하에 그 부조리는 지속되고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나의 편의를 위해  생활이 불가능한 최저 임금으로 타인을 노동을 시키며 반강제적으로 수용소의 삶을 살게 하고 있다. 부조리하다는 것은 알지만 먹이 사슬에서 조금 위에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부조리를 암묵적으로 동조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생각했다. 나의 욕망을 위해 타인의 욕망을 축소 시키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을 위해 내 욕망을 축소 시키는 삶을 살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제 3의 안은 있는지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라 어떤 텍스트를 읽어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뽑아내게 된다. 


이래서 책이 재밌다. 나의 현 시점의 생각에 따라 텍스트가 다르게 해석된다. 다음 번 다른 마음으로 읽게 되면 어떻게 해석될지 궁금해진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몇년 이내에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미루기 습관은 한 권의 노트로 없앤다
국내도서
저자 : 오히라 노부타카 / 이지현역
출판 : 라이팅하우스 2018.01.30
상세보기


최근의 나는 해야 할 일을, 그리고 하고자 마음 먹었던 일들을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한달, 분기, 반년, 일년씩 미루고 있는 내가 꼴보기가 싫었다. 매일의 습관으로 세워 놓은 계획으로 매일 나를 미워했고, 일주일 단위로 계획해 놓은 일을 미룬 나를 보며 일주일 마다 또 미워하고, 이런 식으로 한달마다, 반년, 일년씩 나를 미워했다. 그러다보니 내 삶은 나를 미워하는 시간만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루는 것을 멈추고 싶은데 어쩌지, 고민하다가 언제나처럼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알라딘에서 이리저리 찾아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그래 이거 읽어보고 좀 개선해보자.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것 조차 한달을 미뤘다. 뻔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잠깐 고무되는 것이 다 일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볍게 읽을 거리가 필요하여 읽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알게 된 것이, 내가 미루는 습관을 가진 것, 정확히 말해 과거에 비해 많이 미루고 있는 것은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목표를 잃어서였다. 사실 나는 어떤 것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은 쳐다도 보지 않고 그것에만 관심을 갖는 성격이다. 관심사가 있다면 그 것이 질릴때까지 파보는 스타일이고, 목표가 있다면 죽이 되더라도 일단은 무식하게 노력하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2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항상 목표가 있었고, 그렇기에 미루지 않으려는 노력도 없이 항상 열심이었다.


맞다, 요즘의 나는 목표가 없다. 어렸을때의 나는 돈을 벌고 싶었기에 일도 열심히 하고 커리어에 관심을 갖느라 회사 일에 애정도 많았다. 호주에서 돌아왔을때의 나는 멜번으로 이민가고 싶었기에 아침일찍 일어나 영어 공부도 하고, 좋은 레퍼런스를 위해 회사 일도 애정을 갖고 열심히 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실 아무 삶의 목표가 없다. 그러니 매사에 딱히 열심히 할 이유가 사라졌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생각하니 미루게 되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내 인생에 굳이 당장 해야 할 일이 아니었기에 미루었을 뿐이다. 원인을 게으름으로 잡았기에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원인은 목표 상실이었다.


그와 함께 남자친구가 종교 활동으로 아침 저녁으로 기원을 드리는 것을 생각했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아침 저녁으로 기원을 드리는 것인데,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이기적이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딸, 아들 서울대 들어가게 해주세요 라고 하느님, 부처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작정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지, 제 3자가 하느님 부처님에게 기도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고? 하느님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야? 이거 무슨 날로 먹는 도둑놈 심보야?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원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그 것이 미치는 삶의 태도를 이해하자 어? 현명한 방법이네? 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아침 저녁으로 생각함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잃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같다. 원대한 목표를 갖고, 그것을 매일 아침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미루는 습관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정말 이루고자 하는 바를 지속해서 상기 시킨다면, 저절로 그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1.어제 하루 중에서 기뻤던 일, 감사했던 일, 좋았던 일을 적고 2.그 일들로부터 새롭게 깨닫거나 느낀 점을 적은 뒤 3. 오늘 하루 동안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을 적은 뒤 4. 10초 액션(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10초만에 할 수 있는 일)을 기재하는 것이 그가 말한 전부였다. 그런데 이게 한 번 겪어본 사람으로써 정말 탁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예전의 나는 다이어리와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올해의 목표와 함께 이번달의 목표를 기재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마다 펼쳐보았고, 근무하는 중간 중간에도 시트를 열어보았다. 그때마다 기분좋은 설레임을 느꼈고, 그 설레임이 무엇이든지 하고 싶다는 마음을 생겨나게 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상태이기 때문에 미루는 행위는 내게 없었다. 해야지가 아니라 하고 싶다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매일 미루고 있는 이 꼴도보기 싫은 내 모습을 위해, 부지런해져야지 라고 채찍질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내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물어보아야겠다. 


+


책의 예시


따라 해봐야지.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1. BlogIcon 라디오키즈 2018.07.27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대한 목표를 매일같이 되새긴다...
    그럼 제가 세계 정복을 한번 계획해 보겠습니다. 훗~




클린
국내도서
저자 : 알레한드로 융거(Alejandro Junger) / 조진경역
출판 : 쌤앤파커스 2010.09.20
상세보기


과거에 한 번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책이었는데,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로 원래 관심많았던 음식섭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양한 이론을 접한 지금에 와서 보니 그 감동의 강도가 약한 듯 하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당시에도 이 책에서 제시된 식단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았고, 두번째 읽은 지금에도 이대로 따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장보기와 준비의 번거로움이고, 두번째로 한국에서 나는 식재료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을 섭취하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선한 그리고 가공되지 않고, 올바른 방법으로 키워진 음식이면 쌀과 밀, 유제품이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는 그 음식이 만들어진 방법이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아니 예전부터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항상 아보카도가 거론된다. 나 또한 잘 익은 아보카도를 좋아한다. 그래서 호주에 있을때에는 아보카도도 많이 사먹었고, 외식을 하더라도 아보카도가 들어간 음식을 즐겨 주문했다.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으니깐.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아보카도를 즐겨 먹지 않는다. 첫째로 푸드마일리지 둘째가 수입+인기 있는 식자재라 비싸게 책정된 가격 셋째로 대안이 많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는 아보카도가 만능인 것처럼 떠들어대댄다. 하지만 한국 토종 식재료도 대부분 영양학적으로 훌륭하다. 그렇지만 아보카도만이 칭송받는다. 아보카도 뿐이랴, 유행에 따라 그 것은 브라질너트가 되기도 하고, 햄프씨드가 되기도 하고, 퀴노아가 되었다가 렌틸로 옮겨간다. 건강을 돈으로 손쉽게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고자 하는 마케팅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이야기가 또 딴데로 샜구먼.


그와 함께 건강한 식단에 대해서 생각해보건데, 핵심은 '소량의 양질의 식단'이 정답인 듯 하다. 우리는 몸에 좋지도 못한 음식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문제인 것이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식자재를 먹지 않아서 아픈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 유기농 야채의 잦은 섭취

- 영양소를 생각하는 식습관

- 신체에 독소로 작용할 수 있는(음식 뿐만 아니라 피부로 흡수되는 물이나 화장품 등 까지도)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 명상


상업적인 디톡스가 아닌, 삶 전반적인 것에서 나에게 유독한 것들의 해독, 작게는 음식부터 크게는 부정적인 마음까지 버리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클린'이라는 생각이 든다.


+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마트에 들러 건강한 식자재로 장바구니를 채워야지. 술과 액상과당의 섭취를 줄이고. 조금씩 노력해서 1년 뒤에는 건강해져있기를.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국내도서
저자 : 천명관
출판 : 문학동네 2004.12.24
상세보기

 

독서 모임의 선정도서라 읽게 된 책으로 평점을 내리자면 5.0 만점에 5.0 점이다. 소설의 목적인 즐거움을 100%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책을 펼치는 그 순간부터 다음 장면에 어떤 내용이 올지 미치도록 궁금함을 자아낸다. 흥미로운(같은 말로 자극적인) 줄거리 내용과 소설의 내용이 눈앞에 영상으로 나타나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서술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와 함께 일반적인 소설의 특징에서 벗어나 신선함을 안겨다 준 점 또한 후한 점수를 내준 이유이다. 읽는 내내 이런 소설이 있을 수가 있다니 라는 생각을 끝없이 했다. 그와 함께 소설을 밀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이 부럽기도 했다.


 노파, 금복, 춘희 라는 3 여성의 삶을 시간순서로 묘사하고 있는 내용으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독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니다. 나의 취향을 저격한 점이 이 부분이다. 인생사를 보여주는 소설에서 주제가 딱히 없다는 것, 이 얼마나 완벽한 소설이란 말인가. 우리 인생이 딱 이와 같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라는 인과관계가 잘못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다'를 소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 흥미로운 서사가 이 소설의 전부이지만, 그럼에도 독자 개개인은 소설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읽고, 자신의 꿈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읽어낸다. 그래서 읽는 사람마다 다들 각자의 해석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잘 만들어진 벽돌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벽돌은 춘희가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벽돌이 있기 위해서는 춘희의 인생 전체가 필요했고, 그런 인생을 가진 춘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금복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문도 필요하다. 금복이와 문에서 그치지 않고 노파가 숨겨 놓은 돈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파의 인생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노파의 시작점이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 노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그 이전의 이야기 또한 있을 것이다. 벽돌 하나가 탄생하기 까지 무수한 사건과 무수한 인연과 무수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 없다.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벽돌 한장에도 이렇게 사연이 많거늘, 길가에 피어 있는 풀, 하늘을 날고 있는 새,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가 필요하다. 칼 세이건이 말을 했었지, 애플파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주가 필요하다고. 


박색한 외모 덕에 삶과 고군분투 했던 노파, 타고난 운명과 천성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금복,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 춘희.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항상 단편적인 현재의 상태로만 삶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에게 도움 한 번 준 적 없을 정도로 매정했고, 죽어서까지 사람들을 괴롭혔던 노파이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 춘희에게 두부 한모를 건네는 것이었다. 부와 권력 모두 남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금복의 곁에는 결국 그 누구도 남지 않았다. 어미에게 조차 외면 받은 고독하고 쓸쓸한 삶이었지만 춘희는 후대에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이름을 남기며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 단편적인 면으로만 우리 주변의 우주를 판단하고 우리 주변의 우주를 무시하며 살아온 오만한 삶은 아니었는지 나를 돌아본다. 내가 만들어낸 기준으로 가치가 있고 없는 삶, 존경받을 만한 혹은 비난받아 마땅한 삶, 의미가 있는 혹은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내 옆에 존재하는 우주를 평가하지는 않았나 반성도 한다. 내 주변의 노파와 금복, 춘희들에게 좀 더 애정을 가져보는 삶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세이버 savor
국내도서
저자 : 틱낫한(Thich Nhat Hanh),릴리언 정 / 김훈역
출판 : 윌북 2011.05.20
상세보기


 제레미 리프킨의 책 '육식의 종말'을 읽고 페스코 채식을 8개월 정도 했던 적이 있다. 회식이 잦았던 회사를 다니고 있던 중이었기에, 윗분들에게 각종 타박을 들었지만 나는 나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 어이없게도 남미여행을 가면서 경유하게 된 뉴욕에서 쉑쉑버거를 먹으며 나의 신념을 깼고, 천상의 맛이라는 아르헨티나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또 고기를 먹고 난 이후에는 지금까지 그냥 아무거나 다 먹으며 살아오고 있다. 다만 의식적으로 육식을 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외식을 할 때에는 가급적 해산물을 고르려했고,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경우에는 육식을 배제했다.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예 먹지 않는 것은 아니고, 육류가 식탁에 있을때에는 기쁘게 섭취하는 편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식습관을 가진 사람을 Flexiterian 으로 분류하는데, 굳이 분류에 넣자면 나도 Flexiterian의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이 책은 Flexiterian이 섭취하는 음식을 의식하듯이 우리가 섭취 하는 음식 그리고 우리의 활동, 나아가 우리의 인생을 모두 의식하고 있을 때에서야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금의 현대인의 식습관을 보면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아침에는 잠을 깨우기 위해 '카페인'과 뇌를 돌리기 위한 '당분'을 섭취한다. 오후에는 멋진 근육질의 몸매를 위해 '단백질'을 먹으며 이제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지방'을 꾸역꾸역 먹어대고 있다. 나의 신체를 위한 음식의 섭취가 아닌 나의 욕망에 의거한 음식 섭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비정상적인 생체 시스템을 복구하고자 각종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골라 먹는다. 쳇바퀴를 도는 우리의 삶, 부처가 말한 까르마가 이 것은 아닐까 싶다. 그와 함께 우리는 우리의 신체도 자본주의적인 관점으로 input-output을 요구하며 혹사시킨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시니컬하게 말하지만 나도 욕망덩어리로 나의 까르마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음식섭취에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에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나의 주의력은 한정적인데 스트레스 컨트롤에 주의력의 대부분을 소모하여 그런 것 같다. 항시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살면서 그게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내면의 나와 만나고자 노력해본다.


+


메뉴나 운동에 대한 언급은 너무나도 뻔해서 skip! 이게 건강한 음식 맞을까? 의심스러운 음식들은 죄다 해롭다. 이것이 결론. 

 

'일상 > 불친절한 감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클린  (0) 2018.07.09
책 천명관의 고래  (0) 2018.07.08
세이버: 당신을 구하는 붓다싯 다이어트  (0) 2018.07.03
어둠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0) 2018.06.28
책 스님의 주례사  (0) 2018.06.24
책 피로사회  (0) 2018.06.18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회사 워크샵으로 방문한 전시 어둠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시각을 차단하는 체험을 경험하는 것이다.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2010년부터 전시가 시작되어, 생각보다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상설전시였다. 



http://www.dialogueinthedark.co.kr



​전시장 건물이 예쁘다. 처음에는 신촌에서 전시를 하다가 이 곳 북촌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점자로 되어 있는 안내판.

​심플한 내부. 전체적으로 어둡다. 그래서 더 전시와 잘 어울렸다. 시간이 될때까지 내부를 구경하고 돌아다녔는데, 판매되고 있는 굿즈를 전시하고 있었다. 점자로 된 엽서를 사야지 하다가 까먹고 그냥 와버려서 아쉽다. 

​당신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보다

​그리고 100분간의 경험. 전시의 내용은 혹시나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비밀로 남긴다. 다만 이 체험으로 나는 세상의 그 모든 존재에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그저 내 옆에 존재 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던 그 경험. 내가 또 내 삶이 나로만 이루어지고 구성되었다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내 삶이란 것도, 아무 보잘것 없는 내가 타인을 만남으로써 의미 있어 지는 것이리라. 

비가 촉촉히 내리던 날. 전시가 끝나고 일순간이지만 세상이 달라보였다.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전시. 

'일상 > 불친절한 감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천명관의 고래  (0) 2018.07.08
세이버: 당신을 구하는 붓다싯 다이어트  (0) 2018.07.03
어둠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0) 2018.06.28
책 스님의 주례사  (0) 2018.06.24
책 피로사회  (0) 2018.06.18
책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  (0) 2018.06.15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스님의 주례사
국내도서
저자 : 법륜(Ven.Pomnyun)
출판 : 휴(休) 2010.09.13
상세보기


 법륜 스님의 책들은 내용이 모두 비슷비슷하다. 그런데도 읽을 때 마다 새롭다. 스님의 표현에 의하면 '습관'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그렇지! 내가 왜 이렇게 답답한 짓을 하고 있었을까' 하고 깨닫지만, 책을 읽고 돌아서면 다시 내가 여태 살아온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번뇌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첫 회사에 입사했을때의 주임님이 결혼 전에 읽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앞두고 진지한 얼굴로 책을 읽으시던 그 분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과거의 나의 연애의 마인드는 '아님 말고' 였다. 이런 태도 였기에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자주 싸우는 친구들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싸우고 난 뒤에 속상하다고 하는 그들에게 공감을 해주지 못하고 '그럼 그냥 헤어지면 되잖아?'를 남발했다. 결혼도 아니고 서로 좋아서 만나는 것이 연애인데, 그 연애가 괴롭다면 뭐하러 붙어 있는건지 이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 드는 것을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도 아닌, 고작 몇달 혹은 몇년 만난 사이가 뭐라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울고 불고 한단 말인가? 그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 다름을 받아 들일 수 없다면 쿨 하게 헤어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 나랑 다르구나 그런데 헤어진다고 해도 잠시 허전한 것 외에는 별로 아쉬울 것은 없겠구나 라는 나 잘난맛에 훌훌 잘 떠났다. 그래서 나는 내 삶에 매우 만족해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의 인연들은 그랬던 나에게 엄청나게 욕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벽에 똥 칠할때까지 살아가겠군. 


그런데 나의 태도는 정말이지 딱 연애에서만 용납가능한(?) 행위였다. 나의 행위는 실제로 법륜 스님이 평상시에 말씀하시는 삶과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 책은 결혼을 앞둔 혹은 결혼을 한 이들에게 하는 말이라 그런지 조금은 다르다. 결혼을 했으면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자신처럼(?) 혼자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한다.


법륜 스님은 책 전체에서 결혼이 괴로운 이유는 상대로부터 덕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고르고 골랐는데, 실제로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괴로움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결핍을 스스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간단하게 그 결핍을 해소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을 때에만 관심을 갖고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이 것은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친구, 심지어 부모자식 관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상대도 나와 같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때에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나의 이기심으로 상대를 만나지만 상대는 그저 나라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삶, 이 책은 전부 그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스님은 책 말미에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잘 굴러가고 있다고 하신다. 모든 부모들이 기도만 잘 드려서 자식들 모두 서울대에 들어가게 된다면 사회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화두를 던지신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의 대부분의 일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고, 그렇기에 사회가 혼돈에 빠지지 않고 문제없이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 그저 막연히 바라며 욕심만 부렸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피식 웃음이 났다. 그와 함께 내가 바라던 것들이 모두 이러우지지 않은 덕에 순리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사회에 감사함을 느꼈다. 


삶에서 사건들은 내 욕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일도 많다. 내 인생이라고 내 뜻대로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와 함께 그럼에도 내 마음은 내 것이기에, 어떤 좋지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상황을 바꾸지 못해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행복해져야 하는 것이다. 


요즘의 나는 내가 내 욕심만 부렸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다시 한 번 반성해본다. 난 왜 맨날 자기 잘난 맛에 인생을 사려고 할꼬. 좀 더 나의 성질머리를 죽이고 겸허함과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껴야지.


+


남자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했는데, 몇장 읽지는 않으셨지만 마음에 들어하는 듯 했다. 이렇게 엄마에 이어 남자친구마저 법륜스님으로 영업 성공~ ㅋㅋ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피로사회
국내도서
저자 : 한병철(Han Byung-Chul) / 김태환역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2.03.05
상세보기



중세 시대의 종말이 각 개인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을지는 몰라도 행복마저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다. 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개인들은 자유라고 적힌 깃발만 전리품으로 얻었을 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발가벗겨진 채로 새로운 사회를 맞이해야했다. 처음에는 종교와 계급에서 벗어난 개인은 자유의 달콤함에 도취되었다. 신의 그늘에서 벗어난 그들은 그 무엇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가 주는 행복함은 잠시 뿐이었고, 각 개인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스스로가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과거의 가난이 신이 부여한 운명이었다면, 지금의 가난은 나의 '잘못된'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 과거의 불행이 신으로부터 벌을 받은 결과였다면, 현재의 불행은 좀 더 행복한 삶을 선택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 


그리하여 개개인은 현재의 재정 상태 뿐만 아니라 감정 상태까지도 일상에서 마주 하는 모든 이들로부터 평가당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소유물로 개인의 나태함, 혹은 그 부모들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죄악이라고 말하고 이제부터는 너도 할 수 있다는 자기 계발서들이 쏟아지고 개인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좀 더 나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은 물질적인 분야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행복이라는 감정 또한 세분화되어 등급으로 매겨졌다. 그리하여 좀 더 나은 등급이 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활동들이 상품으로 만들어져 쏟아졌다. 이렇게 많아진 선택지에서 개인은 근대의 축복이라는 '자유'로 선택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그 선택을 한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우리가 부유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은 우리 자신이 되버렸다. 우리는 잘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끝없는 자기 착취에 빠진다. 자유의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올바른 선택을 내린다면 나는 부유해지고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이 것이 저자가 '피로사회'에서 말하는 '긍정성의 과잉'의 시대이다. 그리고 자신이 되고자 바라는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은 '피로감'과 '우울증'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것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말을 한다. 자신의 욕망뿐만 아니라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내린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하지 않을 힘'에 대한 언급과 함께 활동 과잉에 내몰린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색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행동의 주체는 오직 잠시 멈춘다는 부정적 계기를 매개로 해서만 단순한 활동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우연의 공간 전체를 가로질러 볼 수 있다.


우리는 끝없이 내달리지만 내달리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싶은지, 돈을 왜 벌고 싶은지, 이 것을 왜 공부하고 싶은지 등등에 대한 성찰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시스템 위에서 열심히 쳇바퀴를 굴리는 삶을 '살아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성찰의 과정은 피곤하다. 사랑노래에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는 식상한 멘트가 항상 들어갈 정도로 우리는 우리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피로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능동형의 삶이 되어야 하고, 그 능동적인 삶의 시작은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저 책에 나온 멘트는 완벽하게 위빠사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소오름.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