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영화 | 53 ARTICLE FOUND

  1. 2018.05.13 영화 리틀 포레스트 (2)
  2. 2018.05.02 영화 소공녀 (2)
  3. 2018.04.13 영화 그날, 바다
  4. 2017.12.17 영화 트루먼쇼 (2)
  5. 2017.12.17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6. 2017.12.03 영화 그을린 사랑 (3)
  7. 2017.08.25 영화 공범자들
  8. 2017.06.23 영화 중경삼림
  9. 2017.06.20 영화 겟아웃 (2)
  10. 2017.06.19 영화 노무현입니다



청소부터 음식까지 결벽증이 있으셨던 엄마는 외식을 하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셨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 같은 음식은 거의 먹지 못하게 하셨고, 우리집 냉장고에는 사이다나 콜라 같은 탄산음료가 있는 경우도 없었다. 탄산 음료를 먹었던 기억은 소풍날 김밥과 함께 가져갔던 캔음료가 전부였다. 집에는 과자도 잘 없었다. 김치는 물론이거니와 간장을 만드는 메주마저 집에서 만드셨던 엄마덕에, 공장에서 제조된 음식은 우리집 식탁에 오를 일이 잘 없었다. 후각과 식욕을 자극하는 그 맛있는 라면은 친구들은 하루 걸러 먹는다는데, 나는 엄마를 졸라 가끔 주말 점심에 한 번씩 맛을 볼 수 있었다.  


대학교때문에 서울로 상경하면서 혼자 살게 되었다. 작은 원룸에서의 생활이었고 낯선 타지에서의 삶이 어색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 짜릿함이 좋았다. 특히나 3시 세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었다. 타지에서 혼자 살아가는 딸이 걱정되었던 엄마는 각종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시는 것도 모자라 계절마다 재료들을 손질하여(고등어부터 낙지, 꽃게까지 받아보지 않은 것이 없다) 올려 보내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만남이 즐거웠고, 외식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문화였기에 나는 3끼 전부 밖에서 먹는 날이 많았다. 외식 뿐이랴. 엄마는 독극물 취급하시던 햄버거와 라면도 즐겨 먹고, 간편하고 저렴한 편의점 음식도 자주 먹었다.


그리고 처음 나타난 이상증후는 피부 트러블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나지 않던 여드름이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피부 묘기증과 함께 약으로도 증세가 완화되지 않는 가려움증까지 생겨났었다. 그때에서야 처음으로 내가 식습관이 잘못 되어 몸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는 생각을 했다.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24시간 가려움증을 호소하던 나는 일시적으로 외식을 중단했고, 그와 함께 피부는 사그러들었다. 그 이후로 식습관에 신경을 쓰다가 다시 삶이 바빠지면서 모든 끼니를 밖에서 먹기 시작했다. 내 몸의 건강보다 나의 게으름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처음 자취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본가에서 부모님과 몇달간 지낼 기회가 있었다. 호주를 다녀와서 재취업을 하기 전 휴식기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집에서 엄마가 정성스레 차려주시는 음식을 먹으며 여태 내가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고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 먹었던 음식들은 음식이라기보다 판매되어지기 위한 '상품'에 가까웠다. 실제 품질과 상관없이, 그저 보기 좋아 보여 많이 팔리게 만든 왁스가 입혀진 빨간 사과들처럼 말이다. 


그때의 잠깐의 기억은 나에게 있어 '아주 심기'의 시간이었고, 그 이후의 나의 자취 생활을 바꾸었다.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되도록 장을 봐서 집에서 소박하게나마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밖에서 판매되는 것과 비교했을때 혀에 가져다 주는 자극은 적었지만, 먹고나면 속도 편하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외식을 할때에는 배는 불러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허기를 느꼈는데, 집에서 된장국 하나와 밥을 먹더라도 포만감이 오래갔고, 정체불명의 공허함도 사라졌다. 그랬던 나였기에 서울 생활에서 지친 극중 '예원'에 완전히 몰입 되었다. 4계절 제철 음식으로 요리를 하고 먹는 것이 전부인 그녀의 영상을 보며, 타지 생활에서 느끼는 그 끝없는 허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고향 친구들과의 소소한 시간을 가지는 예원을 보며,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일때 비로소 충족되는 그 공허함을 떠올렸다. 


한 사람의 삶을 위해서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고작 상품이 아닌 음식으로써 음식, 그리고 나와 함께 웃고 울어 주는 존재 그것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의 조건을 짜릿한 자극이라고 여기고 이곳 저곳 배회하고 있지는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유랑의 시간을 맛 보아야만 현대인들은 깨닫게 될지 모른다.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왁스 칠 되어 매끈한 빨간 사과가 아니라 햇빛을 충분히 받고 자라 완숙된 빨간 토마토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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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13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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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뒤늦게 챙겨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2018년 최고의 영화이다! 아마 올해에 내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주인공 미소는 한 개비의 담배, 한 잔의 위스키에 삶에 낙을 두고 있다. 일당은 오르지 않는데 집세도, 담배값도, 위스키값도 오르기만 하는 현실에 쿨하게 집을 포기한다. 그리고 과거 함께 밴드 활동을 하던 친구들의 집에 하룻밤씩 머무르게 된다. 영화는 미소와 반대지점에 있는 친구들의 삶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친구들의 모습이 우리 보통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수액을 맞으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 삶, 자신의 꿈은 버린채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삶, 아파트 대출 빚에 허덕이는 삶, 나이가 들어서도 독립하지도 못하고 결혼에 집착하고 있는 삶, 안정된 삶을 위해 자신의 색깔을 지워버리는 삶, 돈만을 위한 삶을 들여다보면서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삶이 행복해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한 삶을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 때문에 되려 행복해질 수 없는 인생의 아이러니. 옳고 그른 것은 없이 선택과 결과에 대한 받아들임만이 남는다. 나는 무엇을 선택 할 수 있을까, 아니 어떤 결과를 받아 들일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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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최숲 2018.05.12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올해 보았던 영화 중에 이 영화가 최고였어요- 미소처럼 월세 걱정하며 서울 살이 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속 이야기가 내내 저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미소나 저나 취향을 지키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집값이 좀 떨어졌음 좋겠네요 :-(





보면서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었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했는데,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담백한 배우 정우성의 내이션이 차분함을 증폭시켰다. 영화는 2014년 4월 15일 밤 인천항을 출발하여 다음날 병풍도 부근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일정을 과학적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논리적인 탄탄함 흥미진진하게 구성되어가는 스토리에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지루함이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물론 함께 본 지인은 초반에 살짝 졸렸다고 했지만)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아니 진실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에 조금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김어준 총수가 3년간의 조사가 아이들을 애도하는 자신의 방법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말을 들었을때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을 애도하였을까? 말도 안되는 정부의 발표가 나올때마다, 세월호 유가족에 정치적인 프레임을 만들며 국민적인 갈등을 조장해나가는 사회를 볼 때마다 나는 단지 화만 냈다.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는 것으로 나는 애도를 충분히 했다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그 분노가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씻을 수 있는 면죄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4년 간의 나의 생각과 행동을 돌이켜봤다. 아직은 너무 늦지 않길 바라며, 좀 더 성숙된 애도의 방법을 찾아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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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보게된 영화. 나의 수지가 넷플릭스 아이디 공유해줘서, 뭐볼까 뒤적거리다가 발견하고 보게 되었다. 호호. 영화는 제대로 명작이다. 좀 더 일찍 봤어야 했는데 이제 보게 된 나의 게으름에 저주를 퍼부었다. 


영화는 요즘 내가 한참 관심있어 하는 주제로 받아들여졌다. 트루먼은 자신의 인생을 방송국과 감독에 의해 잘 짜여진 각본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른채 살아가다가 이상함을 하나 둘 씩 깨닫고 그 거대한 인공섬을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디어에 경종을 울리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그가 살고 있던 인공섬은 인간 사회에서 규정해 놓은 사회, 예절, 윤리 규범 등 그 모든 것들이다. 그는 그 속에서 아무 의심없이 살아갔던 무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것들이 인간 사회에서 절대 진리고 그것만이 다인 것이 세계인걸까 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익숙한 삶을 버리고 그는 자신이 진짜라고 믿고 있던 세계를 깬다.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용기있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유를 얻게 된다. 타인들이 규정해 놓은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는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했다. 


최근의 나는 내가 진짜라고 여겼던 세계가 가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모두 나라는 것을 통해서 처리 되기 때문에 나는 단 한번도 '진짜'를 만난 적이 없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서부터 세계까지 모두 내가 관찰하고 해석한대로 처리되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내가 보는 세계를 깨보기로 했다. 30년이 넘게 진짜라고 생각했기에 잘 깨어지지도 않고, 자꾸 익숙한 곳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나도 툭툭 튀어나온다. 그래도 자유를 얻기 위해 트루먼처럼 바다를 헤쳐나가야지.


+


영화를 보며 니체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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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2.17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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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본 영화 그을린 사랑의 감독의 영화라고 추천 받아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았는데, 특히 그가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 그을린 사랑도 그랬고 이 영화도 역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잔인한 장면이 많은 편이다. 왜 잔인한 장면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로 주제를 설명하려고 한 걸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나의 결론은 한 인간이 잔인해 질 수 있다면 그 것은 그의 '진심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싸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재미로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사람은 없다. 내가 진심으로 얻고자 하는 것 혹은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그토록 잔인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반전은 예상하지 못했었던 방향으로 흘러가서 조금 놀라웠으나 그 것이 다였다. 스토리를 따라가면 감독이 던짓 여러 주제중 하나의  '정의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그 것은 처해진 상항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스토리의 맥락으로 영화를 평가하기에는 아쉽다. 이 영화는 줄거리가 아닌 표현 방법으로 예찬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케이트의 관점에서 사건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데,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영화가 끝날때까지 혼란스러움을 겪는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때 혼란스러움을 겪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예측을 벗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항상 예측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숨막힐듯한 음악과 함께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어 가며 세계를 파악하려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영화는 CIA와 카르텔이 대치하는 스릴러 물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에서 살아갈때 겪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없고,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가늠도 불가능하지만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 와중에 우리는 우리가 믿고 지키려는 것과 반하는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순간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우리의 몫이다. 정답은 없으니깐.


+


마지막 축구 경기 장면이 가장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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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으로 알게된 영화. 1. 팟캐스트를 통해서 줄거리 듣고 2. 리프레쉬 마인드의 강의 중에 더 자세하게 줄거리를 들은 상태로 모든 반전을 알고 3번째로 접하는데도 그 감동으로 인해 마지막에 눈물을 쏟았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그치지 않는다. 꽤 많은 영화에서 나는 '그 정도는 아니잖아' 라는 말을 하는데 이 영화 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평범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위대함의 끝을 이 영화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은 인간에게서 시작되었다. 문명, 사랑, 종교,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인간에게서 시작되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나 절대 끝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분쟁과 갈등. 이 것들을 멈출 수 있는 것도 결국 인간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사랑. 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에게 이 영화는 그토록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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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2.04 0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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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off the record로는 그 어떤 말을 내뱉을 수 있다. 내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나라의 대통령도 종북 빨갱이로 만들고 어제 나온 드라마의 여배우를 창녀로 전락시킬 수 있다.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100%의 확신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죽였다가 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실령 하고자 하는 말이 사실이더라도 그 말을 내 뱉음으로써 내가 피해를 입는다면 입을 닫고 말 것이다. 내가 나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이크를 들어야 할 때에도 상대가 강자라고 생각된다면, 절대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 것은 비겁하다기보다 동물로서의 본능에 가깝다. 우리는 겁이 많고 계속 삶을 영위해 나가고 싶은 그저 미천한 하나의 동물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동물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신념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앞에 나서서 행동으로 옮긴다. 이들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이들이다. 최승호 피디는 그런 존재 중 하나이다. 태어날때부터 진화된 존재였는지 아니면 부당한 현실이 그를 강제로 진화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확실히 앞서있다.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 뿐이지만, 나는 그로부터 비정상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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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블로그에 간만에 중경삼림을 봤다는 글을 쓴 것을 보고 나도 뜬금없이 찾아보게 되었다. 보고 나서는 다시 한번 왕가위는 정말 천재가 아닐까 라는 감탄을 했다. 천재가 아니라면 우리가 경험했던 그 많은 경험을 모두 다 해본 사람이리라. 우비를 입는데도 선글라스를 써야 할 일도 겪었을 것만 같은 그이다. 비가 오는데도 해가 쨍쨍한 그런 날들을 많이 겪어보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리고 그런 삶의 뒤에 남는 감정의 무덤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이 영화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뭐가 재미있으랴. 사실 이 영화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사람들 각자가 주섬주섬 꺼내 놓게 되는 자신들의 옛 사랑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다. 나는 항상 연애기간이 짧아서 그랬는지 떠올리면 가슴이 저리거나 아련하게 기억에 남는 사랑이 전혀 없다.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서, 그때의 감정 그리고 그 때의 사건 모두 하나하나 기억은 하고 있지만, 내가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잊지 못할 나의 사랑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연애를 할 때 항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100%를 상대에게 해 준다. 그래서인지 이별 뒤에도, 많은 연인들이 느낀다는 '이걸 해 주고 싶었는데..' 이런 식의 미련이 절대 남지 않았다. 그래서 뒤도 잘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아니 되려 상대에게 너무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그랬는지(내가 100%를 항상 해준다고 해서, 그 100%를 해주는 일이 나에게  쉬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헤어지고 나면 홀가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에너지를 온전히 나에 집중 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가 헤어지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별 이후에는 외로웠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연락하던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결코 그 사람이 없기에 내 삶이 의미없어지고 내 삶이 외롭거나 한 적은 없었다. 


지나고나서 보니 그 감정들이 사랑이었나 라는 의구심도 든다. 분명 그때 당시에는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들이 사랑이었을까 라고 지금에 와서 묻는다면 나는 쉽게 그렇다는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그 때 당시의 나는 분명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보니 나는 파인애플을 좋아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의 감정을 나도 잘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잘 아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왜 이렇게 심심한 사랑, 아니 연애만 해왔을까.


 라고 이 영화를 다시 보기 전까지 생각했다. 호출기를 주구장창 확인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전화기 앞에 붙어있는,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술집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여자와 사귈꺼라고 말하는 금성무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가 밥먹는 곳을 일부러 지나가고 그의 집을 청소하고 꾸며주는 페이를 보며 나 또한 저렇게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된 그때의 감정이 조금씩 떠 올라, 내가 감정없는 로보트는 아니었구나 라고 위로도 받았달까. 심심했던 내 과거가 조금은 알록달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는 사랑과 연애에 조금은 무덤덤해진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온통 상대만을 생각하느라 그 사람과 이 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존재자체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는 것인지, 아무데나 그 사람 좋다는 곳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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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이 너무 좋아서 '호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용기내어 도전했다. (그리하여 죄없는 지인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나를 따라 영화관에 가야했다) 나는 호러영화는 "진짜" 보지 못하는 인간이라 이 영화를 보기 위해단단히 마음을 먹었으나,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러닝타임 내내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야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상보다 사운드가 더 괴기스러워서 귀마개가 필요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어서 두 귀를 막을 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의 내용을 이런식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독특했다. 보고나면 영화 자체는 호러영화이기보다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고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그 스토리가 소름끼치게 무섭다. 뭔가 이상한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떤 일일지 상상할 수가 없었기에 몰아칠 반전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작가의 잔인한 상상력에 넋이 나가 있다가 허를 찌르는 Airport 글자에서, '너 당연히 이럴꺼라고 생각했지? 메롱이다' 라는 느낌을 받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비루한 내 상상력의 바닥을 작가에게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그나마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다. 그리고 추가로 영화 초입에서 로즈가 경찰에게 크리스의 신분증을 보여주기 꺼려 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만약 그때 경찰이 신분증을 확인을 했고, 크리스가 실종 되었다면 로즈는 의심 받았겠지. 그러고 나니 더 무섭다. 와, 제대로 미쳤구나 아미티지.


로드의 흑인 성노예 상상에 크리스는 비웃었다. 크리스가 실종되고 그를 찾기 위해 방문한 경찰관에서 성노예 가설을 설명한 로드는 경찰관에게 다시 한 번 비웃음을 당했다. 왜냐면 그의 상상은 표면적으로 인종차별이 사라(졌다고 믿고 싶은)진 국가에서는 터무니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더욱 터무니 없었으니, 어쩌면 우리 인간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잔혹한 일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그 잔혹한 일들이 다 우리 일상의 편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최면에 빠져 있는 중이거나.    


늙고 병든 백인들이 건강한 흑인을 골라 뇌를 이식시켜 그 몸을 취한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도구로 취급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아마도 이 발상만으로도 이 영화는 호러무비가 되리라. 그런데 이게 진짜 영화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일뿐일까? 우리는 생명공학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잔인하게 동물을 가르고 폐기처분한다. 아마 실험실 우리속에 있는 동물들은 영화속 주인공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리라. 실험만이 아니다. 식용을 위해 길러지고 있는 가축들은 원하지도 않는 끝없는 수정으로 새끼를 낳는 기계로 전락했다. 닭들은 움직일 수도 없는 곳에서 지내며 알을 낳고 죽을 날만 기다리며 땅을 한 번 밟아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우리는 그들을 생명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필요한 고깃덩어리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우리 인간은 같은 인간을 도구에서 동등한 존재로 여기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200년 전만해도 흑인 노예는 백인을 위한 소모품이었고, 우리 조상들은 마루타가 되어 의학실험의 대상이었고, 홀로코스트 또한 아직 1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인류는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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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친구는 잘 사귀고 볼 일이다. 그리고 막판에 나 혼자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같이 움찔한 커플에게 뒤늦은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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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21 0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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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살아 오면서 극장에서 2번 본 영화가 딱 2개가 있다. '라라랜드'가 그 처음이었고, 와 그 다음이 '노무현입니다' 이다. 그리고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은 2번째 볼때는 감흥이 덜 할 줄 알았는데, 감동은 횟수랑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또 깨닫게 해준 영화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볼때에는 혼자 영화관에 가서 관람을 했고, 두번째는 지인과 함께 봤다.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지인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할꺼라고 놀리던 호연지기는 사라지고 나 또한 다시 손수건을 붙들고 말았다. 두번째에는 눈물이 나지 않을 줄 알았다.


나에게 2002년은 월드컵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정치'란 아빠가 보는 뉴스에서나 언급되는 고리타분한 일이라고 여겼던 고등학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2002년의 경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도 몰랐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또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 아무리 기가막힌 스토리의 영화도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2002년의 그 때, 월드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짜릿한 감동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일었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먹먹해졌다.


과거의 나는, 어떤 방법으로건 존경할만한 사람을 만나면 두 종류의 마음이 생겨났다. 하나는 그 사람과 똑같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그 사람이 이룩한 것이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리라는 건방진 생각이 기저에 있는 경우이다. 또 다른 경우는 이 사람이 이루어 낸 것이 정말 위대해 보여서 내 삶이 보잘 것 없이 느껴지는 경우이다. 그럴때면 나는 여태 뭘 한 걸까 하는 자괴감과 함께 넘사벽의 그들 앞에 기가 죽어버린다. 그리고 요즘에는 세번째 마음이 일고 있는데, 그 사람처럼 살아갈 용기는 결코 없지만 조금이라도 그 사람이 이루고 싶었던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게 고인이 된 분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이지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그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타인을 위하며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타인을 위한 삶의 위대함을 또 이렇게 깨달았다.


너무나 슬프게도 지금은 고인이시지만,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우리 마음 하나하나에 존재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촛불을 들고 조용히 광장으로 모여들었던 그 모든 이의 마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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