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 습관은 한 권의 노트로 없앤다
국내도서
저자 : 오히라 노부타카 / 이지현역
출판 : 라이팅하우스 2018.01.30
상세보기


최근의 나는 해야 할 일을, 그리고 하고자 마음 먹었던 일들을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한달, 분기, 반년, 일년씩 미루고 있는 내가 꼴보기가 싫었다. 매일의 습관으로 세워 놓은 계획으로 매일 나를 미워했고, 일주일 단위로 계획해 놓은 일을 미룬 나를 보며 일주일 마다 또 미워하고, 이런 식으로 한달마다, 반년, 일년씩 나를 미워했다. 그러다보니 내 삶은 나를 미워하는 시간만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루는 것을 멈추고 싶은데 어쩌지, 고민하다가 언제나처럼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알라딘에서 이리저리 찾아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그래 이거 읽어보고 좀 개선해보자.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것 조차 한달을 미뤘다. 뻔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잠깐 고무되는 것이 다 일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가볍게 읽을 거리가 필요하여 읽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알게 된 것이, 내가 미루는 습관을 가진 것, 정확히 말해 과거에 비해 많이 미루고 있는 것은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목표를 잃어서였다. 사실 나는 어떤 것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은 쳐다도 보지 않고 그것에만 관심을 갖는 성격이다. 관심사가 있다면 그 것이 질릴때까지 파보는 스타일이고, 목표가 있다면 죽이 되더라도 일단은 무식하게 노력하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2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항상 목표가 있었고, 그렇기에 미루지 않으려는 노력도 없이 항상 열심이었다.


맞다, 요즘의 나는 목표가 없다. 어렸을때의 나는 돈을 벌고 싶었기에 일도 열심히 하고 커리어에 관심을 갖느라 회사 일에 애정도 많았다. 호주에서 돌아왔을때의 나는 멜번으로 이민가고 싶었기에 아침일찍 일어나 영어 공부도 하고, 좋은 레퍼런스를 위해 회사 일도 애정을 갖고 열심히 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실 아무 삶의 목표가 없다. 그러니 매사에 딱히 열심히 할 이유가 사라졌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생각하니 미루게 되었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내 인생에 굳이 당장 해야 할 일이 아니었기에 미루었을 뿐이다. 원인을 게으름으로 잡았기에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원인은 목표 상실이었다.


그와 함께 남자친구가 종교 활동으로 아침 저녁으로 기원을 드리는 것을 생각했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아침 저녁으로 기원을 드리는 것인데,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때 이기적이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딸, 아들 서울대 들어가게 해주세요 라고 하느님, 부처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작정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지, 제 3자가 하느님 부처님에게 기도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고? 하느님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야? 이거 무슨 날로 먹는 도둑놈 심보야?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원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그 것이 미치는 삶의 태도를 이해하자 어? 현명한 방법이네? 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아침 저녁으로 생각함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잃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같다. 원대한 목표를 갖고, 그것을 매일 아침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미루는 습관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정말 이루고자 하는 바를 지속해서 상기 시킨다면, 저절로 그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1.어제 하루 중에서 기뻤던 일, 감사했던 일, 좋았던 일을 적고 2.그 일들로부터 새롭게 깨닫거나 느낀 점을 적은 뒤 3. 오늘 하루 동안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을 적은 뒤 4. 10초 액션(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10초만에 할 수 있는 일)을 기재하는 것이 그가 말한 전부였다. 그런데 이게 한 번 겪어본 사람으로써 정말 탁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예전의 나는 다이어리와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올해의 목표와 함께 이번달의 목표를 기재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마다 펼쳐보았고, 근무하는 중간 중간에도 시트를 열어보았다. 그때마다 기분좋은 설레임을 느꼈고, 그 설레임이 무엇이든지 하고 싶다는 마음을 생겨나게 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상태이기 때문에 미루는 행위는 내게 없었다. 해야지가 아니라 하고 싶다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매일 미루고 있는 이 꼴도보기 싫은 내 모습을 위해, 부지런해져야지 라고 채찍질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내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물어보아야겠다.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클린
국내도서
저자 : 알레한드로 융거(Alejandro Junger) / 조진경역
출판 : 쌤앤파커스 2010.09.20
상세보기


과거에 한 번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책이었는데,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이후로 원래 관심많았던 음식섭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양한 이론을 접한 지금에 와서 보니 그 감동의 강도가 약한 듯 하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당시에도 이 책에서 제시된 식단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았고, 두번째 읽은 지금에도 이대로 따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장보기와 준비의 번거로움이고, 두번째로 한국에서 나는 식재료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을 섭취하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선한 그리고 가공되지 않고, 올바른 방법으로 키워진 음식이면 쌀과 밀, 유제품이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는 그 음식이 만들어진 방법이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아니 예전부터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항상 아보카도가 거론된다. 나 또한 잘 익은 아보카도를 좋아한다. 그래서 호주에 있을때에는 아보카도도 많이 사먹었고, 외식을 하더라도 아보카도가 들어간 음식을 즐겨 주문했다.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으니깐.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아보카도를 즐겨 먹지 않는다. 첫째로 푸드마일리지 둘째가 수입+인기 있는 식자재라 비싸게 책정된 가격 셋째로 대안이 많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는 아보카도가 만능인 것처럼 떠들어대댄다. 하지만 한국 토종 식재료도 대부분 영양학적으로 훌륭하다. 그렇지만 아보카도만이 칭송받는다. 아보카도 뿐이랴, 유행에 따라 그 것은 브라질너트가 되기도 하고, 햄프씨드가 되기도 하고, 퀴노아가 되었다가 렌틸로 옮겨간다. 건강을 돈으로 손쉽게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고자 하는 마케팅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이야기가 또 딴데로 샜구먼.


그와 함께 건강한 식단에 대해서 생각해보건데, 핵심은 '소량의 양질의 식단'이 정답인 듯 하다. 우리는 몸에 좋지도 못한 음식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문제인 것이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식자재를 먹지 않아서 아픈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 유기농 야채의 잦은 섭취

- 영양소를 생각하는 식습관

- 신체에 독소로 작용할 수 있는(음식 뿐만 아니라 피부로 흡수되는 물이나 화장품 등 까지도)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 명상


상업적인 디톡스가 아닌, 삶 전반적인 것에서 나에게 유독한 것들의 해독, 작게는 음식부터 크게는 부정적인 마음까지 버리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클린'이라는 생각이 든다.


+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마트에 들러 건강한 식자재로 장바구니를 채워야지. 술과 액상과당의 섭취를 줄이고. 조금씩 노력해서 1년 뒤에는 건강해져있기를.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국내도서
저자 : 천명관
출판 : 문학동네 2004.12.24
상세보기

 

독서 모임의 선정도서라 읽게 된 책으로 평점을 내리자면 5.0 만점에 5.0 점이다. 소설의 목적인 즐거움을 100%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책을 펼치는 그 순간부터 다음 장면에 어떤 내용이 올지 미치도록 궁금함을 자아낸다. 흥미로운(같은 말로 자극적인) 줄거리 내용과 소설의 내용이 눈앞에 영상으로 나타나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서술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와 함께 일반적인 소설의 특징에서 벗어나 신선함을 안겨다 준 점 또한 후한 점수를 내준 이유이다. 읽는 내내 이런 소설이 있을 수가 있다니 라는 생각을 끝없이 했다. 그와 함께 소설을 밀고 나가는 작가의 필력이 부럽기도 했다.


 노파, 금복, 춘희 라는 3 여성의 삶을 시간순서로 묘사하고 있는 내용으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독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니다. 나의 취향을 저격한 점이 이 부분이다. 인생사를 보여주는 소설에서 주제가 딱히 없다는 것, 이 얼마나 완벽한 소설이란 말인가. 우리 인생이 딱 이와 같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라는 인과관계가 잘못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다'를 소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 흥미로운 서사가 이 소설의 전부이지만, 그럼에도 독자 개개인은 소설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읽고, 자신의 꿈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읽어낸다. 그래서 읽는 사람마다 다들 각자의 해석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잘 만들어진 벽돌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벽돌은 춘희가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벽돌이 있기 위해서는 춘희의 인생 전체가 필요했고, 그런 인생을 가진 춘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금복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문도 필요하다. 금복이와 문에서 그치지 않고 노파가 숨겨 놓은 돈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파의 인생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노파의 시작점이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 노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그 이전의 이야기 또한 있을 것이다. 벽돌 하나가 탄생하기 까지 무수한 사건과 무수한 인연과 무수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 없다.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벽돌 한장에도 이렇게 사연이 많거늘, 길가에 피어 있는 풀, 하늘을 날고 있는 새,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가 필요하다. 칼 세이건이 말을 했었지, 애플파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주가 필요하다고. 


박색한 외모 덕에 삶과 고군분투 했던 노파, 타고난 운명과 천성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금복,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 춘희.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항상 단편적인 현재의 상태로만 삶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에게 도움 한 번 준 적 없을 정도로 매정했고, 죽어서까지 사람들을 괴롭혔던 노파이지만 그녀의 마지막은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 춘희에게 두부 한모를 건네는 것이었다. 부와 권력 모두 남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금복의 곁에는 결국 그 누구도 남지 않았다. 어미에게 조차 외면 받은 고독하고 쓸쓸한 삶이었지만 춘희는 후대에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이름을 남기며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 단편적인 면으로만 우리 주변의 우주를 판단하고 우리 주변의 우주를 무시하며 살아온 오만한 삶은 아니었는지 나를 돌아본다. 내가 만들어낸 기준으로 가치가 있고 없는 삶, 존경받을 만한 혹은 비난받아 마땅한 삶, 의미가 있는 혹은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 내 옆에 존재하는 우주를 평가하지는 않았나 반성도 한다. 내 주변의 노파와 금복, 춘희들에게 좀 더 애정을 가져보는 삶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세이버 savor
국내도서
저자 : 틱낫한(Thich Nhat Hanh),릴리언 정 / 김훈역
출판 : 윌북 2011.05.20
상세보기


 제레미 리프킨의 책 '육식의 종말'을 읽고 페스코 채식을 8개월 정도 했던 적이 있다. 회식이 잦았던 회사를 다니고 있던 중이었기에, 윗분들에게 각종 타박을 들었지만 나는 나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 어이없게도 남미여행을 가면서 경유하게 된 뉴욕에서 쉑쉑버거를 먹으며 나의 신념을 깼고, 천상의 맛이라는 아르헨티나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또 고기를 먹고 난 이후에는 지금까지 그냥 아무거나 다 먹으며 살아오고 있다. 다만 의식적으로 육식을 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외식을 할 때에는 가급적 해산물을 고르려했고,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경우에는 육식을 배제했다.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예 먹지 않는 것은 아니고, 육류가 식탁에 있을때에는 기쁘게 섭취하는 편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식습관을 가진 사람을 Flexiterian 으로 분류하는데, 굳이 분류에 넣자면 나도 Flexiterian의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이 책은 Flexiterian이 섭취하는 음식을 의식하듯이 우리가 섭취 하는 음식 그리고 우리의 활동, 나아가 우리의 인생을 모두 의식하고 있을 때에서야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금의 현대인의 식습관을 보면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아침에는 잠을 깨우기 위해 '카페인'과 뇌를 돌리기 위한 '당분'을 섭취한다. 오후에는 멋진 근육질의 몸매를 위해 '단백질'을 먹으며 이제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지방'을 꾸역꾸역 먹어대고 있다. 나의 신체를 위한 음식의 섭취가 아닌 나의 욕망에 의거한 음식 섭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비정상적인 생체 시스템을 복구하고자 각종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골라 먹는다. 쳇바퀴를 도는 우리의 삶, 부처가 말한 까르마가 이 것은 아닐까 싶다. 그와 함께 우리는 우리의 신체도 자본주의적인 관점으로 input-output을 요구하며 혹사시킨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시니컬하게 말하지만 나도 욕망덩어리로 나의 까르마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음식섭취에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에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나의 주의력은 한정적인데 스트레스 컨트롤에 주의력의 대부분을 소모하여 그런 것 같다. 항시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살면서 그게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내면의 나와 만나고자 노력해본다.


+


메뉴나 운동에 대한 언급은 너무나도 뻔해서 skip! 이게 건강한 음식 맞을까? 의심스러운 음식들은 죄다 해롭다. 이것이 결론. 

 

'일상 > 불친절한 감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클린  (0) 2018.07.09
책 천명관의 고래  (0) 2018.07.08
세이버: 당신을 구하는 붓다싯 다이어트  (0) 2018.07.03
어둠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0) 2018.06.28
책 스님의 주례사  (0) 2018.06.24
책 피로사회  (0) 2018.06.18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스님의 주례사
국내도서
저자 : 법륜(Ven.Pomnyun)
출판 : 휴(休) 2010.09.13
상세보기


 법륜 스님의 책들은 내용이 모두 비슷비슷하다. 그런데도 읽을 때 마다 새롭다. 스님의 표현에 의하면 '습관'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그렇지! 내가 왜 이렇게 답답한 짓을 하고 있었을까' 하고 깨닫지만, 책을 읽고 돌아서면 다시 내가 여태 살아온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번뇌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첫 회사에 입사했을때의 주임님이 결혼 전에 읽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앞두고 진지한 얼굴로 책을 읽으시던 그 분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과거의 나의 연애의 마인드는 '아님 말고' 였다. 이런 태도 였기에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자주 싸우는 친구들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싸우고 난 뒤에 속상하다고 하는 그들에게 공감을 해주지 못하고 '그럼 그냥 헤어지면 되잖아?'를 남발했다. 결혼도 아니고 서로 좋아서 만나는 것이 연애인데, 그 연애가 괴롭다면 뭐하러 붙어 있는건지 이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 드는 것을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도 아닌, 고작 몇달 혹은 몇년 만난 사이가 뭐라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울고 불고 한단 말인가? 그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 다름을 받아 들일 수 없다면 쿨 하게 헤어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 나랑 다르구나 그런데 헤어진다고 해도 잠시 허전한 것 외에는 별로 아쉬울 것은 없겠구나 라는 나 잘난맛에 훌훌 잘 떠났다. 그래서 나는 내 삶에 매우 만족해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의 인연들은 그랬던 나에게 엄청나게 욕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벽에 똥 칠할때까지 살아가겠군. 


그런데 나의 태도는 정말이지 딱 연애에서만 용납가능한(?) 행위였다. 나의 행위는 실제로 법륜 스님이 평상시에 말씀하시는 삶과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 책은 결혼을 앞둔 혹은 결혼을 한 이들에게 하는 말이라 그런지 조금은 다르다. 결혼을 했으면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자신처럼(?) 혼자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한다.


법륜 스님은 책 전체에서 결혼이 괴로운 이유는 상대로부터 덕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고르고 골랐는데, 실제로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괴로움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결핍을 스스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간단하게 그 결핍을 해소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을 때에만 관심을 갖고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이 것은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친구, 심지어 부모자식 관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상대도 나와 같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때에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나의 이기심으로 상대를 만나지만 상대는 그저 나라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삶, 이 책은 전부 그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스님은 책 말미에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잘 굴러가고 있다고 하신다. 모든 부모들이 기도만 잘 드려서 자식들 모두 서울대에 들어가게 된다면 사회가 어떻게 될 것 같냐는 화두를 던지신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의 대부분의 일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고, 그렇기에 사회가 혼돈에 빠지지 않고 문제없이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 그저 막연히 바라며 욕심만 부렸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피식 웃음이 났다. 그와 함께 내가 바라던 것들이 모두 이러우지지 않은 덕에 순리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사회에 감사함을 느꼈다. 


삶에서 사건들은 내 욕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일도 많다. 내 인생이라고 내 뜻대로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와 함께 그럼에도 내 마음은 내 것이기에, 어떤 좋지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상황을 바꾸지 못해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행복해져야 하는 것이다. 


요즘의 나는 내가 내 욕심만 부렸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다시 한 번 반성해본다. 난 왜 맨날 자기 잘난 맛에 인생을 사려고 할꼬. 좀 더 나의 성질머리를 죽이고 겸허함과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껴야지.


+


남자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했는데, 몇장 읽지는 않으셨지만 마음에 들어하는 듯 했다. 이렇게 엄마에 이어 남자친구마저 법륜스님으로 영업 성공~ ㅋㅋ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피로사회
국내도서
저자 : 한병철(Han Byung-Chul) / 김태환역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2.03.05
상세보기



중세 시대의 종말이 각 개인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을지는 몰라도 행복마저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다. 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개인들은 자유라고 적힌 깃발만 전리품으로 얻었을 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발가벗겨진 채로 새로운 사회를 맞이해야했다. 처음에는 종교와 계급에서 벗어난 개인은 자유의 달콤함에 도취되었다. 신의 그늘에서 벗어난 그들은 그 무엇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가 주는 행복함은 잠시 뿐이었고, 각 개인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스스로가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과거의 가난이 신이 부여한 운명이었다면, 지금의 가난은 나의 '잘못된'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 과거의 불행이 신으로부터 벌을 받은 결과였다면, 현재의 불행은 좀 더 행복한 삶을 선택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 


그리하여 개개인은 현재의 재정 상태 뿐만 아니라 감정 상태까지도 일상에서 마주 하는 모든 이들로부터 평가당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소유물로 개인의 나태함, 혹은 그 부모들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죄악이라고 말하고 이제부터는 너도 할 수 있다는 자기 계발서들이 쏟아지고 개인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좀 더 나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은 물질적인 분야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행복이라는 감정 또한 세분화되어 등급으로 매겨졌다. 그리하여 좀 더 나은 등급이 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활동들이 상품으로 만들어져 쏟아졌다. 이렇게 많아진 선택지에서 개인은 근대의 축복이라는 '자유'로 선택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그 선택을 한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우리가 부유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은 우리 자신이 되버렸다. 우리는 잘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끝없는 자기 착취에 빠진다. 자유의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올바른 선택을 내린다면 나는 부유해지고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이 것이 저자가 '피로사회'에서 말하는 '긍정성의 과잉'의 시대이다. 그리고 자신이 되고자 바라는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은 '피로감'과 '우울증'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것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말을 한다. 자신의 욕망뿐만 아니라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내린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하지 않을 힘'에 대한 언급과 함께 활동 과잉에 내몰린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색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행동의 주체는 오직 잠시 멈춘다는 부정적 계기를 매개로 해서만 단순한 활동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우연의 공간 전체를 가로질러 볼 수 있다.


우리는 끝없이 내달리지만 내달리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싶은지, 돈을 왜 벌고 싶은지, 이 것을 왜 공부하고 싶은지 등등에 대한 성찰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시스템 위에서 열심히 쳇바퀴를 굴리는 삶을 '살아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성찰의 과정은 피곤하다. 사랑노래에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는 식상한 멘트가 항상 들어갈 정도로 우리는 우리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피로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능동형의 삶이 되어야 하고, 그 능동적인 삶의 시작은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저 책에 나온 멘트는 완벽하게 위빠사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소오름.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인생 수업
국내도서
저자 : 법륜(Ven.Pomnyun)
출판 : 휴(休) 2013.09.30
상세보기


가끔씩 엄마에게 법륜스님의 말씀을 전달하면, 나의 내공의 부족이라 스님의 훌륭한 논리와 설득력이 퇴색되어 버리는지, 엄마는 항상 속세에 살아보지도 않은 스님이 뭘 알겠냐고 시큰둥하게 답변을 하신다. 부모마음 다 똑같고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다 있는데, 그걸 내려 놓으라고 하는 스님은 자식이 없고 부모가 되어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거라고 말이다. 


나는 항상 엄마의 그럴듯한 말의 논리를 깨부수는 걸 좋아하는 변태적인 취향(?)이 있는지라, 이 것을 어떻게 받아칠까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고민 뒤에 이렇게 답변을 했더랬지. "엄마, 겪어본 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야. 겪어 봐도 못 깨닫는 사람은 하수, 겪어보고 나서 깨닫는 사람은 중수, 그리고 경험하지 않아도 다 아는 고수. 법륜 스님은 고수라서 겪어보지 않은 일도 아시는거라고!" 이런 나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지난 달 이후로 법륜 스님의 법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엄마가 매일 같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찾아보고 계신다고 했다. 그와 함께 법륜 스님이 참 재밌게 말을 잘 하신다고. (얏호 성공!)


법륜스님은 정말이지 고수다. 내가 알기로는 젊어서부터 출가하여 속세에 속했던 삶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즉문즉설에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고민에 대해 기가막힌 해결책을 알려 주신다. 질문자에게는 기가막힐 정도로 실행하기 어려운 해결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법륜 스님의 말씀의 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귀결된다. 세상의 행복한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모두 각자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사랑하는 상대가 날 행복하게 만든 것도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기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내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상대방이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싫어하는 그 내 마음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과 고통은 모두 내가 결정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 돈을 잃고, 몸이 쇠약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그 모든 순간에도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처음 접했을때 아름다운 생각일뿐더러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럴싸한 말로 홀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뇌로 사건을 인지하는 메커니즘을 가만 살펴보면 진짜 맞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법륜 스님의 이러한 말씀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몇마디 하면 다들 이렇게 반응한다. 뭐? 그래서 내가 불행한게 내탓이라고? 자기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겪어 보지도 않고 말을 그렇게 하는거야?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첫째는 안타까웠으며, 그 다음은 저렇게 밖에 생각하지해서 그 삶이 불행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기의 불행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피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그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받아 들이게 되었다. 내가 뭐라고 그들이 잘못 생각하며 살고 있네 마네 판단한단 말인가. 자신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정이 있겠구나, 그런 사정이 있는 삶이라 힘들겠구나 라고 그 삶 그자체를 받아들이는게 시덥잖은 선민의식으로 훈계하는 것 보다 더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불과 1년전의 내가 다르고 반년 전의 내가 다르다. 하지만 1년전의 나와 반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될지 절대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변화가 일어난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 생각이 이렇게 변하듯 내 마음도 변하고, 세상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변화는 괴로움은 아니지만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변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변한 사람을 붙들고 과거로 돌아가길 바라는, 일어나지 않을 일을 바라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변하는 것이 당연함을 깨닫고 그 것을 받아 들이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변하는 것을 알기에 변하기 전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괴로워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의 말대로 사람이 부처처럼 어찌 매순간 그럴 수 있겠냐만은, 다시 또 말하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 질 수 있지만 안 행복해지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그 작은 되돌아봄으로 지금 당장 행복해 질 수 있다.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여.


 

'일상 > 불친절한 감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스님의 주례사  (0) 2018.06.24
책 피로사회  (0) 2018.06.18
책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  (0) 2018.06.15
책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기적으로 바꾸는 틱낫한 명상  (2) 2018.06.11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2) 2018.06.04
책 맨 박스 Man box  (0) 2018.06.04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틱낫한 명상
국내도서
저자 : 틱낫한(Thich Nhat Hanh) / 이현주역
출판 : 불광출판사 2013.04.26
상세보기

삶에 위안을 주는 책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성경이 되고 혹은 불경, 코란이 될것이다. 나는 수준이 낮아서 그런 류의 텍스트를 해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명 풀이집(?)을 많이 애용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법륜스님의 책들, 그 외에는 에크하르트 툴레, 고엔카의 책을 좋아한다. 


틱낫한 스님의 이름은 꽤 예전부터(아마 2년전) 많이 들었지만, 책에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명상을 배우기 전 꺼내들었던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때 당시의 그의 책들은 내게 너무나도 뜬구름 같은 이야기였다. 이런 걸 사람들이 좋아한단 말야? 배부른 사람들이구만 이라고 생각하며 펼쳐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서야 텍스트들이 가슴으로 와닿는 기분이다. 그 이전에 이 글을 머리로 읽으려고 했던 내 자신이 생각나서 살짝 웃음이 났다.


법륜스님도 글에서 항상 '항시 깨어있음'을 강조하신다. 이 책도 골자만 후려쳐서(?) 요약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 자신을 살펴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련을 할 때 뿐만이 아닌 24시간 깨어 있기 위해 노력하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아무리 마음 먹고 하려해도 일반인에게는 하루에 1시간 이상의 명상은 힘들것이다. (매일 1시간씩 시간내어 운동하기도 힘든 것이 우리네 일상 아닌가!)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매순간 24시간 자신의 마음을 관찰한다면? 24시간을 수련의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다.


나는 고작 내 마음을 살피며 내가 어떤 상태인지만 겨우 파악할 수 있지만, 책에 의하면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자기의 본성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나의 본성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너무 많은 이론서를 읽은 탓인지 그 답이 무엇일지 가늠은 되지만 깨달은 적은 없다. 아마 끝끝내 알지 못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렴 어때, 라는 마음을 먹으며 산다.


특정한 일 이후로 요즘의 나는 내 생각이 부유하게 내버려 두었던 것 같다. 문자 그대로 나를 방치했다. 그때 당시 상처가 되었던 일인데도 나는 나에게 무심했다. 내가 내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애써 괜찮은척 하려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마음챙김이라는 말을 입으로만  무던히 하면서도, 실제로 챙기고 보살펴줘야 하는 상처는 저절로 낫겠거니 방치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이런데 타인들에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또 한 번 주변을 둘려보며 반성도 해본다.


어떤 일이건 마음이 없는 상태로 사건을 들여다봐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욕망으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려 든다. 그 욕망이 잘못된 결론을 도출시킨다. 예를 들면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 상태에서야 알 수도 없고 안다 한들 입증할 수도 없다. 죽은 다음에나 알게 될 것이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삶이 허망해진다. 허망해지고 싶지 않은 욕심으로 사후 세계는 반드시 있다 라는 잘못된 결론을 도출한다. 진실은 두번째 문제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결론이 문제가 된다. 24시간 매순간 욕망으로 세상을 받아 들이고 욕망으로 결론 내리고 그 결론을 진실이라 믿는다. 그래서인지 객관화가 쉬운 남의 일은 쉬워보인다. 내 일 또한 남 일 보듯이 받아들이면 좋을텐데, 쉽지가 않다.   


어떨때에는 결론부터 정해놓고 논리를 만들어 갈 때도 있다. 그 역시 욕망이 앞서는 경우다. 내 욕망이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 놓고, 그 결론에 합당한 근거를 끌어 모은다. 대다수의 속 앓이의 문제는 나의 내면에 있다. 욕망이 아닌 온전히 비워진 마음으로 사물과 상황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책에 상호의존성이란 말로 표현되어 있는 개념은 결국 우리는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자의 개념으로 내려가면 그 말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머리로 알게 된 것이라 24시간 일상생활에 적용을 하지 못한다. 내 내면이 고요해졌을 때에만 겨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바빠서, 나라는 비천한 생명의 삶을 챙기는데 급급할 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담마코리아의 10일 명상코스에 참가해보고 싶다. 신청일은 6월 21일. 늦지 말아야지.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1. 2018.06.11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맨 박스
국내도서
저자 : 토니 포터(Tony Porter) / 김영진역
출판 : 한빛비즈 2016.08.10
상세보기


맨 박스 Man box. 남자다움이라는 미명하에 남성들에게 씌워진 고정관념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타의적으로 맨 박스에 갖힌 남자들도 있지만, 반대로 우월감이나 권위를 위해 맨박스를 강화시키는 삶을 살아오는 남자들도 있으며, 성별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평범한 아니 착하기까지 하지만 맨박스를 강화시키는데 일조하는 남자들도 있다. 책은 그 모든 남자들에게 맨박스에 대해 알려주고, 어떻게 맨박스에서 벗어나 남녀 모두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구체적인 일화등은 조금은 뻔한 내용이라, 기존에 갖고 있던 의견을 강화시키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한 책이다.


맨박스를 읽으며 생각했던 첫번째는 '경제력에 따른 주도권'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남자들의 수입이 더 많았고(혹은 가정의 유일한 수입원일 가능성도 높았다), 경제력에 따라 주도권이라는 것이 생겨나는데 이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그리고 당연하지 않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커플 혹은 부부에서 여자의 경제력이 더 높다고 해서 여자가 항상 주도권을 갖지는 않는다. 그런데 남자의 경우에는 그럴 확률이 조금 더 높다. 그래서 책에도 자신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여자를 부담스러워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관계에서 오는 주도권을 잃기 싫다는 이유에서이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이런 뻔한 통계치(?)는 아니다. 이 현상 그 자체가 흥미롭다.


사실 경제력이고 주도권이고 다 차치하고서라도 관계에서 '파워'를 갖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조금 이상하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우월감을 느끼려고 또는 상대를 좌지우지 하려고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류의 관계는 꽤 많다. 맨박스에 갖힌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 쪽에서 '강한 남자' '자신을 리드 할 수 있는 남자'를 이상형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따지면 단순히 맨박스의 개념보다는,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싶은지의 문제가 된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부분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로 생각했던 부분은 맨박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는 박스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가 갖힌 박스는 '장녀 박스'이다. '남자'인 동생보다 나는 더 남자답게 자랐고, 감정을 잘 노출하지 않고 독립적이고 강한 모델을 꿈꾸며(혹은 꿈꿈 당하며) 자랐다. 여자임에도 첫째 아이라는 이유로 맨박스와 함께 또래보다 일찍 철들 것을 암암리에 강요 받은 것이다. 내가 장녀라서 이런 생각을 하겠지만, 둘째 아이, 셋째 아이도 각자 강요 받았던 각자의 박스들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생각이 드니, 우리 모두는 각자를 꼭 가두는 박스를 하나씩 끼고 사회를 살아가는 것 같다. 


예수가 그랬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그 진리는 우리는 고작 사회따위가 규정한 박스에 갖혀 살 필요 없이, 존재 하고 싶은 그 모습 그대로 존재 가능하다는 말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이갈리아의 딸들
국내도서
저자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 히스테리아역
출판 : 황금가지 1996.07.01
상세보기

 난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페미니즘이 뭔지 정확히 지각하지 못한 상태로 미디어가 재포장한 페미니즘만을 접했는데, 여자인 내가 봐도 밥맛이었다. 억압되어 있는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아닌, 밥그릇 싸움으로 묘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살아오면서 내가 성차별을 겪어보지 못한 것에 그 이유가 있었다. 학창시절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남성'인 동생보다 나를 편애하셨다. 주변에서 우쭈쭈 해주니 정말 스스로가 잘났다고 착각하며 살았고, 내편이 있었기에 행여나 손해볼일이 있을 것만 같으면 항상 맞서 싸우며 나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다. 내가 겪은 좁은 삶 덕택에, 나는 성차별을 겪은 경험을 공유하는 여자들에게 되려 그건 성차별 문제에 앞서 개인의 문제라고 대꾸했다. 순전히 내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온 나라는 샘플이 존재하는데, 여자들이 성차별을 겪으며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녀들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성차별을 호소할때마다,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 자신이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또 한명의 가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불과 작년이었다.


 사회, 아니 삶이라는 것 자체를 다른 각도로 조망하게 되면서 그제서야 '진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를 접한 다음에야 밥그릇 싸움이라는 단편적인 현상이 아닌 '인류애'를 위한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는 페미니즘이 바라보는 사회의 갈등을 '남성'과 '여성' 단순히 성으로 이분화된 갈등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그랬을지 모를지언정 지금은 단순한 성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아니라, 인종, 계급, 취향 등 '차이'에서 오는 그 모든 차별에서 억압받고 있는 모든 이들의 해방 운동으로 발전했다고 느껴진다.


이 소설은 단순한 미러링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작가는 사회를 주도하는 성과 억압받는 성을 단순하게 전복시키는 것을 벗어나 '이갈리아'라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 사회는 설득가능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강했던 맨움이 주도하는 사회가 있었지만 사회가 발전할 수록 움이 주도하게 되었다는 점(우리는 현재의 과도기에 있지만 갈수록 여성의 권리가 강화되어가고 있다는 것)과 움과 맨움의 격차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그것이다.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단순히 남성에 억압받고 있는 여성의 정서적 만족감을 위해서 쓰여진 판타지가 아니라, 현재의 격차를 치밀하게 분석-비판한 사회적인 보고서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페미니즘 문학으로써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상 > 불친절한 감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2) 2018.06.04
책 맨 박스 Man box  (0) 2018.06.04
책 이갈리아의 딸들  (2) 2018.05.28
영화 리틀 포레스트  (2) 2018.05.13
책 나는 4시간만 일한다  (6) 2018.05.12
책 인간실격  (3) 2018.05.09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
  1. 2018.05.29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