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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esta/2014 Poland

[폴란드여행_2014/06/07] 10.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의 방문

by 여름햇살 2014.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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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전날 신청해둔 두가지 투어를 가는 날이다. 오전에는 아우슈비츠를, 그리고 오후에는 소금광산을 가기로 했다. 약속 시간 30분 전에 약속 장소로 나갔더니 아무도 없다. 너무 쓸데 없이 일찍 나갔나, 혼자 머쓱해하며 근처를 구경했다. 사실 올드타운 성문 바로 앞이라서 어차피 올드 타운이긴 했지만, ㅎㅎ




그래도 같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이다. 떠오르는 태양빛에 반사되는 벽돌은, 해질무렵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기는 싫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천국으로 가기로 했다. ㅋㅋㅋㅋ



엄청 큰 사이즈의 카페라떼와 비스코티. 원래 카페라떼를 스몰로 주문했더니, 직원이 스몰 사이즈의 라떼는 니가 생각하는 라떼가 아니야, 미듐으로 주문해야 될꺼야 라고 하길래 그럼 미듐으로 달라고 했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유리컵에 라떼가 나온다. 사이즈에 깜짝 놀랐다. 내가 그렇게 많이 먹게 생겼나 -_-... 아침도 안 먹고 해서, 간단하게 요기라도 할 겸 비스코티를 주문했는데 비스코티를 안시켜도 충~분히 배가 부를 뻔 했다. 비스코티의 맛은 최악. 비스코티를 먹는건지 돌덩이를 씹는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딱딱했다. 나중에는 라떼에 넣고 불려서 먹었다...-_-



창가 자리에 앉아서 괜히 맞은 편 창가 사진도 한 번 찍어보고. 볼때마다 느끼지만, 창틀의 꽃화분은 참 예쁘다. 우리 집 창가에 있는 바질과 루꼴라는 잘 있으려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여담으로 다녀왔더니 나의 귀여운 스위트 바질들이 바싹 말라 있었다..............ㅠ_ㅠ)


약속시간 5분전에 다시 약속장소로 갔더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다. 티켓을 보여주고, 관광버스에 올랐다. 생각보다 사람이 꽤 많았다. 자리에 앉으니, 가이드 아저씨가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아우슈비츠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예정이며, 도로 사정에 따라 시간이 변경 될 수 있다고 했다. 



가는 내내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는데, 잘 못알아듣겠는 영어 발음을 귀기울여 들으니 잠이 솔솔 온다. 도착할때까지 버스에서 곤히 잤다. 내리기 직전에 요런 스티커를 배부해준다. 같은 투어 일행임을 알 수 있도록 이 스티커를 옷에 붙이라고 한다.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의 접착력이 약한 스티커였다.



그리고 입구. 안으로 입장하기 전에 매표소의 화장실을 다녀올 사람들은 다녀오라고 했다. 가격은 2 zlt. 처음으로 사용해본 유료화장실.





드디어 입장. 입장전에 오디오가이드 같은 기계를 주는데, 주파수를 특정 번호에다 맞추라고 한다. 특정 번호가 되자,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함께 이동하긴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탓에 이렇게 무전기 같은 헤드셋으로 가이드를 해 주었다. 요긴하긴 한데, 그렇지 않아도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가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즐거운 투어가 아닌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의 투어가 진행되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감금하고 억압하기 위한 장소. 그런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가라 앉았다. 보기만해도 소름이 끼칠 듯한 철망들과 어마어마한 규모는 , 그 사건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언뜻 보면, 사람이 사는 평범한 주택가처럼 보인다. 수용소가 아닌 일반 빌라 같은 외관. 그 당시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었을까? 유난히 하늘이 참 맑았다.





내부는 박물과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남아있는 그 때 당시의 사진 혹은 그때 당시의 물건들이 전시되고 있었으며,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도나 설명들이 채워져있었다. 사진으로 느껴지는 그때의 처참함으로 절로 숙연해졌다.



이 사진은 수용인들을 선별하는 과정을 포착한 것이다. 노역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노인, 환자 등을 검열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이 곳 수용소로 오게 된 사람들은 유태인만은 아니었다. 유태인이 가장 많았으며, 집시, 동성애자, 범죄자들, 그리고 전쟁 포로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원들이 이 곳 아우슈비츠로 집결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곳이 유럽대륙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곳이었기에 다른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도 이 곳으로 보내지기도 했다고 한다. 한번에 통제하기 위해서 그렇게 이동되었던 것 같다. 




이 것은 수용소의 사람들을 단체로 처형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독가스 통이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깡통들, 치클론 B라는 원래 살충제로 개발되었던 가스를 사용하여 그 많은 인원들을 독살하였다고 한다. 어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필요 없는 존재라고 규정 짓고 그의 생명 앗아간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도 되지 않고 용서도 되지 않는다. 





이 것은 희생자들의 실제 모발이다. 조금은 그로테스크하기 까지 한 전시물이었지만, 유태인 학살의 끔찍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물품. 수용소로 오면서 자신의 물건들을 담았던 가방, 그리고 그러한 물건들. 모형이 아닌 실제 사용되었던 것들이 전시되고 있어서 더욱 침울했다. 그들은 자신의 소지품을 저 가방에 담으며 짐을 꾸릴때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자신들의 운명을 알면서도 생필품들을 챙겼던걸까, 아니면 그렇게 처참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물건들을 챙겼던 것일까.




희생자들의 물건 중 가장 눈물이 왈칵하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아닌, 산처럼 가득히 쌓여 있던 신발이었다. 신발은 자아를 상징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 수많은 신발의 주인들은, 자신의 신발처럼 처참해진 채 사라져갔다. 신발만 남긴 그들은 어디로 간걸까.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모습.



이렇게 한 통로의 전시관이 모두 신발이었다.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이 어마어마한 수용소를 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니. 인간의 사악한 면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 곳은 희생자들의 기아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었는지 짐작가능한 사진들이다. 



희생자들이 실제 착용했던 옷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성인 여성은 수용소에서 구출 당시에 몸무게가 30kg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몸무게였다. 끔찍한 모습에 절로 눈물이 났다. 왜 그들은 이런 일을 겪었어야 했던 것일까.



희생자들의 사진들. 사진 밑에 이름과 식별 번호, 그리고 해방 날짜와 그리고 사망 년월이 기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해방 이후 1,2년 내에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방이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실제 사용되었던 침대의 모습.





이 곳은 총살이 이루어졌던 벽이라고 한다. 희생자들을 뒤돌려 세우고, 처형을 진행했다고 한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바닥에는 꽃들이 놓여져 있었다.


관람 도중에 어떤 아저씨가 핸드폰 전화를 받았는데, 가이드가 꽤 많이 혼을 냈다. 이 곳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곳이니 전화를 당장 끊으라고, 전화를 끊을 때까지 쫓아갔었다. 





건물의 내부는 그토록 끔찍한데, 건물의 바깥은 모순적일만큼 평화롭고 아름답다. 기분이 더 묘했다.




섬뜻하기까지한 경고문.







이 곳은 처형당한 희생자들의 화장터로 쓰였던 곳이다. 


또 다른 수용소로 이동했다.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첫번째 전시관에서 보았던 검열의 장소였다. 



이렇게 철로로 희생자들을 이동해왔다고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그런 끔찍한 참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더 슬펐다.






실제 수송에 쓰였던 열차. 창문도 없는 짐칸. 짐승처럼 사람들을 채워 넣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첫번째 방문 했던 곳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었으며, 그 만큼 건물의 수도 많았다.




이 곳은 희생자들의 침대로 쓰였다고 한다. 허술하게도 지어졌으며, 한 층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거취하게 해서 종종 무너져내렸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바깥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질때가 있었는데, 내부라고 한 듯 영상의 기온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 곳은 희생자들이 씻을 수 있는 세안장이었는데, 1년에 2번 정도만 샤워가 가능했다고 한다. 처형을 하지 않더라도, 청결하지 못한 위생으로 여러가지 질병으로 사망한 희생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반나절의 투어가 끝났다. 투어 내내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한 두 번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살아가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했다. 인간은 전쟁과 살육에서 과연 멀어질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인간 내재적인 선함에 희망을 걸어 본다. 


뜻 깊은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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