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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by 여름햇살 2016.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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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개정판)
국내도서
저자 : 장 지글러(Jean Ziegler) / 유영미역
출판 : 갈라파고스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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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자유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를 완독한 뒤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남는 질문은 이 것 하나였다. 두 권의 책 모두에서 신자유주의의 잔혹함을 호소하고, 개인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렇게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많음에도, 왜 우리는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소수만이 이런 약육강식의 정글을 원할뿐, 대다수가 이 게임에서 즐거워하지 않는데도 왜 우리는 계속 이 무대위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  돈이 수단이고 인간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인간이 수단이고 돈이 목적이 된 사회에서 우리 모두 돈을 위해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무대에 말이다.


결국에는 끝없는 인간의 탐욕이 문제이고, 그 탐욕이 다른이에게 폭력으로 행해진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자본의 힘은 잔인하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시장내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자국민 보호라는 명분하에), 소를 불태우고 농작물을 내다 버린다.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들보다, 배부른 이의 배를 더 불리기 위한 일을 '자유'라는 명목하에 거리낌없이 행한다. 그런데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그토록 기아에 내몰리게 된 원인이었던 조국의 식민지는 그들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것일까?


이 패러다임의 문제는 또한 '기근이 점점 높아지는 인구밀도를 적당히 조절한다고 믿는' 우월주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배불리 먹고 사는 것은 내가 우월하기 때문이고, 가난한 너는 열등하기 떄문이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열등한 니가 굶어 죽는 것은 내가 알바가 아니다, 라는 무시무시한 생각. 실제로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살고 있는 원숭이 조차도 자기 종족의 보호를 위해 먹을 것을 기꺼이 베푼다. 그것 또한 종족 보존의 본능이다. 그들은 자신 이외에는 같은 인류로 보지도 않는 것일까? 


이렇게 분노하게 되지만, 막상 나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일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노예 같은 삶을 부추기지 않게 생각 없는 소비(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패스트패션에 대한 죄책감이 더욱 증폭되었다)를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육류의 섭취를 줄여야겠다. 예전에 읽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에서 언급했던 내용(사람에게 식량이 돌아가지 않고 그 식량으로 소를 먹이고 시장에 내놓는 시스템)이 또 나의 양심을 찔렀다. 결국 우리는 소를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약자를 잡아 먹는 꼴이다. 지각있는 인간으로 살아야지, 또 한 번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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