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May 2017
사실 나는 이 날 아무 계획이 없었다. 이미 2박 3일로 다녀온 여행 한 번 만으로도 지쳐서(누가 들으면 내가 운전한 줄 ), 그냥 집에서 뭉개고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테이블에서 맥북으로 유트브에 올라온 대선토론회보며(꿀잼, 멈출 수가 없었음 ㅋㅋㅋ)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멜번놈도 나를 따라 맥북으로 열심히 뭔가를 하더니,(멍청하게도 나는 그때 당시는 그냥 자기 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서야 매일 여행 루트 찾고 있었단 걸 알게 되었다 ㅠ_ㅠ 미안하오 ) 아침을 뭘 먹겠냐고 물어본다. 선택사항이 있냐고(너 맨날 오믈렛 주잖아의 완곡 어법) 물었더니 물론 있다고 물어본다. 찬장을 뒤지더니 오트밀 먹을래? 라고 하길래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온 오트밀. 왜 버터를 올려 주는 거죠? 그냥 김치를 올려줘요. 제발.
아침도 에피타이저와 본식이 있단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매번 두번씩 먹을 것을 주는데 내가 자꾸 껌딱지마냥 테이블에 붙어 있으니 저인간이 배가 고파서 자꾸 저기 앉아 있나 싶어서 계속 이것도 주고 저것도 주는 건가 싶기도 하다.
계속 앉아 있었더니 계속 앉아 있을 거냐고 한다. 그러면? 했더니 야라 밸리 가야지! 라고 한다. 멜번에 가기 전에 야라 밸리 와이너리 가자~ 라고 했던 걸 기억했던 모양. 그제서야 후다닥 올 갈아 입고 가방을 챙겼다. 원래 머리를 저녁에 감기 때문에 10분이면 준비가 끝났다.
그래서 배나온 아저씨랑 브루어리도 가고.
2017/05/26 - [Siesta/2017 Australia] - [멜번여행] 19. Cold stream
멋진 와이너리도 방문하고.
2017/05/26 - [Siesta/2017 Australia] - [멜번여행] 20. Domaine Chandon
또 다른 와이너리도 방문하고
2017/05/27 - [Siesta/2017 Australia] - [멜번여행] 21. Yering Station Winery
멜번놈이 밥 먹을꺼라고 또 다른 브루어리로 왔는데 식당 문 닫아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도 나오고 ㅋㅋㅋㅋㅋㅋㅋㅋ 타이밍 감사합니다...
식사는 못했지만 예정된 디저트는 먹어야 된다며 아이스크림 팩토리에도 오고. 완벽했던 야라밸리에서의 하루였다. ㅎㅎ
2017/05/28 - [Siesta/2017 Australia] - [멜번여행] 22. Yarra Valley Chocolaterie & Ice Creamery,
멜번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시티 보러가자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는데 어리둥절-_-? 응? 뭘 하겠다고?
이런 전망대가 있어서 높은 곳에서 주변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오른쪽 나무 너머가 시티라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네.. 시티는 시티가서 볼께요. 시큰둥했더니 같이 시큰둥한 멜번놈. 하아, 나도 학원가서 리액션 좀 배워와야되는데..
좁고 가파른 계단 오르다가 사망할뻔. 와.. 나 처럼 겁많은 애는 두 번은 못 오를 계단이었다.
밖에 나오니 코리아가 눈에 띄길래 사진 한 번 찍어줬다. 전쟁 관련된 장소인 듯 했다.
그리고 지친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두번째 Brewery에서 점심을 먹었어야 했는데 못 먹어서 더 힘이 빠졌던 것 같다.
팬 프라이 했다며 다시 줬는데 여전히 맛 없구요.. 네..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먹고 두번째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크리스가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하고 난리치고 ㅋㅋㅋㅋ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 크리스가 자기 배고프다고 김을 먹을까 하고 든다. 아직 하나도 뜯지 않은 상태인 김포장. 먹던 말던 니 맘대로 하라고 강하게(?) 나갔더니 의심쩍어 하며 김을 하나 뜯는다. 그러면서 안에 내용물을 보더니 과대포장이라고 지구환경에 안 좋다고 또 한소리 시작한다. 아 됐고 일단 먹기나 먹으라고 했더니 무서워하며 하나 먹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거 왤케 맛있냐고 물어본다. 걸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얏호. 처음 먹을 때 경이로움으로 인한 동공지진도 살짝 본 듯.
그러면서 멜번놈에게 이거 이렇게 맛있는 건 줄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니 멜번놈이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집어 먹는다. 크리스는 김을 손에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먹는다.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두 번째 김봉지를 뜯고 있는 크리스 ㅋㅋㅋㅋ 멈출 수 없다고. 귀여워서 죽을뻔했다. 음식에는 진짜 까다로워서(멜번놈이 Fussy라고 표현함 ㅋㅋ) 절대 안 먹을 줄 알았더니 결국엔 너도 한국김의 위용 앞에 무릎을 꿇는구나. 뭔가 쓸데 없이 우월감이 들었다. (누가 보면 김공장에서 일하는 줄)
두번째 메뉴. 원래 멜번놈도 매우 건강하게 먹는 편이라 자기 평상시에 먹는 스타일대로 한 끼를 만들어 줬다. 얘도 전형적인 호주인-_- 답게 살찌는 걸 싫어해서(내가본 호주애들은 다 먹는 것과 몸에 신경을 쓰는데 왜 뚱뚱한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호주 비만율이 세계 탑 5에 드는 것으로 아는데..) 저녁마다 roasted vegetables이라고 사진 찍어 보내주더니, 드디어 이날 한끼를 주셨다. 컬리플라워, 당근, 가지 호박, 그리고 팬에 구운 두부! 첫날 내가 나 베지테리언 할꺼라고 장난식으로 말했더니 마트에서 챙겨온 두부! 감사합니다.
세번째 김을 뜯어서(순식간에 다 먹어치움ㅋㅋㅋㅋ) 저렇게 올려 놓는 크리스가 웃겨서 크리스의 접시를 찍으려고 폰을 드밀었더니 자기 찍는 줄 알고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크리스를 찍을 생각은 1도 없었지만 노력이 가상하여 사진 한 장 찍어 드렸다...
그리고 이날은 멜번놈과 내가 처음 만난 장소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ㅋㅋㅋ 예이! 이 얼마만의 밤문화 즐기기인가. 생각해보니 2016년 12월 31일에 멜번놈과 갔던 이태원 프로스트가 마지막인 듯했다. 와.. 역시 나이 드니 맨날 집에만 있게 되는구나. 하핫.
밤 늦게 돌아올 방법이 없으니 차를 가지고 갔는데 시티에 주차시킬 곳이 없어서 고생을 좀 했다. 역시 시티의 밤은 화려하구나.
1월 2일 사고 이후로 처음 힐을(아무래도 무서워서 탱고 배울때 연습화를 가지고 왔다. 왠지 허리에 제일 좋을 것 같아서 ) 신어봤는데 엉덩이와 허리는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되려 5개월 가량 스니커즈에 익숙해진 내 평발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놔 ㅋㅋ 그냥 스니커즈 신고 올 걸 그랬나. 괜히 비루한 몸뚱이로 설쳐댔구나..
10시쯤에 갔는데 사람이 없이 한적하다. 일찍 가자고 결심하는 순간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나중에서는 꽤 붐볐다. 사람이 많아지니 괜히 더 흥겨워져서 좀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화장실 갔다올때마다 서로 누구랑 시덕거리고 있었냐고 체크하고 ㅋㅋㅋ 멜번놈이 자기 이제 늙어서 더이상 이런 곳에서 여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슬퍼하길래, 니 말이 맞다고 동의를 해줬다.
구두 위에 서 있는 것이 너무나 지옥같아서 빨리 가고 싶어서 1시쯤에 가자고 했더니, 자기 이런 곳에 너무 오랜 만이라서 좀 더 있고 싶다고 해서 좀 더 기다려줬다. 몇개월동안 너무 일만 하시더니 간만에 유흥을 즐기셔서 행복해 보이는 듯 했다. 가만 있을 수 밖에. 집으로 돌아갈때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좀 더 있을 수 있었다고 아쉬워하는데 아이고 이놈아 미안하다 내가 눈치 없이 엎에 붙어 있었구나 진작에 알아서 집에 먼저 가줬어야 했는데 내죄다. 나역시 발바닥 찢어지는 고통만 없었다면 더 있자고 했을텐데, 쬐끔 아쉽긴 했다. ㅎㅎ 하지만 원래 아쉬울때까지만 놀아야 재미있는 법이니! 그렇게 또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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