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오늘도 맑음

[미니멀리즘] 14. 간만에 쇼핑

by 여름햇살 2017. 3. 11.
반응형

요즘 미니멀리즘을 잊고 살았는데, 그 이유는 미니멀리즘을 계속해서 상기시킬 필요가 없을 만큼 절제된 생활이 몸에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뭐가 그리도 끝없이 사고 싶더니, 이제는 돈을 쓰며 스트레스를 풀어 볼까 하고 작정하고 뭔가를 사려고 해도 사고 싶은 것이 없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몇년 전만 해도 갖지 못하면, 먹지 못하면, 가지 못하면, 하지 못하면 병날 것 마냥 칭얼거리던 자아가 지금에 와서는 없어져 버린 기분이다. 그때에 비해 훨씬 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가끔씩은 예측불가능한 천방지축의 내가 그립기도 하다. 어쩌면 미니멀리즘이 나를 이리 만든 것이 아니라, 나이 든 자아가 나의 삶을 전부 축소화 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이고 나니, 의미 없는 많은 것들이 더이상 나를 기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주의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사실 몇가지 없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며 더욱 깨닫게 된다.

멜번에 있을때 구매해서 얼마 전까지 사용하던 에코백. 헬스장에서 사용할 운동복과 갈아 입을 속옷, 그리고 가끔씩 싸가는 점심 도시락을 맡았던 보조 가방. 이게 사진으로는 좀 덜 낡아(?) 보이는데, 진짜 21세기에 저런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자가 있을까 의심이 될만큼 낡았다. 이상한 결벽증에 삼일에 한 번씩 세탁기에 넣고 세탁을 했더니, 가방의 조직이 일어나다 못해 닳고 있었다. 가방 끈도 곧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이제는 진짜 놓아줄 때가 온 것 같다. 


2016년 4개의 에코백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그렇게 하나만 남았다. 하나는 지인에게 선물을 줄 때 포장지 대신에 넣어서 주었고(폴란드 여행때 사온 에코백 1), 다른 하나(멜번에서 계속 사용하던 아이)도 낡아서 버렸다. 그렇게 딱 하나(폴란드 여행때 사온 에코백 2)만 남았다. 딱 하나의 에코백만 사용하고 싶었는데, 멀쩡하고 추억에 담긴 물건들을 버리기 저어하여 끝까지 사용했는데, 결국에는 하나만 남았다. 추억이 서려 있어서 슬플 줄 알았는데, 되려 홀가분하다. 역시, 많이 가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애증의 신발. 사실 나는 이 신발을 산 기억이 없다. 그런데 엄마가 신발장에 있더라며 가지고 가라고 해서 가지고 와서 다시 신게 되었는데, 까탈스러운 평발인 내 발에 너무 잘 맞아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신었다. 사실 버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문자 그대로 닳아서 버리게 되었다. 이게 싸구려 인조 가죽인지라 예쁘게 낡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싼티 작렬하게 주름진 부분이 뜯겨(?) 나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티도 잘 안나고(솔직히 누가 남의 신발을 주구 장창 쳐다보고 있겠는가), 발도 너무 편해서 계속 신고 있었는데 이제는 도저히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낡아 버려서 처분을 결심했다. 밑창 부분은 하나도 닳지 않아서 뭔가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에 버렸다. 회사에도 신고 다니고 외근 나갈때도 가끔씩 신고 다녀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를 쉽게 처분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신발을 대체할 신발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스니커즈 형태를 갖되 대신 몇 년동안 신을 수 있게 가죽으로 되어 있고,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한 달을 넘게 찾아도 없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이 아이가 좀 더 처참(?)해 질때까지 신겠다 라는 생각으로 좀 더 버티다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았다.

내가 원했던 것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이 심플하고, 튼튼하고 질 좋은 가죽으로 되어 있어서, 낡더라도 가죽 특유의 느낌으로 오래 신을 수 있을 것 같다. 수제화랍시고 수령하기 까지 2주가 넘게 걸렸지만, 주구장창 매일매일 이 아이만 신어야겠다.

그리고 4개월만의 쇼핑. 나의 가장 최근의 쇼핑은 11월 초로,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져서 겨울 옷을 몇벌 샀던 것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 쇼핑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되었다. 아니, 원래 회색 후드 집업을 작년 여름부터 갖고 싶어 하긴 했지만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해서 그냥 구매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팟캐스터가 때마침 후드 집업을 만들어서 판매한다길래 방송을 듣는 중에 귀신같이 쇼핑몰에 접속해서 구매했다. 그렇게 충동구매였지만 아주아주 만족 중이다. 사이즈도, 질도(고급 원단을 사용했다고 하더니, 진짜 질이 좋다), 너무나도 완벽하다. 앞으로 더워질때까지 토-일 사복(?) 패션에는 이 아이만 입을 예정이다.


겨울이 다 지나간다. 이제 봄맞이 333을 해야 하는데, 이젠 굳이 안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 겨울에도 정해 놓은 아이템의 2/3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나의 패턴은 보면 항상 입는 것만 입는다. 역시, 그냥 질 좋은 옷을 한두벌 구매해서 그것만 주구장창 입는 것이 나의 스타일에 맞는 것 같다. 아침마다 옷 고르기도 귀찮다. 삶에서 결정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에 시간 낭비 하고 싶지가 않다.


2016/12/25 - [일상/오늘도 맑음] - [미니멀리즘] 13. 안 쓰는 물건 나누기

2016/12/12 - [일상/오늘도 맑음] - [미니멀리즘] 12. The project 333 2016 Winter 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