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 점심을 먹은 후에 동료들과 산책하며 마주한 벚꽃. 작년에도 이 길을 오가며 벚꽃이 참 예쁘다고 감탄했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길을 걸으며 무조건 이 번 주말에 모교를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벚꽃하면 경희대지 암암. 그리하여 오늘 학교 수업 마치자마자 쪼르르 달려왔다. 원래 수업이 3시까지라고 공지를 하기에 햇빛 짱짱한 낮에 올 수 있겠다고 기대했었는데, 수업이 5시 넘어서 끝나는 바람에 아쉽게도 어둑어둑해진 상태로 왔다. 그래도 내 눈에는 마냥 예쁘지만. 3년만에 온 나의 모교.
회기역 1번 출구에서 나올때마다 마주하는 서래마을. 이 곳을 볼 때마다 이 곳이 처음 생겼을때 그 맛에 열광하던 동기들이 생각난다. 고기에 대해 호불호가 없는 나라서 먹으면 먹는구나 했는데, 나 외에 다른 모든 이가 이 곳 고기 양념이 너무 맛있다고 좋아했더랬지. 졸업 이후에는 서래갈매기 고기를 한 번도 먹지 않아서, 이제는 무슨 맛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 서래갈매기의 간판을 볼 때마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이 난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새로 생겨난 이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랬다. 원래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그 자리를 밀어버리고 이렇게 흉물스러운 건물을 지어놨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경희대의 매력인데, 놀이동산에서나 볼법한 샛노란 색의 건물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희대의 자랑 본관 건물. 어릴때는 애들이랑 저 사자위에도 올라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내가 학교 다닐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아닌 그냥 동네 주민들이 가족단위로 나들이를 와서 놀고 있었다. 예전에는 토요일 일요일에는 번데기, 솜사탕 파는 노점까지 있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없었다. 너무 늦게 가서 다들 철수한건가.
그리고 평화의 전당. 저기 올라가는 경사로가 너무 가파르기에 이렇게 멀찍이서 사진만 찍었다. 괜찮아.. 학교 다닐때 많이 갔으니..
그리고 중앙도서관. 1-2학년때는 술처먹고 노느라 도서관에 잘 가지 않았는데, 3학년때부터는 책 빌려 본다고 꼬박꼬박 갔다. 인기도서 예약해두고 알림 문자 올때마다 씬나게 뛰어가고는 했었는데. 시험기간에는 중앙도서관에서 다른 과 학생들과 눈도 잘 맞는다는데. 가끔씩 공부하러 갔던 1,2 학년때는 남자친구가 있어서 함께 가느라 어림도 없었고(물론 함께 가지 않았다고 한들 뭐가 달라졌겠냐만은), 3,4학년때는 한학기에 중간 기말 2번이 아니라, 범위 많다고 3,4번씩 시험을 치르게 하셨던 교수님의 눈물나는 배려심에 단과 건물에 가까운 의대도서관이나 푸른솔 도서관에서만 처박혀 있었다. 단과대 건물과 거리가 먼 중앙도서관에서는 정말이지 공부한 기억이 없다....
헐떡 고개를 지키고 있던 마징가탑. 그렇게나 가팔라 보이던 헐떡고개(그래서 이름이 헐떡고개..)가 이다지도 평평한지 처음 알았고, 그렇게나 길어 보이던 마징가탑이 이렇게나 작은 조형물이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이 곳에 건물을 또 하나 짓고 있었는데 아마 청운관이 이사오려나보다.
그리고 테니스 장도 정말 작아졌다. 운동장의 반을 주차장으로 쓰고 있어서 조금 씁쓸했다. 축제때 이 곳에 무대가 세워지디고 하곤 했는데, 이렇게 작아서야 이제는 이 곳에서 축제도 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음대 건물인 크라운관. 건물 모양이 왕관이라 크라운관이다. 정말 귀엽다.
그리고 음지 가득한 곳에 처박혀 있는 약대건물. 위치 때문에 정문을 이용할 일이 없었다. 정문으로 다니면 그렇게나 훈훈한 문과 남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데, 단과대 건물이 이 곳에 있던 우리는 맨날 여기서 코흘리개 경희중고생들이 축구하는 것만 구경했다.
학생회관건물. 중앙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아서 이 건물에는 1-2학년 때는 올일이 없었는데, 3학년때부터 불교동아리 모임에 가끔씩 방문했다. 과 선배 오빠 중 한 명이 불교동아리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저조한 회원수에 동아리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우리과에서 나처럼 만만한 애들을 가입시키고 모임이 있을때마다 오늘 저녁에 뭐할꺼냐며 동아리방에 가자며 빚받으러 온 빚쟁이마냥 굴었다. 강제적으로 가긴했지만 갈때마다 둘러 앉아 고민거리를 하나씩 말하는 시간도 좋았고, 그 고민거리에 스님이 해답인지 놀리는건지 잘 모르겠는 알쏭달쏭한 말씀들을 해주어서 좋았다.
그리고 정문보다 나는 이 옆문(?)을 더 많이 다녔는데 집이 이 쪽 방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편의점 공세에도 이 가게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물론 이 곳에서 한 번도 무언가를 구매한 적은 없다.
학교식당 메뉴가 우리 학교보다 좋다고 동기들과 종종 식사하러 가곤 했던 외대.
그리고 내가 4년간 살았던 이문2동의 골목. 경희대 후문에 위치한 이 골목에서 4년간 총 3개 곳에서 머물렀다. 지금도 하나하나 다 기억나는 그 집들이 잘 있나 구경가려고 하다가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올라가고 발길을 돌렸다.
내가 살던 이문2동은 이제 이문 1동이 되었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이 곳 맞은 편에 있는 치킨집에서 치킨 먹으며 놀던 밤. 친구 중 하나가 엄마에게 밝은 곳에서(?) 여자 친구들 이랑만 놀고 있단 걸 보여줘야 한다며, 우리를 이 곳으로 끌고가 강제로 사진을 찍었다. 아직까지 기억나는 그 날 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경희대 운동장보다 더 가까워서 여름이면 산책하곤 했던 외대 운동장. 그때는 그렇게나 넓어 보이더니, 이번에 다시 오니 예전에 느끼던 크기의 절반으로 느껴졌다.
외대 정문 앞. 당시에는 이 곳 앞에만 스타벅스가 있어서 대학교 1학년때 동기들과 어쩌다 한 번씩 가곤 했다. 그때는 경희대 정문 앞에 커피빈, 외대 정문 앞에 스타벅스가 하나씩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밥값보다 비싼 각종 프랜차이즈 카페는 모두 다 눈에 보였다. 새삼 달라진 모습에 낯설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그대로라서 정말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역 앞에 있는 허름한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주문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집에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 먹고 나서는 맞은 편 공차에서 밀크티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에, 20살로 보이는 듯한 어린 여학생이 명품 브랜드의 지갑을 꺼내 들고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오기까지 단 한번도 빈부격차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때부터 지내던 친구들과는 허물없이 지냈고, 서로의 집으로 가서 자주 놀았기 때문에 그 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 정도였다. 그리고 남들 사는 것처럼 우리도 살고 있었고 우리 사는 것처럼 남들도 살고 있었기에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유복하다'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정말 이상한 경험 중 하나는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집이 잘 산다고 비밀이야기를 하듯이 소근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당시 생각했던 것이 왜 남의 재산여부에 관심을 가지고 또 그것이 대화의 주제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였다. 하지만 나는 곧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잘 산다는 것은 예쁘고 잘 생긴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을 구별지어주는 특징 중 하나였다.
세상에는 어쩜 그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을까. 시시때때로 엄마가 올라와서 갖고 싶은 (비싼)물건을 다 사주시는 동기도 있었고, 여자남자 가리지 않고 명품가방을 들고 다녔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엄마를 둔 동기도 있었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보험회사의 상무를 아빠로 둔 동기도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은 부모님을 부끄러워 하거나 우리 부모님도 그랬었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대학내내 주눅들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시골아이 마냥, 나는 내가 여태 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충격받고 상처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시절이 내 인생의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오늘 했다. 아름다운 모교의 건물들을 구경하고 나서, 내가 왜 멜번에서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멜번에 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나는 다시 학생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20대의 철 없고 순진했던 그때의 순간에 대한 향수를 느꼈던 것 같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즐거웠고 배운 것도 많았다. 그때의 감수성을 지금에도 갖고 있을 수 있다면, 아련한 그 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내가 문득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 번 방문은 아마 내년 이맘때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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