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여행] 29. 과일서리, Geelong

이 날의 가장 큰 일정은 이 놈 할머니네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_- 지난 크리스마스때부터 할머니가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단다. 그렇죠.. 손자가 자꾸 전쟁날것 같은 나라에 수시로 들락날락하는데 궁금하셨겠죠. 그리하여 우리는 멜번으로 돌아가는 길에  Geelong에 있는 어르신댁에 들르기로 했다. 

집에 도착을 했는데 조용하다. 부엌에 가방을 내려 놓은 멜번놈은 할머니께서 주무시는 것 같다고 그러더니 밖으로 나오라고 그런다. 집보다 더 넓은 뒷뜰(아니 근데 호주는 그게 평범한가, 얘네 부모님댁도 집보다 건물 외의 부지가 두배는 더 넓던데;; 여기도 왠만한 논밭수준-_-) 나타났다. 

와.. 나무로된 빨래집게라니. 얼마나 오래 된거죠. 

뭐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보아하니 멜번놈의 어머니가 수시로 왔다갔다 하면서 집을 관리하는 듯 했다. 그런데 96살 된 노인을 혼자 살게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_-;; 안전한가?

무화과 나무. 예전에 내가 무화과를 좋아한다고 했지 않냐며, 무화과를 따 주겠다고 한다. 

이보세요.. 담 넘지 말고 내려오세요...도둑놈같아요.

그리고 이때 찍은 사진으로 또 짤을 만들었으니

난 참 누군가를 잘 괴롭힐 수 있는 듯. ㅋㅋㅋㅋㅋ

나무 위에 올라가서 무화과를 따는데 자꾸 뚝 뚝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너네 할머니 나무 부수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고 마이더스의 손을 아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나라 표현 그대로 손인줄 알고 마이더스 핸드 라고 표현했는데 마이더스 터치? 라고 이야길 한다. 흠 터치였군. 여튼 골드로 다 변하게 하는 그 이야기 아냐고 물었더니 안다고 한다. 너 크리스 강판도 부수고 할머니 나무도 부수고 넌 마이너스 터치야 라고 했더니 빵터지심. 그리고 한국 올때까지 이 농담가지고 즐거워한다. ㅋㅋㅋ 얘도 어지간히 말 장난 좋아하는 듯. 

과일서리 하는 놈을 구경하며 서 있는데 바닥에 뭐가 보인다. 헉 하고 놀랬는데 고슴도치는 아니고 인형이었다. 아니 전에는 부엉이 인형이 있더니, 왜 자꾸 동물 인형은 가져다 놓는 걸까 사람 놀래게. 

멜번놈이 높은 나무에서 끙끙거리고 있길래, 나는 돌아다니며 주변을 구경을 했는데.. 구경하다가 키가 작은 무화과 나무를 발견했다. 심지어 열매도 더 많... 네, 이래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겁니다. 

좀 내려오세요.. 보아하니 새그물을 걷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새그물에 걸려서 죽어 있던 새까지 발견. 나는 보고 완전 기겁하고 도망갔다. 아 자연 친화적인 호주여..

멜번놈이 부엌에 가서 비닐봉지 가져오라고해서 가져왔더니 뜰을 돌아다니면서 과일서리(?)를 시작하신다. 사과도 좀 따고.

레몬도 좀 따고 ㅋㅋㅋㅋㅋㅋ 이 반대편에 있던 무슨 주황색 과일도 땄는데 한 입 베어 먹더니 덜 익은 것 같다고 뱉어냈다. ㅋㅋㅋ 할머니집 와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도둑질이라니 ㅋㅋㅋㅋㅋㅋ

오 탐나는 알로에군요.

 잔뜩 훔치.. 담으셨다. 그 때까지 일어나시지 않은 할머니. 멜번놈이 갑자기 부시럭 거리면서 뭘 꺼내준다. 왜? 라고 했더니 홀로코스트 라고 이야길 한다. 뭔 소리야하고 봤더니

아니???!!!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유물이. 이거 진품명품에 팔면 돈 많이 받으려나 ㅋㅋㅋㅋㅋㅋ 이거 사진 찍었더니 기겁함 ㅋㅋㅋㅋㅋ 뭐지 ㅋㅋㅋ 비밀인가염 전 그런거 잘 몰라염.

남의 집에서 차도 끓여 마시고 커피도 끓여마시고.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으시길래 이대로 가야하나 라고 생각했을 때 쯤 할머니가 일어나셨다. 나이에 비해 꽤 정정하셨다. 그리고 시작된 잉글리쉬 스피킹 타임. (....)

할머니는 독일에서 태어 나셔서 이탈리아에서도 좀 살고 영국을 거쳐 호주로 오셔서 그런지 독일 억양이 굉장히 많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내가 못 알아먹는 듯 하자 조금 클리어하게 발음을 해주셔서 나중에는 좀 알아들었다. 그런데 본인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자꾸 독일어가 튀어나와서 진땀을 뻈다 ㅋㅋㅋㅋㅋㅋ 이제서야 멜번놈이 독일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보고는 어디서 왔냐길래 한국이라고 했더니 대뜸 멜번놈보고 한국어 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못한다고 했더니 그럼 어떻게하냐고 너 한국에서 못 산다고, 니가 무슨 말을 해도 stupid하게 할꺼라고 해서 진짜 개빵터졌다. ㅋㅋㅋㅋ 할머니 완전 내 스타일이었음.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 때 좀 짜증났던 일이 있었다. 할머니가 멜번놈에게 티비 리모콘을 하나 샀는데 그게 안된다고 봐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거실에서 멜번놈이 20분 넘게 그 중국산 리모컨을 붙들고 아무리 셋팅해도 그게 작동을 안하는 것이다. Stupid chinese remote control 이라고 승질내고 냅두길래 내가 그걸 만지기 시작했다. 건전지를 뺐다가 다시 끼우고 싶어서 배터리 부분을 손 대다가 갑자기 그 뚜껑 부분을 여는 고리가 빠져버린 것이다. 나도 당황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멜번놈이 그걸 왜 부르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살짝 짜증나긴 했는데, 그래도 내가 잘 못 한것이니깐 미안하다고 그런데 이거 부서진 것 아니라 그냥 이 부분만 빠진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걸 왜 건드렀냐고 또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때 살짝 빈정상함. 그래도 잘못한게 있어서 그 빈정상한 것에 화는 못내고 그냥 입다물고 있었다. 멜번놈이 그걸 고치면서 장난식으로 우리 할머니 물건 망가뜨리지마~ 라고 이야길 하는데 이미 빈정 상한 상태라서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_-

꼴도 보기 싫어가지고 부엌으로 나가서 테이블에 앉아서 그냥 핸드폰이나 들여다 보고 있었다. 다 고쳤는지 다시 와서는 할머니것 부러뜨리면 어떡해하냐고 또 장난식으로 말 하는데.. 짜증이 확 나서 그깟 stupid한 remote 얼만데 돈 주면 될꺼 아냐 라고 쏘아 붙였더니, 멜번놈이 그제서야 나의 기분을 눈치 챘는지, 오, 괜찮아, 내가 고쳤어, 장난이야 라고 이야길 한다. 야, -_- 난 그래도 니가 소리 질렀던 두번을 잊지 못했다고.. 뾰루퉁하게 아무 말도 안하고 굳은 얼굴로 그냥 핸드폰을 들여다 봤다. 그러면서 할머니 어디 갔냐고 묻길래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니네 할머닌데 라고 했더니 눈치를 보면서 so mean 이라고 장난을 치고 할머니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난 이미 빈정상함..-_- 내가 오고 싶어한 곳도 아닌 불편한 곳에서 잘못을 저질렀는데 사람 무안하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니.. 이미 감정이 회복 불가능 상태로 제대로 상해 있었다.

그리고 좀 있다가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한마디도 안하고 쌩하게 있었더니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고 그  stupid한 리모컨 잘못이라고 그러는데 전혀 내 기분은 풀리지 않고. 그랬는데 갑자기 어제 저녁에 본 영화 gone girl에서처럼 자기 죽는 거냐고 장난치는 거에 그만 빵 터져서 화를 풀었다. 아니 반만 풀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멜번놈이 그토록 칭찬하던 락샤를 먹었다. 락샤가 맛있어서 봐줬다. 

2017/06/06 - [Siesta/2017 Australia] - [멜번여행] 28. Laksa King Restaurant

집으로 와서는 너무 피곤해서 좀 쉬고 있었는데, 멜번놈이 자꾸 나가자는 것이다. 왤케 나가자고 하는 거냐고 물으니깐, 내가 밤에 펍이나 클럽 나갈때만 화장하고 예쁘게 차려 입는다고... ㅋㅋㅋㅋㅋㅋ 악 완전 웃겼다. 그러면서 자기 목요일 밤에 너무 재미있었다고 또 나가서 놀자고 그러는 것이다. 하아, 그런데 나는 별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었다. 진지하게 집에서 쉬고 싶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그런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가 놀았어야 했나..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자꾸 액션영화를 보고 싶다고 고르길래 그러면 너는 액션 영화 보라고 나는 스도쿠나 풀겠다고 스도쿠를 풀었다. 이때 살짝 삐친 것도 있었다. 나는 그 놈의 액션이 재미가 없는데 왜 자꾸 그걸 보자고 ㅠㅠ 또 여기서 약간 빈정 상했다. 혼자 영화보라고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스도쿠나 열심히 풀었다.

방문을 열길래 짜증이 나서 쳐다도 안보고 그냥 풀고 있었더니.. 이렇게 사진을 찍어가지고 움짤을 보낸다 ㅋㅋㅋ 아놔. 이거 하나에 화 풀려가지고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영화를 고르라고 한다. 액션 영화 안봐도 된다고. 

넷플리스에서 내가 봤던 영화(그래야 자막 없어도 이해할 수 있으니)를 고르는데 미 비포 유가 보이는 것이다! 나 이거 볼꺼라고 했더니 오늘 내가 두번이나 삐쳐 있었기에 보고 싶은 것 아무거나 보라고 그런다. 자기는 내가 옆에 붙어 있게 하는 영화기만 하면 된다고. 그래서 보는데.. 10분 보자마자 멜번놈이 도저히 이 영화를 볼 수 없다고 이 영화를 왜 좋아하는 거냐고 묻는다. 왜긴 남자 주인공이 잘 생겼으니깐 그렇지, 라고 했더니 자기는 맨정신으로는 안 되겠다고 알콜타임 시작 ㅋㅋㅋㅋ

그리고 드디어 딴 스파클링 와인. 캬.. 진짜 제대로 골랐다. 이거 마시고 아쉬워서 남은 사이다를 마셨더니, brewery에서는 그렇게 맛있던 사이다가 진짜 쉣이었다. 역시 와인이 짱이군요. 

그리고 영화 보는 내내  shitty movie라고 궁시렁 궁시렁 ㅋㅋㅋㅋ 사실 나도 계속 보고 싶진 않았지만, 오늘 나를 두번이나 빡치게 한 멜번놈이 고통 당하는 걸 보니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ㅋㅋㅋ 그래서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우하하. 나의 복수 성공. 

그리고 나서 또 뭐 보고 싶냐고 하길래 여자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다 싫어하는 구나 싶어서 섹스앤더시티를 골랐다. ㅋㅋㅋㅋㅋ 이날 멜번놈은 냉장고에 남아 있던 모든 술을 거덜냈다. ㅋㅋㅋㅋ 캬캬캬. 즐거운 복수 타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