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영화 노예 12년을 관람했습니다. 영화가 갖고 있는 자자한 명성 외에, 매력남(사심가득 ㅋ)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온다고 하여 꽤나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컴버배치가 빛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아쉬웠어요. ^^;) 배우 뿐만 아니라, 최근에 스티브 맥퀸이 감독한 영화 셰임을 보았기에, 이 영화도 기대했었습니다. 셰임에서 받았던 느낌처럼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간략한 내용은 '자유인'으로서 살고 있던 솔로먼 노섭이, 납치로 인하여 12년간 '노예' 플랫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노예'라는 단어만 들었을때에는 영화가 노예제도 자체의 불합리함을 말하며, 정치적 · 사회적인 색채를 띨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솔로몬 노섭(혹은 플랫)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12년만에 자유인으로 돌아온 노섭이지만,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는 철저하게 노예로 살아갑니다. 납치를 당했을때에는, 몸둥이 찜질 속에서도 자신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라고 외쳤던 노섭, 하지만 이내 노예 플랫으로 사는 삶에 익숙해집니다. 자식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여성 노예에게 그는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소리를 치던 그의 모습에, 그에게 자유인이 아닌 노예라며 몸둥이 찜질을 하던 노예상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노예12년은 인간12년이라고 바꿔 이름을 붙여도 좋을 만큼, 매우 인간적인 모습의 노섭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유인으로서 살아왔지만, 목숨이 달려있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끝까지 자신은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라고 부르다 채찍질로 죽는 삶을 택하게 될까요? 노섭의 선택은 어떻게서든 살고자하는 인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는 공감을 샀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근래 '염전노예'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러웠습니다. 그 열기가 가라 앉고 있는 지금에 영화는 '노예'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해 주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욕심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많이 갖고 싶다는 탐욕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부당하게 대우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사람은 끝없는 탐욕을 갖게 되는 걸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대한 결핍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새로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실체의 결핍이 아닌 무형의 무언가를 향한 갈망으로, 탐욕이 생겨나는 건 아닐까 라는 짧은 고찰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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