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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오늘도 맑음

정신승리

by 여름햇살 2018.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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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적 회의를 통해 절대적인 진리를 찾고자 했던 데카르트는 불변의 진리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에 이른다. 나는 일반 범인에 불과하기에 거창하게 불변의 진리를 찾을 생각은 없지만 단 하나 끝까지 의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살아가면서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맞는 것인가를 의심하는 것이다. 삶에 정답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나는 미천한 중생이라 그 답의 유무를 갈구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신은 있는가, 우주의 시작은 어딘가, 외계인의 존재는 있는가 등등은 내가 아무리 의심한다고 한 들 나의 능력 밖이다. 내가 의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인가, 다시 말해 나의 생각이 전반적인 상황의 증거를 모두 수집하고 그로 인해 올바른 논리를 거쳐서 합리적인 결론에 내리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내 삶은 유일무이하고 타인과 100% 공유가 될 수 없다. 결국  내 생각은 나로 인해 맞는지 안 맞는지 끝없이 사유되며 영원회귀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30여년을 이렇게 헤매고 나서야 종교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는 그 것을 알려 줄 수 존재는 없지만 종교는 답을 내려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대체로 유물론에 사고가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은 인간이라 취향의 문제로 종교에 관심이 가지 않았고,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쓴 책이나 그들의 강연으로 답을 얻고 싶었다.


내가 많은 의심을 하는 부분은 나의 만족감에 있다. 그냥 만족스러우면 만족하는 것으로 끝내면 되는 일인데, 나는 이 만족스러움이 진짜 만족스러움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상황에 대해 자기합리화에 빠져 정신승리를 하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웠다. 나의 감정에 대해 의심을 하고 의심을 하자 내가 나를 모르겠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몇일 전 정신승리에 대한 기전을 알게 되었다. 정신승리는 상황이 변화하지 않거나 혹은 깨달음 없이 자기 합리화를 내리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것을 왜 몰라서 나는 그 긴시간동안 쓸데없는데 시간을 소비했을까 약간 허무해졌다. 


알게 된 것을 내 삶에 적용시켜보았다. 정신승리의 순간과 성취감 혹은 진정한 만족의 순간이 명확하게 해소되었다. 특정 사람과 소원하게 되었을때 상황을 파악하고 내가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어 다른 이에게 적용하였을 때 그 결과가 좋았던 것은 자기만족이었다. 특정 사람과 소원하게 되었는데 나도 너 싫었다 하고 그 삶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몇 번의 같은 결말을 맞이 했던 순간은 정신승리였다. 삽질을 하며 허우적거렸지만 그럼에도 쟁취하게 된 것이 있었던 순간은 성취감을 맛본 것이고, 삽질을 하며 허우적거렸지만 아무것도 얻게 된 것이 없고 그 상황이 애시당초 옳지 못했다고 변명했던 순간은 정신승리였다.


완벽주의의 성향이 나를 괴롭힐때도 많지만, 그 완벽함이 나를 허우적과 함께 깨달음을 안겨다 준 순간이 많았다. 엉망으로 얽혀버린 매듭과 마주할 때마다 그렇게 묶어버린 놈이 잘못된 것이라고 변명만 했다면 나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순간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괴롭지만 그 것을 헤치고 나가야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승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 순간적인 만족감을 안겨다 줄 수는 있지만, 그 다음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 내가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다. 평생 내 정신승리로 절대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나 상황을 탓하기 전에 우선은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 사건의 관점을 바꿔야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가 정신승리 중인지 아닌지를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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