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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영화 인사이드 르윈

by 여름햇살 201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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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2014)

Inside Llewyn Davis 
8.3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오스카 아이삭,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이단 필립스, 로빈 바틀렛
정보
드라마 | 미국, 프랑스 | 105 분 | 2014-01-29
글쓴이 평점  


영화 인사이드 르윈을 얼마전에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평이 좋은 영화라서 개봉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평일에 휴가를 쓰고 조조 영화로 보게 되었는데, 매우 적절한 요일과 시간대(?)가 아니었나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 



영화는 평범하다 못해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힘든 음악가 '르윈'의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보여주며, 그 것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란 정말 이런 것이란다 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여느 영화들처럼 가난한 천재 음악가의 인생역전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주거나, 혹은 끝끝내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비운의 삶을 살아 가는 음악가의 모습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주변 아는 사람 중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의 에피소드로,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영화 제목인 '인사이드 르윈'은 극 중 르윈의 솔로 앨범의 이름으로, 실제 그의 내면을 비추고 있는 이 영화에 매우 부합하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드러나는 감독의 센스처럼, 영화도 전반적으로 매우 센스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 그러고 보면 매우 이상한 포인트에서 감동을 먹게 되는 것 같네요 ^^)




영화에서 르윈이 계속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 영화 전반적으로 보면 고양이는 르윈의 인생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초점을 맞추면, 처음 고양이를 맡게 된 장면으로 유추해보건데 음악이라는 것은 르윈의 숙명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점에 우연한 계기로 르윈의 품으로 뛰어 들었던 것은 아닐까합니다. 고양이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고 몇몇 장면에서는 고양이는 '음악'이라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르윈이 반드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선택의 순간'을 유형의 물체로 표현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표현력이 짧아 정확하게 글로 설명을 하기가 힘든데, 굳이 말로 표현을 해내자면 '마음의 짐'이라고나 할까요?


음악이 그의 숙명이 아니라 우연으로 시작했을 것 같다는 저의 추측은, 음악을 대하는 르윈의 태도에 근원합니다.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음악은 내 인생의 전부라는 태도가 아닌 속물적인 모습의 평범한 인간입니다. 남들보도 음악에 더 호감을 느끼고, 또 남들보다 나은 재능으로 음악을 시작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음악이라는 것은 월세를 내기 위한 생계 수단일뿐입니다. 그는 그저 돈을 위해 그 놈이 그놈인 포크송을 연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시카고의 오디션에서 좌절을 겪고, 음악을 버리고 뱃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 전에 그는 오디션을 보기 위해 시카고로 향하는 길 위에서, 몇일간 보살펴왔던 고양이를 버리게 됩니다. 이 것이 배를 타기로 결심하게 된다는 것의 복선 혹은 시카고의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것에 대한 복선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영화를 모두 보고 난 후에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고양이를 버렸던 것과 정확하게 대칭이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다시 한 번 고양이를 버렸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를 만나게 될 기회를 버립니다. 옛 여인 다이앤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애크론에 갈 기회가 생기지만, 그는 그 기회를 날려 버립니다.


그리고 잠시 뒤 그 길 위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차로 치게 됩니다. 차의 범퍼에 고양이의 것이 분명한 피가 묻어 있지만, 두려움에 휩싸인 르윈은 차마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지 못합니다. 마치 애크론에 가지 못한 것 처럼요. 그리고 어둠속에서, 절뚝거리는 고양이는 르윈을 한 번 쳐다보고 숲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르윈은 친 것은 고양이는 참 복합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이란 원래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순간도, 기쁨의 순간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들고 고난의 연속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어두운 이면을 감추고(물론 선의의 의도로), 인생은 축복이라는 것을 강요 당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쟁취한 삶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만 매체에서 다루어지고, 화려한 삶을 사는 유명인의 이야기가 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꿈과 희망을 안겨다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화려하고 특별하지 못한 나의 삶과 혹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 자화상을 돌이켜보며 상실감과 박탈감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되려 조용하고, 그리고 더욱 설득력 있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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