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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책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2

by 여름햇살 2017.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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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국내도서
저자 : 공지영
출판 : 분도출판사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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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국내도서
저자 : 공지영
출판 : 분도출판사 201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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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이나 동양이나 기독교를 믿거나 불교를 믿거나 생은 고달파서 골목길 모퉁이마다 돌을 올려가며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작년 겨울이 시작할 무렵부터 얼마전까지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방황의 원인은 알 수 없었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그 해결책 또한 알 수 없었다. 나는 자꾸 깊숙하게 빠져들고 있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몸이 모두 가라앉고 얼굴만 늪밖으로 내밀고 겨우 숨만 쉬며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웠다. 혼자 남겨지는 밤이 싫었고, 눈을 뜨고 또 하루를 맞이해야 하는 아침이 싫었다.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는 고통속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처음에는 나태함과 게으름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계발 책으로 또는 주변의 열심히 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다. 그럼에도 내마음과 몸은 반년이 넘도록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느껴졌다. 나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느꼈고, 그에 좌절했다. 무기력한 시간으로 삶을 채우게 되자, 삶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끝없는 허무감을 느꼈다. 나의 마음과 몸을 잠식한 이 허무감은 내 삶이 끝나야 나를 놓아줄 것만 같았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삶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삶의 어느 순간에, 내가 뭔가를 놓친 것이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것을 찾아내는 방법 중 하나로 나는 종교를 생각했다. 태생자체가 절대 종교를 가질 수 없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왜인지 나는 종교에 내가 찾는 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템플스테이도 그래서 참가했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종교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야기 해준다면 받아 들일 수 있겠다 싶어 이 책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두권의 책을 읽는 동안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울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바닥이라고 느꼈던 순간을 드러낸 작가의 용기에, 그리고 그 자신 또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쳤던 그 노력에, 그리고 순간순간 하느님이라는 존재로 다시 삶에서 행복함을 느끼게 된 그녀의 이야기가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허심탄회한 글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처절하게 느껴졌던 내가, 다른이들도 삶에서 이러한 시기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혼자라는 생각으로 외로웠던 감정이 위로가 되는 듯 했다. 나만 느낀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왜 그리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던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작가인가 라는 생각으로 눈물을 달랬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달라이 라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간결하게 대답했다고 했다. "예, 종교란 친절한 마음입니다."

 

 여름이 있었다면 겨울이 다가오고 낮이 지나가고 나면 밤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오만한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만은 항상 한 여름의 낮만이 지속되리라 믿었다. 또한 한 여름 낮의 행복에 도취되어 그 것만이 '옳다'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만을 갈구하며 최근 몇년을 보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 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점이 온다. 나는 그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내 인생은 나만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집착이 나를 힘들게 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게 된다. 이타적인 삶이 아니라 이기적인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고립된 삶에서 상처를 받고 다시 울게 되는 것은 나이다. 그 것을 깨닫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이제서야 많은 종교에서 남을 위한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을 교리로 삼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타인을 위하는 삶은 사실 상처투성이인 나의 삶을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였던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그 어떤 창도 나를 찌를 수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그 문을 열어야 난도질된 나의 마음을 다독여줄 상대방이 들어올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풍랑속에서 '운명'이라는 것을 살아 오면서본능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삶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삶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았다. 그런데 나는 행복한 순간에 나의 삶에 둑을 쌓고 붙들어 두고 싶어했다. 그 속에서 나의 삶이 썩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행복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감정이다.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상태에서 변하지 않고 계속 지속된다면 그 것은 더 이상 행복의 상태가 될 수가 없다. 다시 불행의 순간이 있은 다음에야 또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삶에서 불행한 순간과 마주더라도 운명이라는 겸허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겠다. 그리고 때로는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할 때 집착으로 나를 괴롭하지 않아야겠다. 나에게만 집중된 삶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해야겠다. 힘든 시기였지만, 이렇게 조금은 성숙해진 내와 마주 할 수 있게 되어 나는 그 방황의 시간들이 이제는 감사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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