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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영화 겟아웃

by 여름햇살 2017.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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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이 너무 좋아서 '호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용기내어 도전했다. (그리하여 죄없는 지인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나를 따라 영화관에 가야했다) 나는 호러영화는 "진짜" 보지 못하는 인간이라 이 영화를 보기 위해단단히 마음을 먹었으나,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러닝타임 내내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야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상보다 사운드가 더 괴기스러워서 귀마개가 필요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어서 두 귀를 막을 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의 내용을 이런식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독특했다. 보고나면 영화 자체는 호러영화이기보다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고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그 스토리가 소름끼치게 무섭다. 뭔가 이상한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떤 일일지 상상할 수가 없었기에 몰아칠 반전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작가의 잔인한 상상력에 넋이 나가 있다가 허를 찌르는 Airport 글자에서, '너 당연히 이럴꺼라고 생각했지? 메롱이다' 라는 느낌을 받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비루한 내 상상력의 바닥을 작가에게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그나마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다. 그리고 추가로 영화 초입에서 로즈가 경찰에게 크리스의 신분증을 보여주기 꺼려 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만약 그때 경찰이 신분증을 확인을 했고, 크리스가 실종 되었다면 로즈는 의심 받았겠지. 그러고 나니 더 무섭다. 와, 제대로 미쳤구나 아미티지.


로드의 흑인 성노예 상상에 크리스는 비웃었다. 크리스가 실종되고 그를 찾기 위해 방문한 경찰관에서 성노예 가설을 설명한 로드는 경찰관에게 다시 한 번 비웃음을 당했다. 왜냐면 그의 상상은 표면적으로 인종차별이 사라(졌다고 믿고 싶은)진 국가에서는 터무니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더욱 터무니 없었으니, 어쩌면 우리 인간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잔혹한 일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그 잔혹한 일들이 다 우리 일상의 편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최면에 빠져 있는 중이거나.    


늙고 병든 백인들이 건강한 흑인을 골라 뇌를 이식시켜 그 몸을 취한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도구로 취급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아마도 이 발상만으로도 이 영화는 호러무비가 되리라. 그런데 이게 진짜 영화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일뿐일까? 우리는 생명공학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잔인하게 동물을 가르고 폐기처분한다. 아마 실험실 우리속에 있는 동물들은 영화속 주인공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리라. 실험만이 아니다. 식용을 위해 길러지고 있는 가축들은 원하지도 않는 끝없는 수정으로 새끼를 낳는 기계로 전락했다. 닭들은 움직일 수도 없는 곳에서 지내며 알을 낳고 죽을 날만 기다리며 땅을 한 번 밟아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우리는 그들을 생명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필요한 고깃덩어리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우리 인간은 같은 인간을 도구에서 동등한 존재로 여기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200년 전만해도 흑인 노예는 백인을 위한 소모품이었고, 우리 조상들은 마루타가 되어 의학실험의 대상이었고, 홀로코스트 또한 아직 1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인류는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


+

그나저나 친구는 잘 사귀고 볼 일이다. 그리고 막판에 나 혼자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같이 움찔한 커플에게 뒤늦은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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