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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영화 중경삼림

by 여름햇살 2017.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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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블로그에 간만에 중경삼림을 봤다는 글을 쓴 것을 보고 나도 뜬금없이 찾아보게 되었다. 보고 나서는 다시 한번 왕가위는 정말 천재가 아닐까 라는 감탄을 했다. 천재가 아니라면 우리가 경험했던 그 많은 경험을 모두 다 해본 사람이리라. 우비를 입는데도 선글라스를 써야 할 일도 겪었을 것만 같은 그이다. 비가 오는데도 해가 쨍쨍한 그런 날들을 많이 겪어보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리고 그런 삶의 뒤에 남는 감정의 무덤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이 영화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뭐가 재미있으랴. 사실 이 영화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사람들 각자가 주섬주섬 꺼내 놓게 되는 자신들의 옛 사랑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다. 나는 항상 연애기간이 짧아서 그랬는지 떠올리면 가슴이 저리거나 아련하게 기억에 남는 사랑이 전혀 없다.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서, 그때의 감정 그리고 그 때의 사건 모두 하나하나 기억은 하고 있지만, 내가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잊지 못할 나의 사랑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연애를 할 때 항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100%를 상대에게 해 준다. 그래서인지 이별 뒤에도, 많은 연인들이 느낀다는 '이걸 해 주고 싶었는데..' 이런 식의 미련이 절대 남지 않았다. 그래서 뒤도 잘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아니 되려 상대에게 너무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그랬는지(내가 100%를 항상 해준다고 해서, 그 100%를 해주는 일이 나에게  쉬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헤어지고 나면 홀가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에너지를 온전히 나에 집중 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가 헤어지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별 이후에는 외로웠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연락하던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결코 그 사람이 없기에 내 삶이 의미없어지고 내 삶이 외롭거나 한 적은 없었다. 


지나고나서 보니 그 감정들이 사랑이었나 라는 의구심도 든다. 분명 그때 당시에는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들이 사랑이었을까 라고 지금에 와서 묻는다면 나는 쉽게 그렇다는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그 때 당시의 나는 분명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보니 나는 파인애플을 좋아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의 감정을 나도 잘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잘 아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왜 이렇게 심심한 사랑, 아니 연애만 해왔을까.


 라고 이 영화를 다시 보기 전까지 생각했다. 호출기를 주구장창 확인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전화기 앞에 붙어있는,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술집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여자와 사귈꺼라고 말하는 금성무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가 밥먹는 곳을 일부러 지나가고 그의 집을 청소하고 꾸며주는 페이를 보며 나 또한 저렇게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된 그때의 감정이 조금씩 떠 올라, 내가 감정없는 로보트는 아니었구나 라고 위로도 받았달까. 심심했던 내 과거가 조금은 알록달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는 사랑과 연애에 조금은 무덤덤해진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온통 상대만을 생각하느라 그 사람과 이 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존재자체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는 것인지, 아무데나 그 사람 좋다는 곳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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