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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책 이갈리아의 딸들

by 여름햇살 2018.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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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국내도서
저자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 히스테리아역
출판 : 황금가지 199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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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페미니즘이 뭔지 정확히 지각하지 못한 상태로 미디어가 재포장한 페미니즘만을 접했는데, 여자인 내가 봐도 밥맛이었다. 억압되어 있는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아닌, 밥그릇 싸움으로 묘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살아오면서 내가 성차별을 겪어보지 못한 것에 그 이유가 있었다. 학창시절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남성'인 동생보다 나를 편애하셨다. 주변에서 우쭈쭈 해주니 정말 스스로가 잘났다고 착각하며 살았고, 내편이 있었기에 행여나 손해볼일이 있을 것만 같으면 항상 맞서 싸우며 나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다. 내가 겪은 좁은 삶 덕택에, 나는 성차별을 겪은 경험을 공유하는 여자들에게 되려 그건 성차별 문제에 앞서 개인의 문제라고 대꾸했다. 순전히 내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온 나라는 샘플이 존재하는데, 여자들이 성차별을 겪으며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녀들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성차별을 호소할때마다,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 자신이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또 한명의 가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불과 작년이었다.


 사회, 아니 삶이라는 것 자체를 다른 각도로 조망하게 되면서 그제서야 '진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를 접한 다음에야 밥그릇 싸움이라는 단편적인 현상이 아닌 '인류애'를 위한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는 페미니즘이 바라보는 사회의 갈등을 '남성'과 '여성' 단순히 성으로 이분화된 갈등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그랬을지 모를지언정 지금은 단순한 성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아니라, 인종, 계급, 취향 등 '차이'에서 오는 그 모든 차별에서 억압받고 있는 모든 이들의 해방 운동으로 발전했다고 느껴진다.


이 소설은 단순한 미러링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작가는 사회를 주도하는 성과 억압받는 성을 단순하게 전복시키는 것을 벗어나 '이갈리아'라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 사회는 설득가능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강했던 맨움이 주도하는 사회가 있었지만 사회가 발전할 수록 움이 주도하게 되었다는 점(우리는 현재의 과도기에 있지만 갈수록 여성의 권리가 강화되어가고 있다는 것)과 움과 맨움의 격차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그것이다.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단순히 남성에 억압받고 있는 여성의 정서적 만족감을 위해서 쓰여진 판타지가 아니라, 현재의 격차를 치밀하게 분석-비판한 사회적인 보고서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페미니즘 문학으로써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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