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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by 여름햇살 2018.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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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에 있을때 멜번 시티 라이브러리에서 돈키호테를 빌려서 완독한 적이 있다. 평상시에는 읽지도 않는 고전이지만,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기가 맞물리면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가 그때였다. 그리고 나에게 돈키호테는 오지들의 알아듣기 힘든 발음만큼이나 모호한 책으로 남았다. 글을 읽은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었다는 말이 더 적당한 표현일 만큼 말이다. 나는 도통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뮤지컬을 통해서 다시 돈키호테를 만났다. 그리고 나서야 그 모호한 이야기들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는 돈키호테를 미치광이 남자의 이야기라고 여겼다면, 이제서야 그 것은 우리 인생의 이야기라는 것이 온전히 이해가 된 것이다.


우리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고 이발사의 면도용 대야를 황금투구라고 착각하며 사는 돈키호테를 비웃을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매우 정확히 돈키호테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아성찰은 물론이거니와 자기객관화가 되지 않는 삶. 자기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맞는 것이기에 결코 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오만함, 타인의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며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는 미치광이들이 돈키호테가 아니면 뭐란 말일까. 


아, 뮤지컬은 자기의 이상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꾸며내려고 한 것이 분명한데, 나는 그 부분에서의 감동은 시큰둥했다. 열정적이지 못한 인간이라 그런 듯 하다. 


뮤지컬을 자주 보던 때가 있었다. 첫번째 회사를 다니던 시기(26살~28살)에는 한달 혹은 두달에 한 번씩 평일에 휴가를 내고, 상영중인 뮤지컬을 꼬박꼬박 챙겨서 관람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100% 허세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대답을 할 수 있겠다. 당시에는 내 주변에 사람들이 뮤지컬을 즐겨 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나의 지적 허세를 북돋아주었고, 싸지 않은 뮤지컬 표를 그것도 평일에 보러 다닌 다는 것은 월급도 괜찮고 휴가도 맘대로 쓸 수 있는 회사에 다니는 능력있는 여자라는 이미지의 허세를 충족시켜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뮤지컬은 더이상 내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뮤지컬도 거의 5년만의 관람이다.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 중 또 하나는 감정의 극대화에 있다. 웅장한 사운드와 경이로운 가창력으로 인해 뮤지컬 공연은 감정이 메말라 버린 사람 조차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릴적의 나는 그 울림이 좋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런 자극이 피로로 다가온다. 니가 언제까지 그렇게 쿨한 척 버틸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 라며 닥달하듯이 사람의 감정을 몰아가기 때문이다. 감동스러운 것이 아니라 감동 당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음악이 듣기 싫어진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럼에도 이 뮤지컬은 좋았는데, 첫째로 돈키호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둘째로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의 흔들리는 감정을 관찰해보는 경험이 가끔은 해볼만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당연하게도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이 뮤지컬이 거지 같았다라고 한 들, 좋은 사람들과 공유했던 그 시간이 더럽혀(?) 지지 않는다. 


아쉬웠던 지점은 마지막 장면에서 뮤지컬 끝나기 직전인데 아직도 울지 않은 자 게 누구냐 라는 포스로 단체 합창을 했던 부분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이기에 그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이에게는 피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둘째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동등하게 대우 받지 못하는 듯해서이다. 돈키호테가 주인공이라 그런 것은 알겠지만, 나에게는 알돈자의 서사가 더 크게 다가와서였을까. 주인공은 우먼 오브 라만차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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