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세 단어 중 그 어떤 단어도 무서운 단어가 없건만, 그것의 조합은 꽤나 섬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 시대를 매우 냉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했다. 그런 선입견을 먼저 갖고 책을 읽어서였을까. 책의 분위기는 처절했고, 삶의 고단함이 찐득하게 묻어 나오는 듯 했다. 저녁 뉴스를 보고 났을 때처럼 마음은 무겁고 답답했다.
7개의 단편들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관계였다. 몇몇 관계들은 보통의 사회 통념으로 '정상'이라고 받아 들여지기 어려운 관계로 설정 되어 있었다.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에서는 나의 아버지와 미스조는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몇 년간 동거를 한 사이였다. 그런 미스조와 나는 혈연의 관계도, 서류적으로도 엮여있지 않지만 미스조는 자신의 사후에 애완 거북이를 나에게 맡긴다. 함께 살 정도로 좋아했으면서도 식을 올리지도, 친지들에게 소개를 하지도, 그리고 끝까지 함께하지 않은 나의 아버지는 미스조에게 무정했다. 미스조를 향한 아버지의 폭력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어서인지, 너무나도 흔해서인지 독자는 무덤덤하게 받아 들이게 된다.
'우리 안의 천사' 에서 남우와 미지는 사랑이 끝나가는 연인이자 동거인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둘 사이에 남우의 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남자가 나타나고 아버지 일수도 있고 그렇지도 않을 수 있는 노인이 개입된다. 돈을 위해 노인을 죽이는계획에 가담하게 되는 비밀을 공유하게 되어 결혼하게 된 그들. 삶은 별다른 일 없이 무던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이미 과거의 일은 그들에게 상처가 되고 그 삶 곳곳에 배여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살아갈 뿐이다.
'영영, 여름' 에서는 남한인 리에와 북한인 메이가 만난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해가 되는 경험은 어떤 기분일까.
'안나'에서는 라틴댄스 동호회에서 만난 경과 안나의 이야기이다. 자신보다 윤택하지 못한 삶을 사는 안나를 보며 자기 위안을 삼는 경의 위선은 놀랍지도 않을 만큼 흔한 설정이다. 그 말인즉 우리 또한 살아가는 중에 누군가의 위선 속에 있고 또는, 누군가를 향한 위선자가 되곤한다.
도대체 왜 삶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답답함 속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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