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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과학도서가 많지는 않지만, 내가 읽었던 과학분류에 속한 도서 중 가장 인상적인 책이었다. 왜냐면 이 책은 과학이라는 분류보다 인문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인류애가 느껴지는 듯한 철학적인 문장들, 그리고 문학책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소름돋는 은유, 그리고 현재의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문장들 때문이었다.
나는 몇 년 전까지 백신에 대해 100%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왜냐면 전염병을 막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외국(특히 미국)에서는 백신이 안전하지 않다는 여러 연구결과들을 신뢰하지 않은 '똑똑한' 엄마들이 그들의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기를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전문지식도 아닌 그냥 가십성 인터넷 글을 읽고서는 나도 백신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홍역 예방 접종을 맞지 않아 홍역이 창궐했다는 소식을 듣기까지 예방접종이라는 행위를 못미더워하고 있었다. 나와 같이 순진했던 몇몇의 사람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질병에 감염되게 만들었고, 혹은 자식을 잃었다.
하지만 백신의 안전유무를 떠나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백신을 맞은 이들이 백신을 맞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여러 종류의 백신을 맞을 재력이 있는 이들이 백신을 접종 받음으로써 병 자체가 창궐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돈이 없어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이들이 전염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것은 예방접종이라는 행위를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임에도(천연두 예방 접종으로 인해 천연두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질병이 되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런 식의 접근을 가져보지 않았다. 예방 접종이라는 행위를 이렇게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자 사회의 여러 현상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은 단 한가지 방식으로만 해석될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일례로 에이즈 환자의 치료에 의해 국민건강보험에서 적지 않은 돈을 사용한다는 뉴스를 처음 들었을때 사실 나는 그 돈이 아까웠다. 왜 개인의 불찰로 인한 질병에 공공의 재화를 사용해야 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가졌던 의문이 해소가 되었는데, 그들의 치료라는 행위는 동시에 HIV에 감염되지 않은 모든 이를 보호하는 행위였다.
사실 이 것은 단순히 새로운 관점의 발견의 경이로움에 대한 것은 아니다. 똑같은 현상을 보면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개인 각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것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인지에 대한 문제이고, 그 것은 다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의 문제가 된다. 이 책은 분명 면역에 관련된 책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되묻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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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감명이 깊었는데 한달 전에 읽어서 내용을 전반적으로 다 까먹었다. 꼭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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