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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만났던 친구로부터 이 책을 추천 받았었다. 대화 도중 내가 먼저 'SBS 다큐멘터리 퇴사하겠습니다' 이야기를 꺼냈는데, 친구가 다큐멘터리보다 책이 더 괜찮다며 추천을 해주었다. 요즘 도서 구입비를 조금 아껴보자(명색이 작가가 꿈인 사람이 책값을 아까워하다니!)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두었는데, 인기가 많은 책이라 내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조금 오래 걸려 이제서야 읽어 보게 되었다. (역시, 현재 많은 회사원들은 퇴사를 꿈꾸고 있나보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회사가 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심적인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첫 직장에 학술 마케팅 팀에 지원을 했고 입사를 했다. 마케팅 업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마케팅이란 단어에서 오는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뭔가 틀에 박힌 단순 업무가 아니라 창의력을 이용하여 개개인이 다 다른 방법과 성과를 내는 재미있는 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는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나서, 임상학술팀으로 입사한 남자 동기와 부서가 서로 바뀌게 되었다. 학회나 기타 외부 이벤트가 많은 제약회사 특성 때문에 마케팅 부서에서는 팜플렛 박스도 번쩍번쩍 들어올릴 남자 직원이 필요하다고 회사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창의적인 마케팅으로서 나의 커리어를 펼칠 포부를 안고 회사에 입사한 나는(물론 나는 이 팀에 남아 있었다면 나의 능력부족을 보이며 쫓겨났을 것이 분명하지만),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낯선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인사이동이 내 평생 밥벌이 걱정 없이 언제든지 그만두고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는 막강한 커리어를 가져다 주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실 이 업무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나는 5년 넘게 내가 하고 싶어 한 적도 없고,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업무를 하고 있다. 가끔은 이 직업이 좋다가도 어쩌다가는 내가 죽으면 이 업무가 끝나려나 라는 생각도 할 만큼 싫을 때도 있다.
둘째로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업무의 강도였다. 내가 나의 업무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딱 한가지 장점이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3년전만해도 나는 나보다 강도가 약해 보이는 업무를 하고 풀재택으로 회사에 나오지도 않고 니나노 하면서 연봉은 억을 가뿐히 넘기는 나의 상사들이 부러웠다. 그들을 보며 나도 빨리 경력을 쌓아 승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지긋지긋한 업무가 끝난다는 생각을 할 때면 회사 일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런데 6년차가 되어서야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니나노 하는 듯 보였던 상사들은 나보다 더 힘겨운 일들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괜히 월급을 많이 주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좀 더 나아질 업무 강도를 꿈꾸며 현재 나의 턱까지 쫓아오는 숨막힌 업무를 버텼는데, 나의 미래가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시차 때문에 밤 12시가 넘어서 또는 남들은 일어나지도 않는 새벽 시간에 외국의 매니저와 TC 를 하고, 교수님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을 만큼 공부도 해야하고, 심지어 한국말로도 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영어로 말을 해야 한다니. 승진을 하면 끝이 아니었다. 평온해 보이는 호수위의 백조처럼 나는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해야 했다. 그것이 내 미래가 될 예정이었다.
셋째로 실제로 내가 승진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작된 회사 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어느 회사에서건 직책은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다. 100명의 직원이 있으면 10명의 매니저가 있고 1명의 사장이 존재한다. 나는 과연 그 경쟁을 뚫고 위로 쭉쭉 올라갈만큼 능력이 있고, 그런 준비가 된 사람일까라고 매일같이 되물어본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객관적으로 말해서 나는 일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기 싫다는 것이 정답이다. 나는 욕먹지 않을 만큼만 나의 에너지를 업무에 쏟는 편이다. 이런 내가 100명중의 1명은 고사하고 100명중의 10명이나 될 수 있을까? 내가 회사라도 나같은 직원은 절대 승진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결론에 이르자 회사에서의 나의 미래가 암울해 보였다. 그러면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되묻겠지만, 나는 밤 10시 11시가 되도록 노트북 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업무에 허덕이는 삶을 결코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돈보다는 내 삶과 시간이 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승진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회사는 그렇게 노력도 안하는 나를 계속해서 고용하려 들까? 그리고 이런 나는 진짜 회사 생활에 적합한 인간인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저자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사히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던 그녀는,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다 '신문기자'가 되고 싶어서 입사를 했으면서 승진에 연연해하는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한다. 관리직의 자리는 한정적이고, 누구나 승진을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승진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왜 그 사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나는 초조해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욕망에 근거한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작년부터 미니멀리즘 등으로 안분지족의 삶을 살고 있다고 나 스스로 생각했다. 이로써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내려 놓지 못했던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그로써 변하지 않는 삶의 수준도 함께 바랬던 것이다. 달리는 열차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그 열차에서 완전히 내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저자처럼 내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 임을 인정하고, 욕망을 내려 놓고 내 삶에 모든 것을 감사해하며 살아가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렇게 결론을 내리려 했더니, 나는 책의 저자처럼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없었다. 물론 저자의 삶과 그 태도는 매우 멋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의 삶 보다 내게 더 크게 다가왔던 부분은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회사에서 28년을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저자는 노력과 유능함덕 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칼럼도 쓰고 지금은 책까지 출판했다. 나이도 50이었다. 그 상태였다면 나도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냉장고와 세탁기 없는 삶을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는? 이제 6년차의 직장인일뿐더러, 내가 하고 싶어했던 일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회사에 더 남고 싶어졌다. 그러자 나의 회사생활의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나쁜 회사원이었던 것 같다. 회사 업무가 숙제라도 되는냥 하기 싫고 미룰 수 있을만큼 미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와 나는 엄연히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였다. 학교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돈을 받고 나는 업무를 해야하는 입장이었는데, 왜 나는 그 간단한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회사가 나같은 직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 책에서 그녀가 말하는 것 처럼 나는 회사로부터 배운 것도 매우 많았다. 타임라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교를 갓 졸업했을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벌거숭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적어도 회사가 업무를 시키면 해낼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를 통해 만난 멋진 사람들.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내가 롤모델로 삼고 싶은 끝내주는 부장님과 팀장님을 만났다. 책도 좋고 인터넷도 좋지만, 실제로 그런 귀인(!)을 만날 수 있다니. 이건 회사를 다니지 않았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행운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아직 회사로부터 더 배울 것이 많았다. 돈도 중요하지만, 분명 나는 아직 내 일을 시작하기에 미숙한 단계로 회사로부터 배울 것이 남아 있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은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꿈만 꾸던 그 일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함께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 같다. 내가 회사 생활의 고충을 더 잘 견디는 사람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면 하루 끼니도 겨우 해결하고 하루 한 번 커피도 쉽사리 사 먹기 힘들고, 다른 여러 삶의 편의들을 포기하는 것을 더 잘 견디는 사람인지 말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깨닫고 난 다음에 퇴사를 생각해보는 것이 순서상 맞는 것 같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났을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지 못하는 고충보다 회사 생활의 고충을 더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원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이 나의 마음은 분명 변할 것 같다.
+
남 퇴사하는 책을 읽고 나는 되려 회사 생활에 투지를 갖다니. 암만봐도 나는 청개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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