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Dec 2017
아마도 올해 마지막이 될 관악산 등산. 전날 저녁에 눈이 살짝 내리더니 아니나 다를까, 도심에는 눈이 한 톨도 쌓이지 않았는데 산에는 소복히 그대로 쌓여 있었다. 아마 이대로 내년 봄까지 가겠지?
꽁꽁 얼어버린 물레방아.
호수의 물도 얼어붙었다.
아직 한가득 눈이 산을 압도하 것도 아닌데, 이것만으로도 예쁘다. 추위도 싫고 질퍽거리는 눈길을 걷는 것도 싫지만, 그럼에도 눈은 예쁘다.
2달동안 매주 관악산에 오르고 있었으면서도, 관악산이 바위산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원래는 청계산을 많이 갔었는데, 청계산에 비해 관악산은 계단 대신 바위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산의 이름에 '악'이 들어가는 것은 바위가 많다는 이야기가 '오늘에서야' 생각이 났다. 맨날 정신줄 놓고 가느라 까먹었구만. ㅋㅋㅋ
맨날 보던 물인데, 겨울이라 그런지 물이 더 차갑고 더 투명하게 보였다. 신기했다.
올라갈수록 눈이 더 두껍게 쌓여있다. 춥고 볕이 잘 들지 않아서 그런 듯 했다.
낙엽과 눈이 섞여서 쌓여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사실 이 날 보고 싶었던 전시회에 갈까 고민을 하다가 관악산으로 왔는데, 갇혀진 미술관에서 보는 작품과는 차원이 다른 자연이라는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깐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횟수가 많아진다.
영화의 장면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수묵화 같기도 한 광경.
너무 예뻐서 끼고 있던 장갑을 꼈다 뺐다 하면서 사진을 30장도 넘게 찍었다. 그때는 너무나도 예뻐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그때 받았던 감동이 전해지지 않아 슬프다.
연주대에서 바라보는 관악산 풍경.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그런지 윗 쪽에는 눈이 하나도 없었다.
나의 블로거 친구가 로아커 티라미수 맛을 먹어보라고 했는데, 내가 가는 마트의 과자코너를 10분간 살폈는데 로아커 티라미수가 없다. 아쉬운대로 오레오 티라미수로. 맛있다.
낙엽과 햇빛 눈은 완벽한 오브제이다.
눈이 있는지 몰라 장비 없이 갔다가(어차피 없지만) 비명횡사할뻔한 산행. 겁이 많아서 장비가 있어도 맘편히 가지는 못할 듯 하니 관악산 등산은 이로 종료해야겠다. (이래놓고 장비 사서 다음주에 당장 갈지도 ㅎㅎ)
매주 등산을 가면서 아이팟에 지대넓얕 팟캐스트를 가득 담아서 몇시간을 내내 들으면서 간다. 내가 살아오며 생각해보지 않았던 혹은 궁금함을 느꼈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내용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는데 나는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예전에는 쉬거나 놀러가고 싶어서 주말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등산을 가고 그 시간에 지대넓얕을 듣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그 시간을 기다린다. 지대넓얕은 모든 회차를 1번 다 들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3,4번까지 반복해서 들은 에피스드도 있는데 그럼에도 즐겁다.
어제는 하산 길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만족이 아니라 너무 행복해서 계속 얼굴에 미소 짓는 행복. 아침에 내가 차린 밥을 먹고 적당한 운동인 등산을 하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팟캐스트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느낀 기분이었다.
한동안은 주말에 다른 활동할 것을 찾아봐야겠다. 지금의 1순위는 블로그친구가 공유해진 넷플릭스 계정으로 이불위에서 황달걸릴때까지 귤까먹으며 미드를 실컷 보는 것인데, 몸을 움직여야 또 행복감도 느끼니 뭘 할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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