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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오늘도 맑음

사주팔자와 운명

by 여름햇살 201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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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사주팔자라는 것을 본것은 대학교 1학년때였다. 고등학교때 친했던 친구 한 명이 사주팔자를 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 친구는 당시에 안성에 있던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서울에서 만날때 우리는 항상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만나곤 했다. 그 때에 차시간이 애매해서 남는 시간에 친구의 손에 이끌려 경부선 지하에 있던, 간이 의자와 테이블을 두고 사주를 보고 있던 점쟁이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점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전체 운수는 2만원이고 재물이나 연애 등 주제를 고르면 5,000원에 볼 수 있었다. 학생이었고, 젊었기에 우리는 항상 연애운을 고르곤 했다. 


나보고는 사주에 도화가 있다고 했다. 인기도 많을 것이며 남자친구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사주를 풀이해준다는 것은 고객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그시절까지 인기가 많은 적도 없었고, 되려 예쁜 외모등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 얼굴에서 그런 욕망을 읽었으리라.  그래서 그 대학 시절 이후로 내돈 주고 사주라던지 토정비결이라던지 본 적은 없다. 우리 엄마는 매 년초 가족들의 운세를 보곤 했지만. 아, 그 이후의 연애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외모가 화려하지도 성격이 좋지도 돈이 많지도 않아서 연애운은 그닥이었다.


엄마가 해주는 말 중에 내 사주와 실제 내 인생이 들어 맞는 부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일례로 23살부터 점쟁이들은 매년 내가 그해에 결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내 나이 33.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 없고 할 생각도 없다. 우리 엄마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기를 바랬다. 점쟁이들은 엄마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고 돈을 벌었다. 우리 엄마는 종종 사주 보는 것이 헛돈 쓴건 아니더라며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았다 라고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 어떤 것도 일치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금요일 명상 수업에서 사주팔자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분이 '오늘의 운세'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오늘의 운세가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겉으로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도인님은 그 말에 전공빨(동양철학)을 내세우며 사주팔자와 운명에 대해서 말을 해주었다. 사주팔자라는 것은 일종의 통계 데이터로, 몇천년간의 사람의 인생들을 살펴보니 패턴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큰 패턴을 계산하는 것이 사주팔자라고 했다. 그와 함께 운명을 바꾸는 것도 매우 쉽다고 했다. 운명이 정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삶의 양태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족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사는 곳이 바뀌는 것도 하는 일도 그 어떤 것에도 거대한 변화가 없기에 사주팔자에 들어맞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사주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 그자체라기보다 '나'라는 존재와 연결된 연결망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와 함께 매년 사람들이 사주를 보러 가는데 사주를 보지 않고도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살아왔는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된다고 했다. 미래에도 큰 변화 없이 여태 살아왔던 대로의 선택을 할 것이고, 만나던 사람을 만나며 똑같은 패턴을 반복할테니 지금의 현재가 나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와 함께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이민을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강제적으로 가족과도 멀어지고, 만나는 사람도 바뀌고, 사는 곳도 바뀌고, 처음 하는 일을 하게게 되기에,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연결되어 있던 그 모든 연결망을 다 끊어버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로 인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했다. 그와 함께 사주팔자를 보러 가면 '외국나가면 잘살아', '이민가' 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사주 자체가 좋지 않아 그 모든 연결망을 끊어버리는 외국에서 새 삶을 살아라는 숨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김도인님은 웃으면서 이민 갈 것 없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다음 말을 이었다.


삶의 반경을 확장해서 매일 보던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하던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살아 간다면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 인간이 태어났을때 정해지는 패턴은 있더라도 내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자기 하기 나름 이라는 개똥철학을 갖고 있는 나였지만, 미래의 예측불가능한 성질 때문에 운명이라는 것에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주팔자라는 것이 이렇게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 내 운명을 개척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올 한해의 나는 내 운명을 따라가는 해였을 것이다. 올해의 내 사주팔자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 활동 반경을 넓히지도 않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아마 몇천년간 쌓여 있던 통계 데이터의 패턴대로 행동했으리라. 그런데 2018년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 이런 시간이 들자 올 한해가 도약을 위한 긴 휴식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진짜 뭔가 해보고 싶다. 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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