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영화는 처음이다. 눈과 귀가 신나는 영화만을 항상 찾았기 때문이다. 장면이 화려하지도 스토리가 거창하지도 않는 인생을 매일 겪고 있는데 왜 굳이 영화마저 그런 것을 봐야 하느냐는 도피성 선택이었으리라.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요즘은 이런 영화에 관심이 간다. 화려한 영화가 주는 긴장감이 지치게 되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영화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함춘수가 한마디 한마디 할때마다 집에서 혼자 보며 육성으로 웃어댔다. 한국에서 살아온 여자들은 모두 다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한국남자들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이 영화가 한국어로 된 영화라는 점의 강조이다. 같은 사건을 두 개의 모습으로 표현한 구성도 흥미로웠다.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 그래서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일을 굳이 스크린으로 끌어들여와 관객들과 이야기 하고 싶어한 점도 재미있었다. 나의 첫 홍상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재미있었다.
1부는 찌질남의 대표주자로서 함춘수가 윤희정을 꼬드기는 내용으로 2부는 진솔해 보이는 함춘수가 윤희정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미묘한 디테일의 차이를 읽어내는 재미가 있다. 영화 참 잘 만들었다. 언제가 맞고 틀림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하룻밤을 보내보려고 꼬드기려 아무말대잔치를 벌이고 있는 1부가 진실된 모습이며 2부는 목적을 위해 예쁘게 포장된 것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첫만남이지만 사랑에 빠져버려 가식 없는 모습을 보이는 2부가 진실이지만 1부처럼 보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사실 남자의 진심이 1부이건 2부이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것이 중요하다고 우기는 사람은 남자의 입장이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자의 본심과 상관없이 자기가 받아들이는 것이 진실이 된다. 1부에서의 함춘수가 개드립을 날렸음에도 윤희정은 그떄의 순간이 함춘수의 진심이라 생각하고 행복해했다. 2부에서의 함춘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되었지만 윤희정은 너무 솔직한 그의 그림 감상평에 빈정상하는 순간도 있었다. 맞고 틀림이 결정되는 부분은 상대방의 의도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의도가 된다. 윤희정이 진짜라고 받아 들이면 진짜이고, 거짓이라고 받아 들이면 거짓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은 개인의 의도를 타인에게 표현하는 것까지만이다. 그 것이 어떻게 판단되는지는 항상 타인의 몫이다. 개인의 표현은 의도대로 전달 될수도 있고, 왜곡되어 해석될 수 있다. 항상 그 가능성을 안고 우리는 타인과 교류하게 된다. 그 가능성으로 인해 오해와 불신을 낳기도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다양한 개인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
그래서 결론은 1부건 2부건 둘 다 찌질했다는 것이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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