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적부터 겁이 많고 내성적인 꼬마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하지 않는 그 모든 것에도 겁을 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성격이라 그런지 친구를 사귀기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단짝 친구가 누구였냐고 물으면 아무도 없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와 있으면 있는 거였고, 없다고 주눅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게 처음으로 호감을 보여주었던 첫 친구가 있었다. 작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는 나와 다르게 활발했다. 어쩌다 서로가 친구가 되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어느순간에 그 당시 유행했던 교환일기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 친구는 항상 교환일기에 자신의 모습 그리고 내 모습을 꽤 훌륭한 솜씨로 그려주었고, 나는 그 친구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 아니다, 사실 그 친구의 그림보다는 그의 재주를 감상했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때 만났던 그 친구의 가족은 4학년이 되기전에마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와 함께 전학을 갔다. 친구가 자신의 집으로 놀러를 오라고 전화가 왔던 날, 나는 하교 후 혼자 버스를 타고 친구네 집에 놀러를 갔다. 부모님 두분은 모두 일을 하러 가셨고, 친구의 할머니가 친구와 친구의 동생을 보살펴주고 계셨다. 결벽증이 있는 엄마가 정리정돈한 집에서만 살아서 정돈된 환경이 익숙했던 나는, 조금은 어수선해 보이는 친구의 집이 불편했다. 2주만에 만나는 나를 보며 친구는 반가워했고, 교환일기도 다시 교환하고, 함께 간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그리고 저녁때가 다 되어 나는 혼자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와 다시 버스를 타고 마산에서 창원으로 넘어왔다. 그것이 그 친구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친구네 집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면서 지나갔던 굴다리의 어두운 풍경은 지금이라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아주 가끔씩, 그러니깐 몇년에 한 번씩 그 굴다리를 생각한다. 1인칭의 시점으로 그 굴다리를 지나가며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3인칭의 시점으로 그 어둑한 굴다리를 지나가는 내 모습을 본다. 잔인하게도 나는 그 당시 이 곳까지 오는 것이 참 수고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 친구가 그렇게 좋았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낼 때, 그 친구의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수근대던 반 아이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나에게 살갑게 굴던 그 친구의 애정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굴다리의 어둠도 무서웠다. 나는 친구의 집에 다시는 방문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굴다리를 건넜다.
아주 가끔씩 그 친구의 애정을 떠올린다. 지금에서는 왜 그친구가 나를 좋아했는지 이해한다. 가정형편을 이유로 반 친구들은 그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 친구에게 나는 유일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었던 동급생이었다. 아니 그러니깐 유일한 친구였다. 결국 나도 똑같았지만.
연애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리고 다른 친구와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에 그 친구를 떠 올렸다. 나라는 존재 만으로도 좋아하고 행복해하던 그 친구를. 그 천진난만한 꼬마의 미소를 떠 올리며 나와 연결된 관계들을 다시 돌이켜본다. 타인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상대의 모든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그 순간을.
단편 '쇼코의 미소'에서 쇼코를 보며 그 친구가 몇년 만에 기억이 났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잠자고 있던 어느 순간이 툭 깨어나며. 우리 모두는 그 것에 호불호 혹은 선악의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여 쇼코의 미소는 여운이 많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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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미있었던 소설은 씬짜오 씬짜오. 멀어지게 된 원인만 바꾸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친해지며 마음을 주고 받고 그리고 그 정점에 달했을 때에 특정 사건으로 소원해지는 모습. 사람의 관계를 기승전결로 표현했다고나 할까. 겹쳐지는 사건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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