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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단편적으로 대도시와 지방과 같은 위치 혹은 단독주택, 아파트, 빌라 등 주거의 형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놀랍게도 어디서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라는 질문으로 확장하여 사고하게끔 전개된다.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지점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창원은 일명 계획 도시였다. 공업지역과 주거지역 그리고 상업지역이 도로를 이용해서 바둑판처럼 정갈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공간에는 충분한 녹지가 배정되어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아빠의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원아파트에서 살았다. 아파트의 평수는 작았고, 단지 중간 중간에 흙바닥의 놀이터들이 공터의 전부였다. 하지만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나는 항상 풀밭에서 시간을 보냈다. 단지 맞은 편에는 국내 최장 도로라는 창원대로 변을 따라 늘어있는 큰 규모의 올림픽공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넓은 거실과 마당이 없더라도 우리가족은 휴일에는 공원의 잔디밭에 텐트를 쳐 놓고 시간을 보냈으며, 나와 동생은 그 넓은 잔디밭을 뛰놀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끝없이 넓은 공원은 우리에게 마당이자 놀이터였고, 거실이었다. 서재를 따로 마련할 공간이 없었던 좁은 집이었지만,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도립 도서관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시던 아빠는 휴일에 종종 어린 나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셨다. 한가득 책이 꽂혀 있는 서재 대신 도립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 우리집 서재였다. 우리 동네의 인프라까지 우리 집의 범위 안에 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삶을 살아 왔기에 저자가 책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옳은 방향'에는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비록 그 주장을 위해 끌어다온 비약적인 논리에는 매번 이게 무슨 소리지 라고 하긴 하지만) 단순한 지리 혹은 구조적인 문제를 떠나서 어떻게 살아갈것인지가 먼저 고찰되어야 어디서 살고 싶은지 결론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을, 직접적인 교류를 우선시 하는 이에게는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의 확보가 우선시 될 것이고, 간접적인 교류만으로 충분한 이에게는 와이파이와 충전만 빵빵한 공간이라면 충분할 것이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찰 후에는 '나의 주거공간'에서 벗어나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접근하게 되고, 서로 다른 취향과 의견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한정된 공간과 자원으로 어떻게 우리의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라는 주제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지점에 이른다. 결국 어디서 살 것인지의 문제는 삶의 가치와 직결되게 된다. 건축이라는 계기로 삶의 방향성을 물어봐준 신선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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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환경, 역사, 문화 등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결과를 단정짓고 입에 맞는 사례들만 끌어다가 논리를 만드는 식의 글은 읽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짧은 글에서 모든 기승전결을 끝내야 하는 칼럼들을 모은 글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글이 이해가 되었다. 책읽으면서까지 편협하게 굴었더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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