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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인 조르바를 덕질하는 '나'가 관찰하는 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나'의 사유가 중간중간에 있지만, 결국에는 자유로운 상남자 조르바의 삶과 철학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 조르바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을 하는데, 조르바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개차반(?!)으로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삶에서 그정도의 감명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 중간중간에 그가 하는 말은 무릎을 탁치게 만들정도의 명언이 많다. 책과 언어로 대표되는 사유의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실존하는 생명체의 삶을 살고 있는 조르바가 건네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관념들이 아닌 손에 잡힐 것 같이 실체가 된다. 그 실체와의 접촉으로 아마도 많은 이들이 감명받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왠만해서는 조르바같이 살기 힘들다. 왜냐면 우리는 그렇게 조잡(!)하게 살기에는 체면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놈의 체면은 뭘까. 내 본성이라고 하기에는 태어나면서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을 달고 나왔을리가 없다. 그러고 다시 생각해보면 내 주변인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페르조나가 그놈의 체면이다. 그것에 대해 우리의 조르바는 아주 호탕하게 말을 한다.
"아니, 당신은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나는 격분해서 소리쳤다.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그 놈이 유일하게 내가 아는 놈이고, 유일하게 내 수중에 있는 놈이기 떄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저런 이기주의!"
내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어요, 두목. 사실이 그러니까. 내가 콩을 먹으면 콩을 말해요. 내가 조르바니까 조르바같이 말하는 거요." - P82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나일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온전히 자신의 삶에 당당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삶의 결과들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조르바여,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도 자유로운 조르바이기에 관념의 허상에 갖혀 있는 '나'나 다른 사람들이 멍청이처럼 보일 따름이다. '나'가 조르바에의 생각에 의문을 던질때마다 조르바는 저 인간은 왜저러고 사는가 라는 한심함을 겨우 숨기며 대답을 해준다. 그리고 독자는 그가 입을 열때마다 온전히 생동하는 생명체 그 자체를 느끼게 된다.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을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 처지밖에 더 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낡은 세계는 구체적이고 견고하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실재하는 세계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을 빚는 재료인 빛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광풍-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에 휩쓸린 한 조각 구름이다. 지상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표어를 줄 수 있을 뿐이다. 그 표어가 막연할수록 선지자는 더 위대한 것이다. -p92
"보여줄게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 젊은 두목, 날 돌대가리로 보지 마쇼. 어디서 내가 얼뜨기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 소릴 한 놈이 틀린 거요. 나도 아나그노스티 영감보다 더 배운 건 없지만 어떻게 해도 그 영감만큼 멍청할 수는 없어요. 그래, 내가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라면, 그 멍청이와 돌대가리 여편네는 어떨 것 같소? 이 세상의 수많은 아나그노스티는 또 어떻고? 당신이 그들에게 보여 줄 게 기껏해야 더 많은 어둠밖에 더 있어요? 그 사람들, 지금까지 꽤 잘들 살아왔어요. 새끼 낳고, 손자도 보고, 하느님이 그자들을 귀머거리나 장님으로 만들어도 '하느님을 찬양하리로다!' 어쩌고 합니다. 그자들은 그 비참한 상태가 편한 거예요. 그대로 놔두고 아무 소리 하지 말아요." - P93
유발 하라리가 그랬듯이 인류는 실존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으로 지금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상의 능력만을 좇다가 자칫 그 상상력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반인 육체를 부정할 수가 있다. 육체에서 오는 아주 기본적인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욕구들을 부정하고 억제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조르바가 원천적인 욕구만을 좇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 것들의 중요성을, 그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잘 보살펴줘야함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또 한가지 노릇이 바로 이거죠."
조르바는 냄비를 불 위에 얹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염병할 여자- 이 또한 끝이 없는 전쟁이지만 - 뿐만이 아닙니다. 먹는 짓거리 또한 끝없는 전쟁이지요." -P99
마지막 그 순간까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단 조르바가 출간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어쩌면 인류라는 것들은 첨단 과학 문명을 이루었다고 콧대를 높이고 있지만, 실상 정신적인 부분은 1도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논리와 이성적인 것만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비이성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생명체 조르바로 산다면 지탄받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그 지탄은 조르바를 향한 것이 아니라, 조르바처럼 그러지 못하는 용기없는 자신을 향한 것이겠지.
결론: 그냥 살자. 막 살자. 잘 살아야지 이딴 개념에서 벗어나 그냥 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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