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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책 공산당 선언

by 여름햇살 201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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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어 읽었다, 공산당 선언. 한 때 지구의 반을 매혹시켰던 그 논리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라고 외쳐댔었는데, 정작 그 호기심은 매번 나의 게으름에 몰락(?) 당하기만 했었다. 그리고 독서 모임 선정 도서라는 핑계로(내가 추천했지만)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한 문장 소감은 멋있긴 멋있네.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세습 귀족과 평민, 남작과 농노, 동업자 조합원과 직인, 요컨대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부단히 대립했으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이 투쟁을 벌여왔다. 이 투쟁은 항상 전체 사회의 혁명적인 개조로 끝나거나 투쟁 계들의 공동 몰락으로 귀결되었다. (P16)


서문에 나와 있는 단 세 문장 만으로도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꿰뚫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더 놀라운 것은 이 글이 쓰여진 후 100년도 더 지났음에도 저 문장들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래서 호모 사피엔스종은 안 돼, 그냥 이러고 사는 것이 종특이야 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다면 쉬울텐데, 사람이라는 것이 그리고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상도 아니니 참 고민이 많다. 


 생각해보면 이 선언문이 작성될 시대보다 지금의 시대가 더 암담해 보이기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자신이 프롤레타리아의 최하층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그때보단 현재가 더 낫다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제3세계에서 글로벌기업으로부터 착취 당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그나마 100년 전에는 그들을 위해 격동적으로 혁명을 일으키려 했던 이들이라도 있지, 지금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따위는 애시당초 없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그들의 생활의 안위를 위해 불황이라는 핑계와 극심한 개인주의라는 철벽을 치고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붉은 깃발을 들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달려나가야 할까? 그것 또한 정답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순수한 열정으로는 인간의 본성은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지난 과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인간의 본성을 누를 수 있는 종교의 힘에 기대어야 할까? 현재 한국의 기독교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IS가 어떤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아버린 이 시점에는 다시 종교에게 그 권위를 준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리라. 결국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답을 구할 수 없는 나는, 그저 현실에나 집중하고 하루하루 행복해하며 살아가고, 가아끔씩 나보다 더 취약한 프롤레타리아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연민으로 자위하고 또 착각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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