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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영화 기생충

by 여름햇살 2019.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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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봐왔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의 한가지 공통점은 영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항상 주인공의 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데에 있다. 범상치 않은 배경에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들을 배치해놓기 때문에, 자꾸 그 다음 장면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기생충 또한 그러했다. 묘한 분위기의 저택과 반지하 그리고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상호작용, 뻔해보이지만 전혀 뻔하지 않은 흐름, 그래서 그의 영화는 항상 재미있다로 끝이 난다. 

 

 영화를 보면서  조던 필 감독의 어스가 생각났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설국열차와 옥자)도 떠올랐다. 예전에는 '사랑'이 전세계적인 공감코드였는데, 지금은 '빈부격차'로 세계가 하나가 된다. 빈부격차를 겪지 않는, 그리고 빈부격차가 극한으로 치닫지 않는 나라는 이제 없다. '사랑'이 우리의 일상이었듯이, 이제는 '빈부격차'가 우리의 일상이고 그것이 문화를 이루어버렸다. 빈부격차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영화 중간중간에 웃음이 터져나오듯, 우리네 삶도 웃음과 씁쓸함이 공존하고 있고, 우리는 익숙해져서 살아가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기택의 가족들이 살던 반지하와 국문광의 남편이 살던 지하벙커이다. 아무리 멀쩡한 옷을 입고, 그럴듯하게 커리어를 만들어내도 결국 그들이 지내는 곳은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일뿐이었다. 지상에서는 푸르른 잔디가 햇빛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데, 그들은 햇빛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지상으로 올라오고 싶었던 이유는, 좀 더 나은 삶이 아닌, 에너지의 근원인 햇빛, 그러니까 생존을 위함이었을 것이다. 무계획으로 살아야 하는, 미래를 꿈꿀 수 없이 오직 생존만을 위한 하루하루의 삶이 인생에게는 오직 허락된 것은 꿈이 아닌 생존, 이 것이 가장 슬픈 지점이 아닐까 싶다.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았다. 칠푼이 같은 연기에 조여정도 찰떡같았고, 선을 넘는 듯한 느낌을 송강호가 주자 눈을 부라리며 눈썹을 찡그렸던 이선균의 표정도 인상에 남는다. 인터폰 화면으로 광기를 흘리던 이정은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선균에게 달려가던 송강호의 강렬한 눈빛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나는 영화를 보면서 기택의 가족들에게 감정을 이입했고, 그 억눌린 감정을 폭발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물론, 그대로 도망쳐버릴 수 밖에 없었던 상황덕에, 기껏 방출된 카타르시스는 현실의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긴 했지만 말이다. (아주 감정을 들었다 놨다 감독님 제대로야)

 

 영화를 다 보고나서 똥물이 넘치는 변기 위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되어서, 햇빛에 빨래 말릴 수 있는 집이라서, 그래서 옷에서 꿉꿉한 냄새가 나지 않을 수 있어서, 통장에 돈이 있고 직업이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다시 기택의 가족에 몰입했던 감정과 만나 미안함으로 수치스러움으로 그리고 슬픔으로 변했다. 나는 이 자본주의체제에서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아니 가해자이고 싶을까 피해자이고 싶을까가 조금 더 정직한 질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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