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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말만 하고 일년 이년 미루고 있다가, 독서모임의 5월 책으로 선정되어 드디어 읽게 되었다. 읽고 싶었던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유명하다는 이유가 전부이다. 그리고 나는 간만에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사건 중심으로 소설이 흘러간다기보다 주인공 요조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요조의 의식, 그 생각이라는 것이 참 흥미롭다. 왜냐면 사람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각자의 인생 단계 어느 시점에서건 생각해보았던 문제,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 나의 관계의 모호함에서 오는 현기증들이 기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내 어릴적의 일기장을 들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는데, 나의 내적인 방황을 정당화 해주었기에 이 책이 더 좋았던 점도 있다. 그렇다고 요조처럼 방탕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아쉬운 지점이다.(?)
주인공 요조는 인생에서 '확신'이라는 것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확신'이라는 것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들은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종교'이며, 다른 이에게는 '돈'이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사랑'이 된다. 이 것들은 인간의 개체수만큼이나 다양하고, 정답 또한 없다. 다시 말해 자기가 믿고 싶은대로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주인공 요조의 인생에는 그 '확신'이라는 것이 부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 것은 하나의 프레임으로 그 프레임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면 -그 프레임만을 고집하며 발생하는 문제점은 일단 차치하고- 삶은 편안하고 쉬워진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은 불안정하고 두려운 존재이고, 오직 확신할 수 있는 '생각하고 있는 존재인 나'에로만 모든 의식을 집중하게 된다. 그로 인해 자의식 과잉 당첨!
깜작 놀라,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습니다. 적. 제가 시게코의 적인지, 시게코가 저의 적인지, 어쨌든, 여기에도 나를 위협하는 무서운 어른이 있었던 것이다, 타인, 이해할 수 없는 타인, 비밀 투성이인 타인, 시게코의 얼굴이, 갑자기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시게코만은, 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 사람도, 그 '갑자기 등에를 때려죽이는 소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후부터, 시게코에게조차 벌벌 떨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에 대해서, 점점 조심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곳은, 그다지, 무서운 곳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전까지의 저의 공포감은, 봄바람에는 백일해의 세균이 몇 십만, 목욕탕에는, 눈을 못 쓰게 하는 세균이 몇 십만, 이발소에는 대머리병 세균이 몇십만, 국철의 손잡이에는 옴의 벌레가 우글우글, 그리고, 생선회, 소고기 돼지고기의 설구이에는, 촌충의 요충이네, 디스토마네, 뭐네 하는 것들의 알 등이 반드시 숨어 있고, 또한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으로 유리의 조그만 파편이 들어와, 그 파편이 체내를 맴돌다 눈알을 찔러 실명하는 일도 있다는 등의 이른바 '과학의 미신'에 겁을 먹고 있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몇 십만이나 되는 세균이 떠다니고 움직이고 있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정확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역시 인간이라는 것이, 아직, 제게는 무서워서, 가게의 손님과 만나는 데에도, 술을 컵으로 한 잔 벌컥 마신 뒤가 아니면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무서운 것은 오히려 보고 싶어지는 법. 저는, 매일 밤, 그래도 가게로 나가서, 어린아이가, 사실은 약간 무서워하는 작은 동물 따위를, 오히려 강하게 힘껏 쥐어버리는 것처럼, 가게의 손님에게 취해서 어쭙잖은 예술론을 떠벌이게까지 되었습니다.
'세상'은, 역시 속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결코, 그런 단판 승부 따위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결정되어 버리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의 의식의 상태는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조난 당한 우주인과 비슷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영상화 한다면 영화 그래비티가 되는 것 아닐까) 지구에서는 중력이라는 것이 나를 안전하게 붙들어 주고 있었건만, 그에게는 그의 의식을 붙들어 줄 구심점이 없다. 생각은 그때 그때 상황에 부유하고, 세상은 무섭지 않은 것이었다가, 다시 보니 무서운 것이 된다. 관심의 대상이 생겨나면 항상 그 곳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술, 여자, 마약,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히 그를 붙들어 둘 수는 없다. 왜냐면 그것은 현재 불안의 상태를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도구이지, 삶의 가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조는 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의식을 붙들어둘 대상을 찾는데 전 생애를 보낸다. 그럼에도 삶이라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원래 삶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도, 계획된 것도 없는 그 모호함 자체이며, 그 속에서 자신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 들이는 것임을 이해하는데 실패했다. 그 실패로 인해 그는 스스로를 '인간실격'이라 규정지었고,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다.
"볼일이라니, 어떤?""야, 야, 방석의 실을 끊지 마."저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깔고 앉아 있던 방석을 꿰맨 실이라고 해야 할지, 묶은 노끈이라고 해야 할지, 그 술 같은 네모서리의 실 하나를 무의식중에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가, 힘껏 잡아당기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호리키는, 호리키네 집 물건이라면, 방석의 실 하나라도 아까운 듯,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야말로, 눈에 쌍심지를 세우고, 저를 질타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호리키는, 지금까지 저와의 교제에서 무엇 하나 잃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된다. 타인에 대한 신뢰도 없이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주변인 누구에게도 친절하거나 진심을 보이지 않았다. 누가봐도 호리키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인 자신을 항상 호리키보다 나은 인물로 의식하고 있다. 그 알량한 자존심으로 요조는 주변인의 진심을 얻어내지 못했다. 자업자득이다.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맨손 체조만 좀 했어도 다자이 오사무의 우울증은 치유되었을 것이라고 냉소적인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종교 생활이라도 했으면 그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의 고독함이 완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애정어린 말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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