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나는 이 영화 포스터 한장으로 별 시덥잖은 한국식 코메디 영화겠거니 어림짐작하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한두명씩 이 영화가 숨겨진 걸작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추천자들의 취향에 대한 의심반 기대반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맙소사. 이런 영화였다니, 충격이었다. 그리고 10년간이나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나에 대한 변명으로 이 포스터를 탓해본다.
시작은 김씨(남자)의 자살로 시작한다. 회사의 부도로 인해 개인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 된 그는 여자친구에게 마저 버림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결심 후 한강 다리위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한강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표류하게 되고, 밤섬에 갇힌다. 밤섬은 육지와 연결된 곳이 없어서 말 그대로 섬이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 또한 없으므로 무인도이다. 그렇게 그는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의 삶을 시작한다.
또 다른 김씨(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작은 방에 갖혀서 지낸다. 그녀의 일상은 타인의 미니홈피를 클릭하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사진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다시 올리는 것이다. 그런 활동으로 얻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이 가득한 댓글들이다. 그녀는 그렇게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며 온라인상의 삶으로 만족하며 지낸다. 스스로를 자신의 방에 그리고 온라인에 가둬둔 삶인 것이다.
영화 포스터에 "사는게 모험이지!" 라고 되어 있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것이란 것을. <나혼자산다>에 출연중인 기안84를 표현하는 말 중에 "태어난김에 사는 남자'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볼때마다 잘 만든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모든 사람들은 태어난김에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삶이라는 것이 생각해보면 운명이라거나 계시같은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질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삶이라는 것은 각자가 운명이라던지 계시라던지 꿈이나 목표라는 것을 본인이 먼저 정해 놓고 그 것을 따라갈 뿐이다.
남자 김씨는 새로 시작한 삶에서 그의 목표를 짜장면 만들기로 정했다. 그래서 씨앗을 구하고 땅을 일구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허수아비를 만들며 자신의 밭을 일군다. 그를 미련하다고 그의 삶을 비웃는 것은 오만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짜장면(목표)를 위해 자신의 밭(인생)을 일구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드디어 짜장면을 먹게 된 순간 오열하는 장면에서 내가 고군분투 살아왔던 지난 삶이 겹쳐보였던 것이. 그런데 그 뒤에는 난관이 닥쳐온다. 그가 일구어 놓은 밭은 태풍에 휩쓸리고 그는 자신의 섬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몇개월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밤섬에 내던져졌던 그는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육지에 내던져진다.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 덕에 그녀의 일상이 변했다. 모니터속 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달과 민방위 훈련 뿐이었는데, 어느날 한강에 외계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와 교류를 하며 하루하루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던 그녀의 섬을 침몰시킨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녀의 온라인 상의 가짜삶이 다른이에게 들통난것이다. 방안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처럼,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철옹성같이 쌓아올렸던 그녀의 삶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런 둘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서로이다. 같은 처지의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외부로부터 단절되고 자신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한 그들은 서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그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삶이라는 것은 원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생기며 이제 좀 인생 나아지려나 하다가도 나쁜 일로 뒷통수를 맞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나쁜 시기에 스스로 표류 시킬 이유는 없다. 다 낡아 빠진 오리배라도 의지하고 헤쳐나오면 된다. 그것마저 힘들면 오리배에서 잠시 쉬어가며 낮잠이라도 자면된다. 어려운 시기조차 즐길 수 있는 여유와 함께 말이다. 물결을 헤치며 저 멀리 나아가는 쾌속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낡은 오리배에서 페달을 밟는 것이 힘들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옆에서 나룻배에서 나와 함께 노저어 가는 그 사람은 나의 존재만으로도 삶의 희망을 갖는다. 삶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존재 이유만으로도 타인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 누가 그 삶을 누추하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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