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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책은 읽을 때마다 언제나 놀랍다. 정치적 혹은 가치관적인 문제로 그의 글에 호불호는 있겠지만(물론 나는 호), 글을 주장하는데 펼치는 논리는 참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러니깐 언제 읽어도 그의 말에 설득당하고 마는 것이다. 멱살잡고 내말이 맞지? 라며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결국에는 이 길밖에 없을껄? 이라며 자발적으로 그를 따라가게 만든다. 놀랍고도 부러운 능력이다.
역사의 역사는 출판된지 꽤 되었지만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 것과 게으름이 하이브리드되어 왠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것 같은 그의 책을 자꾸 밀어낸 탓이다. 이 책은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밝힌 것 처럼 '가이드 투어'와 같은 책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중요하고 유명한 포인트만 콕콕 찝어 주는 족집게 강사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표현대로 참 맛을 알기 위해 언급된 모든 책을 읽어 볼 수 있으려면 좋으련만, 이미 읽어 본 총균쇠와 사피엔스를 제외하고는 사마천의 '사기'외에는 읽어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저자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 그러니깐 그의 욕망은 책 중간에 랑케의 이야기와 함께 나온다.
게다가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다. 달리 말하면 역사는 문자 텍스트로 재구성한 이야기다.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지며,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먼저 말을 했다. 말에 담은 과거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내지 못하며 압축, 누락, 과장, 왜곡, 각색을 거쳐 입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문자텍스트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설령 완전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의도대로 똑같이 해석한다는 보장은 없다.(P139)
그러니깐 그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P234) 라고 주장한 에드워드 카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더 옳지 않겠니 라고 말을 한다. 현재는 어용지식인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과거 한 때 정계에 몸을 담은 적이 있던 그는 정치적인 입장을 이야기 할 법도 하지만 책에서 한국정치와 관련된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읽는다면 그가 비판했던 랑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는 유시민의 책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과 끊임없는 대화를 읽어야 한다. 그러면 왜 그가 이런 책을 집필했는지 진짜 이유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지만 그는 과학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듯 했다. TV방송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같이 과학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본다면 그는 '인류'의 발전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정치적으로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면 이 책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역사는 객관적일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역사란 것의 태생적 문제이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지할 수 없다면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인지하기는 더 어렵다(P136)"는 그의 주장처럼 역사란 것은 해석하는 사람, 그리고 해석하는 시점에 따라 다른 의견으로 해석된다. 그와 더불어 "인간은 역사에 도덕적 감정을 투사(P176)"하면서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역사에 부여하게 된다. 그 말인즉 '해석된 역사'에 있어서 목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역사는 변화할 것이다. 오랜 페이지에 걸쳐 이 책을 읽은 우리는 생각해보게 된다.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역사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시대적이므로 그 것까지 함께 생각했을때에 좀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에 대해 말이다.
이 내용을 그의 과거와 결부지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한국역사가 누군가에 의해 쓰여졌고, 그것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 것은 이래서 옳고 이래서 그르다 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방식보다 훨씬 교양있고 우아하며 지적이다. 이래서 그가 좋다. 다음 책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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