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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영화 월E Wall-E

by 여름햇살 2019.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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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생시절 경향신문사 건물에 영화관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거리가 좀 있음에도 나는 굳이 이곳까지 와서 영화를 종종 보곤 했는데, 그 이유는 심야영화 패키지(영화 3편)가 단 돈 만원이었기 때문이다. 12시부터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잠깐씩 있고 대략 아침 7시까지 영화를 3편을 틀어주던 그 심야영화 패키지는, 내 대학생 시절의 즐거운 취미 중 하나였다. 남들보다 밤을 잘 새는 편이었지만, 아무활동없이 스크린만 몇시간을 쳐다보다다보면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단 한순간도 졸지 않았던 영화가 있었으니, 그 것은 바로 애니메이션  월E였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월E는 내 최애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쓰레기로 뒤덮여 황폐해진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떠난 인류. 그들은 언젠가는 다시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쓰레기 처리 로봇 월E들을 지구에 남겨두고 간다. 너무 많은 쓰레기로 과로사 한 것일까, 아니면 황폐해진 지구에는 로봇조차 살 수 없던 것일까. 지구에는 단 하나의 월E만 남게 되었다. 매일아침 태양열로 충전한 뒤 쓰레기를 모아 사각형 블럭을 만들어 탑을 쌓는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벨트를 풀어 걸어 놓고, 그날 하루 수집했던 물건들을 분류하여 정리한 뒤, 영화를 감상한다. 남녀의 사랑을 담고 있는 로맨틱한 영화를 보며, 월E는 자신의 두 손을 잡는다. 가끔은 모래폭풍이 날아와 업무 중(?) 다시 집으로 복귀하기도 한다. 그 것을 제외하고 월E의 일상은 매일이 똑같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바퀴벌레 한 마리다. 그렇게 월E는 700년을 보낸다.


이같은 영화의 첫 장면만으로도 월E가 왜 EVE와 사랑에 빠졌는지 알 수 있다. 황폐한 지구 위에서 끝나지 않을 고독, 상호교감을 원하는 존재에게 이보다 더 끔찍한 지옥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무지로 인한 지구 환경 오염으로 플랫을 구성했지만, 영화는 사실 우리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감정,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때의 고립감을 폐허가 된 지구에서 홀로 남아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생각할 수록 놀랍다. 


누군가와 연결이 되었던 그 순간의 행복감을 맛본 월E는 다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이브는 수면모드에 빠져 그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지만, 월E는 그녀와 함께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잠을 자고 있는 이브를 향한 눈물나는 월E의 헌신(이라 쓰고 호구라고 읽는다) 이 시작된다.  혹여나 훼손될까 먼지바람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고, 움직이지 못할까 태양열 충전도 빼먹지 않고, 그녀를 비 맞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우산으로 몇번씩이나 번개에 맞아도 상관없는 월E이다. 아아, 월E는 그 무서운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랬던 월E기에 EVE를 다시 찾기 위해 목숨까지 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영화의 중반부는 EVE에 집착하는 월E의 눈물겨운 분투기로 이어진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월E는 평생의 터전인 지구도 버리고 과감하게 우주여행을 할 용기도 있다. 그녀의 임무가 자신의 목숨에 해가 될 지언정 완수하려고 노력을 한다.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더니, 그런 정성에 감동한 이브는 월E를 되살리기 위해 지구귀환작전을 필사적으로 완수한다. 고물덩이에서 각종 부품으로 월E를 수리했지만, 월E는 뜨거웠던 이브와의 만남을 잊고 말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마주잡은 손에서 전기라도 튀었는지, 기적적으로 월E는 이브를 기억한다. 그렇게 이브와 월E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노력하였고, 소 뒷걸음질하다가 쥐잡은 격으로 인류를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는 임무까지 완료했다. 


감동의 포인트는 여러가지지만 내게 와 닿은 것은, 월E의 지독한 고독함 그리고 월E의 아낌없는 사랑과 희생이었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조금 헷갈린다. 월E같은 순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와 같이 헌신할 수 있는 이브를 만나고 싶은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되었건 사랑에 빠지는 그 경험은 위대하다. 그 위대한 사랑으로 지구도 살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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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명대사: 이바~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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