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3

by 여름햇살 2019. 2. 20.
반응형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가 끝이 났다. 1,2편으로 한껏 올려 놓은 관람객의 기대를 최종화에서 어떻게 충족시킬것인지 (쓸데없이 광팬되어) 심장이 조마조마했지만,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3D로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사실 귀여운 나이트 퓨어리가 2마리씩이나 나온다면, 이미 게임 끝이다


 1편의 버크섬 바이킹들과 조금은 다른 히컵의 정체성 찾기로 시작하여 2편은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속에서 히컵의 성장으로 이어져 마지막 3편에서는 결단과 새로운 삶과 모험의 시작으로 종결된다. 1편의 꼬마였던 히컵이 자라 모험을 통해 성장을 이루어 3편의 마지막에서 그의 자식들이 다시 모험을 마주하게 되는 그 순환이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었다. 물론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투슬리스를 위해 히컵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이었다. 히컵을 위해 자신의 왕국인 히든 월드를 떠난 투슬리스에게, 히컵은 투슬리스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스스럼없이 내주었다. 얄팍하게 이루어진 우정만 만나 봐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아이조차 온전히 사랑하지 않았던 부모의 이야기를 뉴스로 너무 많이 들은 탓일까. 사랑이란 이유 만으로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야기는, 시대와 국경 그리고 허구를 초월해서 감동을 안겨다 준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허무맹랑하지 않은 스토리 흐름을 갖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매 편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과 항상 마주 하는 상황을 설정해둔다. 1편은 투슬리스를 얻기 위해 히컵은 자신의 왼쪽 다리를 잃었다. 2편은 버크섬을 지키기 위해 히컵의 아빠 스토이크를 잃었고 3편에서는 각자의 삶을 위해 히컵과 투슬리스는 서로와 작별하게 되었다. 그 큰 희생을 치루었기에 얻게 된 결과가 더 값지게 느껴진다. 아니면 그 값진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큰 희생이 따라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주어야 할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에서는 얻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잃는 것에만 집착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예측불가능한 미지의 세계도 두려운데, 그 것을 위해 치르어야 할 댓가 또한 너무 크고 벅차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30여년의 삶을 살아 온 후에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가장 어리석고 불행했던 지점이었다. 성장하지 못한채로 머무르는 세월동안 잃은 것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훌쩍 커버려 수염도 북실북실해지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히컵처럼, 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 조금씩 나가보는 삶을 살아야지. 설령 나만의 투슬리스를 잃게 되더라도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