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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사당역 남현동 미당 서정주의 집

by 여름햇살 2019.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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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남현동에는 놀라운(?) 장소가 있다. 바로 <미당 서정주의 집>이다. 남현동이 예술인마을로 유명했다는 것을 듣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더니 미당 서정주의 집이 꼬박 나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까먹고 있다가 동네에 뭐가 있나 배회하다가 발견한 것이 그 두번째였다. 놀랍게도 매일같이 뻔질나게 지나치던 사당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다. 산책때 뿐만 아니라 관악산 둘레길을 산책하고 내려 오는 길에 항상 지나쳤었는데 눈치채지 못하다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먹고 구경하마 하고 방문했다. 친절하게도 입장료는 무료이다.



이 곳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미당 서정주의 집!

일반 주택으로 요즘이 빌라형태와는 달리 마당이 있다. 마당과 푸른 식물들 때문에 사람이 머무르는 곳의 느낌이다.

봉산산방. 쑥과 마늘의 집. 이름이 너무 귀엽다.

집 구석구석에 서정주 시인의 시가 있다. 내게 서정주의 시는 수능시험 언어영역 단골 문제로 다가온다. 왠만한 그의 유명한 시는 수능 및 모의고사 언어영역에 실릴 정도였다. 실제로 집안에 전시된 액자의 모든 시를 다 알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놀랐다. 그때 그시절이 물씬물씬 올라오는 것도 좋고, 그것과 별개로 지금은 삶을 어느 정도 살아온 한 인간으로써 그의 시를 마주 하는 것도 좋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앙증맞은 감나무.

추운날 갔더니 요렇게 고드름이 맺혀있었다.

무등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누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시인의 옷이 전시되어 있다. 이걸 보며 한복이 입고 싶어졌다. 평상시 개량한복으로 옷을 입고 있어도 좋을텐데 말이지.

빈티지 넥타이. 가운데 넥타이는 오래전의 물건임에도 꽤 예쁘다. 요즘 하고 다녀도 될 것 같다.

이 곳이 1층. 소파뒤의 문에 관계자분이 계신것 같았는데 ,관람 내내 나와보시진 않으셨다. 왼쪽이 입구로 이 곳에서 실내화로 신발을 갈아 신는다.

시인은 아내를 많이 사랑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로맨티스트였을 것 같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했다.

깔끔한 부엌. 그때 당시 모습인지 다시 공사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는 안내문구 "고장 수리중"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 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개인적으로 서정주 시인의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다. 친일행동으로 그를 미워했으나, 이 시를 읽을때면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시의 힘이다.


추천사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배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신부


신부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참 웃긴게,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 시가, 시 답지 않은 산문같은 구성 및 재로 내려 앉아 버렸다는 이야기에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얼마나 잘 썼는가. 나같은 (어리숙한) 사람에게 옛 전설을 솔깃하게 만들고 그 전설에 대한 두려운 감정까지 만들었으니 말이다. 내용이 아니라 기법이 대단하다. 


이런 곳에서 가부좌틀고 앉아 명상하면 좋을 것 같다.

춘향 유문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동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조용한 동네에 방문객까지 적어 방문하기 더 좋다.


내 개인적으로 사당역 근처 데이트 코스로도 추천하는 바이다. 남현동 1년차가 커플들 혹은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사당역 주말 데이트 코스는


11시쯤 만나서 1시간~1시간 30분 정도로 관악산 둘레길 산책 - 내려오는 길에 미당 서정주의 집 방문하여 구경하기 - 사당역 안성각에서 소모한 칼로리 2배 분량의 음식 폭풍 흡입 - 시리어스 커피에서 시리어스하게 맛있는 아메리카노 한잔 하며 서정주의 시 읽어 보기 - (에너지 남으면 사당역 6번 출구에 있는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 들러서 무료 전시 관람)- 그 감성 그대로 사당역 파스텔시티 지하 2층 반디앤루니스에 들러서 문학책 기웃거리기 - 사당역에서 각자 집 빠이빠이


이다.  


이정도면 사당역에 딱히 볼 것 없다는 소리는 못하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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