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가 아니더라도, 하루에 하나씩 일기라도 쓰기로 한 나의 소박한 목표는.........전혀, 하나도 소박한 것이 아니구나. 갑자기 작가를 꿈꾸었던 나 자신을 비웃게 된다.. -_-;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될테야 :) 흐흐.
이 날은 엘 찰뗀(El chalten)에 가기로 한 날이다. 깔라파데를 온 사람들이 최소한으로 방문하게 된다는 곳은 모레노 빙하와 엘 찰뗀. 전날에는 그 중의 하나를 다녀왔고, 이 날은 나머지 한 곳에 가기로 했다.7시 30분에 픽업차량이 온다고 해서 7시 10분쯤부터 식당에서 기다렸다.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면서.
steve가 내려왔다. 날보며 환하게 웃으며 굿모닝 인사. 그는 나이는 나보다 많아 보이는데, 나보다 더 순수한 미소를 갖고 있다. 나도 해맑고 싶은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도 오늘 엘 찰뗀에 간다고 한다. 그런데 픽업은 없고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한다. 뭐지? 여기서 예약을 한게 아닌가봐~ 그와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페이스북 계정을 서로 교환했다. 서로의 여행을 지켜보기로 하면서!
7시 40분, 50분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뭔가 잘못 되었다. 호스텔의 주인 아저씨가 아직도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어디다가 전화를 한다. 뭐야, 나 예약이 안 된건 아니겠지? 갑자기 초조해진다. 아저씨가 오더니 택시가 곧 올거고 그것을 타고 가면 된다고 설명해준다. 잠시후 택시가 왔고, 요금은 아저씨가 지불했다. 나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자기네들끼리 말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버스터미널에 택시가 도착했다. 마을이 짧아서 5분도 채 택시를 타지 않은 것 같다. 8시 출발인 버스가 다행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 표를 전달 받고 얼른 탑승했다. steve가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넨다. 어라? 같은 여행사였잖아? 여튼 잘됐다 싶어졌다.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군. 그러나.. 버스가 중간 도착지에서 멈출때까지 단잠에 빠졌다. 허허, 꼭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잠이 안오는데 버스만 타면, 멀미 때문인지 잠이 잘온다.
이 곳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숙소라고 해야할까 베이스캠프? 아니면 산장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 설명을 들었고, 저 장소의 역사가 기재되어 있는 1장짜리 안내문을 가지고 왔었는데 여행중에 분실해서 알 수가 없다....흑. 여튼, 하이킹을 하던 사람들이 묶어가던 역사적인 곳이었다. 지금은 엘 찰뗀으로 가는 버스들의 휴게소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또 이런 곳에서는 차 한 잔 해줘야 제맛이지. 아침에 커피는 마셔서 마떼로 주문을 했다.
차 한 잔 하며 내부 구경.
저렇게 언어별로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한국어는 없다.
맞은 편에는 강이 흐르고 있다. 꽤나 오랫동안 버스가 떠나지 않아서 steve랑 둘이 강을 멍하니 쳐다보며 서 있었다. 아무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내가 그 순간 할 일이라고는 서서 강을 쳐다보는 일 뿐이다. 참 좋다, 이런 것. 피츠로이 그 놈, 가는 길마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놈일세~ 30분 정도 쉬었을까. 다시 버스가 출발한다. 그리고 난 또 머리가 닿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드디어 엘 찰뗀에 도착했다. 잠이 덜 깨서 이승인지 저승인지 분간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피츠로이는 눈에 들어 온다.
들은대로 정말 작고 한적한 마을이다. 관광객 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비수기라 그런지 관광객도 많지 않은 편이다.
버스에서 내린 여행객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입산(!)에 이어 안전수칙 및 지켜야할 사항들에 대해 교육을 한다.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을 것, 쓰레기는 가지고 올 것, 호수 근처에서 용변금지 등 대부분이 금지 사항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점은, 산을 관리하는 그 모든 사람들이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아닌 그저 엘 찰뗀의 마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관광객 스스로 피츠로이를 아끼고 보호하기에 세계유산을 무료로 볼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관광객들이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관리를 위해 인력이 들어가고 결국엔 입장료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건 본인들도, 관광객들도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교육이 끝난 뒤에는 지도를 하나씩 나눠주고, 알아서 입산한다. 난 오늘 정말 만년설을 밟게 되는 1박 2일의 피츠로이 트랙킹은 아니고, 또레 산만 오르기로 했다. 장비도 없고, 별로 내키지도 않는다. 추운건 그저 너무 싫다. ㅜㅜ 직접 체험하지 않고 그냥 두 눈으로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ㅋㅋ
마을이 참 조용하다. 비수기라 그런지 숙소도 음식점도 문을 닫은 곳이 많다. 왠지 그래서 더 좋다. 진짜 엘 찰뗀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또레 산으로 가는 길.첨엔 휑하니 뚤린 오른쪽 길로 갔다가 미아 될 뻔....ㅋㅋㅋㅋㅋㅋ
다시 왼쪽길로 돌아 왔더니 이렇게 안내판이 있다.
아직까지는 그냥 산 길. 늦가을에 동네 뒷 산을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ㅋㅋ
10분도 채 오르지 않아서 보이는 강 줄기.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풍경도, 낯선 곳에서 바라본다는 하나 만으로도 바라보는 이에게 큰 감명을 줄때가 있다. 이 풍경이 나에게 그런 곳. 햇살이 강물에 반짝반짝 이는데. 김소월이 엄마와 누나가 살고 싶었던 곳도 이렇게 적막하고, 강물 위로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이런 강변이 아니었을까... 라며 시를 쓰며 한 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절대 힘들어서 쉬려고 했던 건 아니고.....ㅋㅋㅋㅋㅋ
강변 너머에는 만년설이, 캬. 내가 여기다 집짓고 살아야 겠구먼 ㅋㅋ
숲으로 난 낙엽진 나무들 사이 길로 등산 시작.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햇살이 더 밝아 낙엽이 더 반짝인다. 너무 좋아 +_+ 완전 혼자 피크닉 온 분위기이다. 샌드위치라도 싸와서 처묵처묵할 껄. 괜히 아쉽네. 원래 공기 좋은데서는 먹어줘야 제맛인데. ㅋㅋㅋㅋㅋ
한참을 정신 팔려서 걷다보니 안내판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Capri 호수, 왼쪽으로 가면 전망대이다. 그렇다면, 그 산지기 아저씨가 침이 튀도록 칭찬한 호수부터 가줘야지! ㅎㅎ
가는 길에 보이는 절경들. 이 곳은 이렇게나 알록달록한 나무들인데, 건너편 저 쪽은 녹지 않은 눈들이 가득하다.
호수 가는 근처에 야영장이 있었다. 이렇게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 동행 한명이 있었더라면 나도 시도해봤을텐데, 도저히 혼자서는 산에다가 텐트치고 버틸 자신이 없다. 한국에 가면 야영을 해봐야 겠네 라며 다짐!
그리고 나타난 호수.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그 주변의 풍경도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단 말이야? 난 정말 내 인생 최고의 호사를 누리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맑은 물은 처음이다. 물에서 청명한 하프음이라도 들리며, 물의 님프 리리오페라도 튀어 나올 것만 같은 호수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운이 좋게, 한동안 나만 그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잠시 뒤에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나와 똑같이 감탄에 어려 탄성을 내지른다. 사진을 찍고 정신이 없다. 에스빠뇰을 사용하는 여자애 둘이는 화보 촬영 온 것 마냥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한다. 아주 신나셨구만. 그런데 갑자기 담배를 꺼내서 피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저것들이!!!!!!!!!!!!!!! 이런 자연 경관을 보면서도, 그리고 그렇게나 엘 찰뗀을 아끼는 산지기 아저씨의 교육을 듣고도 저런단 말야? 어이가 없어서, 에스빠뇰로 여기서 담배피지마 는 도대체 뭐라고 해야 될까 고민하면서 일어서는 순간, 그 뒤에 도착한 부부 일행이 그녀들에게 담배를 당장 끄라고 이야기한다. 얏호! 통쾌해라.
민망해진 그녀들이 담배를 끄는 것을 고소해하며 보는데, 혼자 디에셀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내가 측은한지 다가와서는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한다. 올~ 심성은 착한가봐? ㅎㅎㅎ 하지만,,, 여태 외국인들의 사진실력에 많이 당해봤다 시피,,,
사진은 요모양으로...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그렇게나 뒤로 그만 가고 앞으로 와서 날 크게 찍어달라고 이야기했는데도.... ㅋㅋㅋㅋㅋㅋㅋ 아마 내 얼굴상태가 좋지 않아서 얼굴이 보이지 않게 찍어 주려는 그녀의 배려였나보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찍어줘서 너무 감사했다. 히히
너무 예뻐서 떠날 수가 없는 호수, 라구나 카프리.
마지막 걸어 돌아가면서 까지 호수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에 한 컷.
이번에는 반대편에 있는 핏츠로이를 볼 수 있는 전망대.
핏츠로이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황홀함에 빠져 여기서 또 멍 떄리며 한 없이 바라본다. 햇살이 강하여 선글라스는 필수!
뭐가 그렇게 말이 안되는지,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소리가 저절로 입밖으로 흘러 나온다. 그렇게 또 혼자 전망대에서 혼자 피츠로이를 구경하고 있는데 내 뒤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 봤더니, 커플 한 쌍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뒤에 서 있다. 그들도 핏츠로이의 전경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서로 이름도 국적도 모르지만 인사를 주고 받으며, 너무 멋있지 않냐며 대화를 시작한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여자가 사진기자의 포스를 풍기며 구도 좋은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내 꼴이 너무 흉해서 차마 올릴 수가 없다 ㅋㅋㅋㅋ)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피츠로이를 구경한다. 음식 냄새에 살짝 허기가 졌지만, 이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지. 아무말 하지 않고 따뜻한 햇살 아래 핏츠로이를 감상했다.
이 두 곳 외에는 어딜 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산에 있었다. 추위와 허기에 사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산에 있다가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식사를 하고 싶은데 도통 문을 연 레스토랑이 없다. 연 곳이 3군데 정도가 있는데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민을 하다가 그냥 버스터미널 가장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흑인 아주머니가 혼자 음식재료를 다듬으시다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안내하신다.
아기자기한 음식점 내부. 관광지의 음식점 분위기를 풍기는 엽서들.
메뉴는 딱히 맛있어 보이는 것이 없어서 맥주와 마르게리따 피자. 그렇게 맛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배가 고파서였는지 잘 들어갔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버스 출발 시간 전까지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구경했다. 두번 다시 없을 피츠로이의 구경도 좋았지만, 난 사람 사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버스터미널에 앉아 있는데, 자기 키만한 배낭을 짊어진 동양인 남자가 들어온다. 생긴 걸 보니 백퍼센트 한국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배낭 뒤에 태극기가 붙어 있다.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빈 벤치에 앉아 배낭을 풀더니 과자를 꺼내서 먹기 시작한다. 말을 걸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혼자 있으면 뭐하나 싶어서 한국에서 왔냐며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남자가 순간 날 이상하게 쳐다보더니, 이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시작된 여행이야기 들어보기. 아직 학생인데 남미를 혼자 여행중이라고 했다. 지금은 피츠로이에서 어제 야영을 하고 내려 오는 길이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다 고만고만 비슷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 모인 대한민국이지만 가끔 이렇게 별종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별종들을 만나면 신선한 자극이 된다. 보아하니, 같은 버스를 탄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같이 수다를 떨었다.
다시 휴게소 역할을 하고 있는 Leona에 들렀다.( 이 사진을 보니 이제서야 정체가 기억이 난다! 호텔 레오나, 호텔이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 해가졌다. 여행와서 간만에 달을 보았다. 혼자 또 낭만에 빠진다. 깔라파떼에는 10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을 했다. 적막에 빠진 깔라파떼, 그곳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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