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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esta/2012 SA

[남미여행_2012/04/25-26] 24.28시간의 버스 여행, 남미라서 가능하지~

by 여름햇살 201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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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바릴로체로 향하는 버스를 탔기에, 사진도, 할 이야기도 많이 없어서 2일간의 이야기를 한 포스팅에! :)




깔라파떼에서 바릴로체로 떠나는 버스는 오후 4시에 출발한다. 그 핑계 삼아서 체크아웃 시간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려고 했다. 계획은 그러려고 했는데... 이놈의 불면증, 또 아침 일찍 눈이 번쩍 떠진다. 당장에 내일부터 술을 마셔야 될 것 같다. 잠에서 일찍 깨긴 했지만 침대에서는 벗어나지 않았다. 맥북에 담아온 미드를 보고, 어제 찍은 피츠로이 사진을 옮겨 담았다. 원래도 꼬박꼬박 사진을 잘 옮겨 담기도 했는데, 똑딱이를 도둑 맞은 이후로는 더 철저하게 옮겨담기 시작한다. 카메라보다 소중한 나의 사진들. ㅜㅜ


일찍 돌아다닐 필요도, 계획 한 것도 없어서 맥북을 들고 식당에 가서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인터넷을 하고,(깔라파떼 호스텔에서는 객실에서는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았다.) 론니플래닛과 백배즐기기를 보며 바릴로체의 일정을 잡았다. 여태 바쁜 일정으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업무(?)들을 하려니 은근 할 거리가 많았다. 열한시 쯤 체크 아웃을 했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내가 예약한 버스회사의 사무실에 짐을 맡길 계획이었다. 이미 맡겨둔 여행자들의 짐으로 한가득이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마트에가서 장을 보고, 깔라파떼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첫 날의 호수로 가기로 했다.



하루 사이에 풍경이 달라졌을리 만무하건만, 오늘 떠나려고 보니 낙엽도, 길가도 더 예뻐 보이기만한다. 




아기자기한 동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반년만 살고 싶다.




맥주를 파는 곳이라 cereveceria, 빵을 파는 곳이라 panaderia. 무엇을 파는 가게는 해당 이름 말미에 -ia가 붙는다. 그래서 서점은 liberia. 스페인어를 배워서 여행을 오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웠다. 이것이 바로 산 교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네가 참 깔끔하다. 이런 곳 너무 좋아 :) 그저 마을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큼해진다. 영혼이 치유되는 기분이야. 



원래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먹지 않는데, 어제 만난 한국 남자가 이걸 먹고 있어서 사게 됐다. 한국에서도 잘 먹지 않는 오레오. 아르헨티나의 오레오는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이걸 먹고 있었지 하는 생각에 마트에서 장을 볼때 이걸 하나 골랐는데... 아놔, 그냥 한국에서 먹던 오레오다. 하긴, 오레오가 오레오지 뭐가 별 다른 것이 있겠어. 목이 막혀 물만 들이켰다. 



호수에도 구름이 떴다.







백조 인지 오리 인지 종자를 알 수 없는 놈이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생긴 것도 귀여운데 하는 짓도 귀엽다. 꽁무니를 하늘로 치켜 세우며 물 밑으로 잠수를 한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




햇빛에 호수가 반짝인다. 산지기 아저씨가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지만, 피츠로이의 절경만큼이나 황홀하다. 굳이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깔라파떼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소한 것 하나에도 감명을 받는다. 그만큼 한국에서 내 삶은 삭막했던 걸까? 생각이 많아진다. 한 참 보석같이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강아지가 호수에 뛰어든다. 너도 호수가 예쁜가 보구나?


그리고는 다시 마을 중심부로 돌아왔다. 일기장을 다 써서(영수증을 붙이며 가계부로도 사용하고 있는 중이라 빨리 썼다) 근처 문구점에서 노트와 연필깎이를 하나 샀다. 이렇게 학교 하나 없는 곳에서, 휴대용 연필깎이를 팔다니. 이런 것도 너무 재미있다. 짐을 찾고 버스를 타려고 보니 버스터미널 이용료를 내야 버스에 탈 수 있단다. 아놔, 정말 ㅋㅋㅋ 돈내라는 것도 많네.


버스에는 나를 포함하여 그 넓은 버스 2층에 5명이 탔다. 스위스에서 온 커플 2명과, 일본인 남자, 아르헨티나 아저씨, 그리고 나. 말동무를 할 상대가 없어서 바릴로체에 도착할때까지 혼자 놀이를 해야했다. 괜찮아 그래도 나에겐 미드와 책이 있으니깐 :)





버스를 타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는 노을이 졌다. 커튼을 치거나 눈을 감지 않는 이상 강제적인 노을 감상 시간이 주어졌다. 너무 좋았다. 굳이 노력 하지 않더라도 해가 지평선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뜬금없이 43번이나 석양을 바라보았다는 어린왕자가 생각이 났다.





버스는 한참을 달리다가 리요라는 곳에 정차했다. 버스를 갈아 타야 된단다. 목이 말라서 생수를 사려고 버스 터미널의 가게에 들어갔다. 500ml 물이 무려 9페소나 한다. 5페소 두개를 내밀었더니, 뭐라뭐라 한다. 알아 듣는 단어는 꽈뜨로밖에 없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릴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번뜩 생각이 났다. 웃으면서 5페소 하나와 2페소 2개를 내미니 점원 아가씨가 웃으면서 그라시아스라고 대답을 한다. 아놔, ㅋㅋ 물 한잔도 그냥 마시는 법이 없구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짐꾼 소년이 나에게 걸어와 두 손을 합장하고 사요나라 라고 한다. 관심없는 모습을 보이니 이번엔 아리가또 라고 한다. 요놈 봐라~ 오른손 검지를 들고 좌우로 까딱이며 그건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안녕하세요 라고 이야길 했다. 귀를 기울인다. 다시 한번 또박또박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그제서야 안녕하세요를 힘겹게 발음한다. 그리고는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일본남자에게 가서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모르게 그의 순수함에 진심으로 웃음이 빵터진다.


일본남자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코리아노 라고 말한다. 그러자 남자가 사요나라는 이라고 물어본다. 그러자 남자가 하뽄! 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직원 남자가 아리가또는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다. 일본남자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그라시아스라고 말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가 다시 나에게 걸어 오더니 스페인어로 뭐라고 말을 한다.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웃는다. 아, 너무 빨라 알아 듣지 못했는데, 못 알아 들었다는 표정을 짓자 또 뭐라고 하는데, 또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뭔소린가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시덥잖은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신경쓰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한 번 말을 한다. 너와 나 아모르를 알아 듣는다. 아~ 그 세단어 만으로도 뉘앙스를 알아챘다. 노 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더니 주위 사람들이 또 다시 웃는다.








버스를 갈아 타고 나온 저녁. 아르헨티나는 저녁을 늦게 먹는다더니, 버스에서 주는 저녁도 확시히 늦다. 버스를 갈아 탈떄, 터미널에서 실은 음식이라 따뜻하긴 한데 맛은 정말 없다. 깔라파떼에서 사온 과일로 적당히 때운다. 깜깜해진 창밖에는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바릴로체로 향하는 버스에서 하루가 끝난다.


이번 여행을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오직 현재를 살아가는 삶을 느낀다. 오늘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오늘 어디서 무엇을 볼까, 오늘 어디서 하룻 밤을 보낼까, 오직 이 3가지에만 집중을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려 노력하고, 현재에 충실하다. 왜 일상에서는 이 단순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꼭 여행을 와서야 느낄 수 있는 걸까? 


여행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도 해 본다. 여행에 목적이란게 꼭 필요한 걸까? 사실 난 이번 여행의 목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 여행은 무의미 한 것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뭘 이렇게나 많이 줬는지 알 수가 없다. 지루함이라도 달래라고 이렇게 먹는 걸 많이 준 걸까? 버스안에서는 연금술사를 읽다가 멀미가 나면 미드를 보다가를 반복했다.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적이 있었음에도 연금술사는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고, 이번 여행의 컨셉(?)에도 맞는 책이었다. 굿 초이스! 아껴서 읽던 책이 이번 장기 버스 여행으로 인해 마지막 페이지까지 오고야 말았다. 맥북도 배터리가 다 나가서 더 이상 볼거리가 없어졌다. 때 마침 휴게소에 들른다.



대화중인 아르헨티나 아저씨와 스위스 남자. 아르헨티나 아저씨는 혼자 남미를 여행중이라고 했다. 매번 나를 챙겨주는 마음씨 착한 아저씨였다.



버스가 정차하고, 운전기사들이 휴게소 역할을 하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다. 승객들은 화장실만 이용하고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하긴, 버스에서 꼼짝달싹 하지 못해 소화도 안되는데 상황에, 끊임 없이 먹을 것을 주는데 누가 배가 고프겠는가. ㅋㅋ 퉁퉁 부어버린 몸을 가라 앉히기 위해 나도 빨빨거리며 산책을 다녔다.



이건 설마 총알? 아직도 미스테리인 구멍이다.



맥북의 배터리도 나가고, 책도 다 읽은 상황에서 차안의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아이폰으로 열심히 셀카를 찍었다. 아이폰은 참, 전면부 카메라의 화질이 구리다. ㅠ_ㅠ 이게 뭐야.



달리고 달려도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창밖의 풍경이 지겹지 않다. 그동안 빡센 일정으로 달려 왔던걸 이번 버스 여행으로 쉬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비행기를 택하지 않고, 버스를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끝내줬다. 이런 날씨에 버스에 있어야 하다니 좀이 쑤신다. 그래도 창을 통과하는 햇살을 자장가 삼아, 덜그럭 거리는 버스좌석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참 좋았다. 바릴로체에는 밤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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