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행] 3. 대망의 출발일, 칼바람의 시애틀

2019.12.23

 

나도 신랑도 금요일이었던 20일까지 모든 업무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20일 금요일 저녁에 피자파티를 하고 토요일에는 아버님 생신으로 배 찢어지게 해물탕과 해물찜을 먹고 일요일에는 밀린(?) 일정을 급하게 짰다. 라스베이거스 투어, 쇼와 유니버설 입장권 등등.. 미루어두었던 모든 것을 결제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빚을 쌓으며 보냈다. 다음날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찌나 좋던지. 사장님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오후 비행기라 아침을 느긋이 먹고 마트에 가서 라면과 즉석밥, 3분 카레 같은 것을 샀다. 또 뭐 없을까 하고 둘러보다가 카누와 옥수수수염차 티백을 구매했다. 해외에 나가면 생수 아니면 차(주로 블랙티)의 선택지 밖에 없어서, 이 옥수수수염차의 선택은 매우 훌륭했다! 그리고 또 뭐가 빠진 게 없나 최종 점검(?) 하자며 다이소에 들렀는데.. 이때 샀던 물건들을 여행에서 가장 유용하게 썼다.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유용했던 것은 아래의 것들.

 

스테인리스 컵 - 와우 이거 끝판왕. 그 덕에 찜찜한 호텔의 컵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스테인리스 수저 - 일회용품을 쓰기 싫어서 이걸 사서 들고 다녔는데 너무 좋았다.

지퍼백 - 말해서 무엇하랴

삼선쓰레빠 - 호텔에서 슬리퍼를 제공하는 곳이 거의 없었기에 완벽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보조배터리 - 둘 다 보조배터리를 평생 내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이번 여행에서 보조배터리의 위엄을 맛보았다. 껄껄

섬유탈취제 - 만세!

 

마지막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최종적으로 짐을 쌌고.. 빈 캐리어로 가서 물건을 가득 채워온다는 미국 여행에서 둘 다 이미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없을 만큼 빵빵하게 만든 캐리어를 짊어지고 인천공항행 리무진에 올랐다. 우리가 예약한 델타항공은 인천공항 2 터미널을 사용하는 항공사였고, 여유롭게 보안검사와 출국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인천공항 2 터미널 만세!!!!

언제 봐도 여유로운 이 곳! 껄껄껄. 탑승동으로 넘어오자마자 라운지로 달려갔다. 마지막 한식(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을 먹기 위해서. 국민은행 베브 5를 쓰는데 요것은 PP카드 대신 Lounge Key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나는 1년에 6번까지(동반자 방문 횟수 포함) 무료로 라운지를 사용할 수 있어서 무료로 사용했다. 신랑은 지난번 발리 때에도 PP 카드 제공되는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더니 이번에도 깜빡했...

연말인데도 여유로운 라운지. 우리는 너무 일찍 도착해서 라운지에서만 2시간 넘게 대기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먹었는데, 지난번에 있었던 떡볶이와 함께 먹을 튀김! 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웠다는 것이지 안 먹었다는 것은 아니다. 신랑이 우리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거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엄청 처먹고 왔.... ㅡ,.ㅡ 점심을 못 먹고 와서 이런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처음 타본 델타항공은 엄청 좋았다! 일단 비행기가 정말 새것이었고, 이코노미석임에도 불구하고 좌석의 앞뒤 간격이 넓은 편이었다. 그리고 놀라왔던 스크린. 그 엄청 구린 항공기의 스크린이 아니었다. 

저 멀리 남이 보고 있는 화면도 내 것의 화면과 같은 퀄리티로 보이는 놀라운 델타 항공의 스크린...!! 그런데 영화에 한국어 자막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빙이라.. ㅜㅜ 그냥 영어로 듣는 것이 더 나았다. 보고 싶었는데 못 봤던 증인이랑, 이미 봤기에 스토리에 큰 문제가 없는 애니메이션 위주로 보면서 기내의 지루한 시간을 버텼다.

슬리퍼, 담요, 쿠션에 이어 일회용 클렌징 타월에 귀마개까지....? 델타 항공은 매우 섬세하구나. 이 정도 서비스면 비행기 가격이 꽤 비쌀 텐데, 암만 생각해도 우리는 정말 싸게 잘 예매했다! 럭키 한 신혼여행이여~~ :-D

델타는 물도 에비앙을 주는 것입니까..??? 후덜덜.

깔끔한 메뉴판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나저나 웰컴 칵테일에서 '델타'가 '타'로 인쇄된 오타가 거슬렸다. ㅡ,.ㅡ 이렇게 나는 아직도 과거 회사 시절의 업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맨날 뭐 틀린 거 없나 모니터링하던 것이 일이었던지라 잘한 것보단 실수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 못된 습성..ㅜㅜㅋㅋ

첨 마셔보는 복숭아 벨리니~ 생각보다 알코올이 강하게 느껴졌지만 맛있었다. 뭐 내 입에 맛이 없는 게 존재하진 않는다만..

델타 항공 내에서는 요렇게 와이파이가 잡혔다. 뭐지?! 하고 신나서 사파리를 열어보았지만, 무료 와이파이에서는(돈을 내고 상위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기내 제공 영화 등등(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내용과 동일한데 내 핸드폰으로 볼 수 있음) 및 항공 상태, 페이스북 메신저로 채팅 정도만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카카오톡이 되었다. 오우 신기해) 

기내식은 비건 메뉴를 골랐는데, 토마토 파스타로 꽤 맛있었다. 날 따라 했던 신랑은 맛이 없다고 투덜거렸지만.. ㅋㅋㅋ 샐러드로 고른 후무스 딥은 좀 별로였다.

그리고 미쿡 항공사라서 그런지 커피는 스타벅스. 평창 올림픽대 스벅 이사의 경솔한 발언 이후로 스타벅스를 내 의지로 가지는 않는데(기프티콘이나 기프트카드를 받은 경우만 간다), 이렇게 스타벅스 커피를 선택권 없이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꽤 맛있다. 엄~청 진하긴 한데 내 기준에는 맛이 괜찮았다. 신랑은 너무 진해서 거의 마시지를 못했지만. 역시 나는 진해야 맛있다고 느끼는 심각한 카페인 중독자이구나..

아침메뉴로 나온 과일 샐러드와 샌드위치. 이렇게 10시간 정도 같은 좌석에 앉아 꾸역꾸역 사육을 당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먹는 거 좋아하고 빈둥거리는 거 좋아하는 나지만, 공기 갑갑하고 좌석 좁은 기내에서의 사육은 사양이다. ㅠㅠ

샌드위치 먹을 때 커피를 다시 요청했더니, 승무원 아찌가(한국말을 잘 하긴 하셨지만 발음으로 들어보건대 이민자나 교포? 가 아닐까 싶었다) 깜짝 놀라며 커피가 맛있냐고 물으셨다. 네? 맛이 괜찮던데요? 긁적긁적.. 했더니 보통은 커피가 너무 찐해서 한 잔 더 요청하는 경우는 잘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나중에 혼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커피 더 달라는 소리가 듣기 귀찮아서 두 번 다시 커피를 요청하지 못하게 매우 강하게 타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ㅋㅋㅋㅋ.. 삐뚤어진 심성) 그래서 진하긴 했는데 전 진한 것을 좋아해요!라고 했더니 아저씨의 레인을 모두 서브하신 뒤에 우리 자리에 다시 와서 커피를 선물로 주고 가셨다. 아니..! 기내에서 승무원에게 선물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야무지게 챙겨놓고 여행 중에 마셨다. ㅋㅋ)  주소지로 보건대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에서 로스팅된 것인 듯..?

간식으로 주는 요놈까지도 맛있었다... 델타 만세.

 

지긋지긋한 비행 후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 도착했다. 유심이 없었기에 우리는 Link Rail을 타고 시내로 이동하기로 했고(편도 3불), 기차역에 내려서 우리가 예약한 힐튼 호텔까지는 5분이면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시애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는데.. 진짜 말도 안 되게 추웠다. 이럴 거면 그냥 한국에서 롱패딩을 가지고 올걸 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은 여행 내내.. 심지어 여행한 도시 중 가장 따뜻한 LA에서도 그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아아....... 경솔한 나의 잘못이겠거니..

University Street Station에서 내리면 됨. 다행히 체크인 시간 전이었는데도 체크인이 가능했고, 신랑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뻗어 잤고, 나도 샤워를 한 뒤에 뻗어 잤다. 우리가 시애틀에서 1박을 예약한 이유는 이렇게 23일 오전에 도착해서 23일 오전 및 24일 반나절,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돌아오는 5일에 하루 종일 시간이 가능하기에, 처음 도착 시에 1박만 예약을 했었다. 그런데 너무나 힘든 비행 때문에 이날 호텔에서 잠들어서 저녁 7시가 넘어 일어났다. 그럼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 완전 몽롱...@_@ 

 

자고 일어났더니 배도 고프지만 목이 너무 말랐는데, 호텔에 비치된 생수들은 한 병에 오천원 ㅎ ㄷ ㄷ이라서 밖에 나가서 생수도 사고 저녁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다운타운이라 그런 것인지, 연휴 직전이라 그런 것인지 가게의 문은 죄다 닫혀 있었고..ㅜㅜ 바닷가 근처에 테이크 아웃하는 곳인데 9시까지인가 오픈한다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여행책에서 봤기에 그곳에서 뭐라도 사 오기로 했다. 

그 와중에 찍은 사진들. 밤이라서 빛이 번진다. 이거 때문에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온다고 궁시렁 거렸더니, 무려 아이폰 11 프로를 두 달 전에 구매하신 신랑님은 으스대며 빛 번짐이 뭐냐며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ㅠㅠ 그대로 애플 매장 달려가서 아이폰 프로 살뻔했다.

아주 안정적으로 나오는 아이폰 프로의 사진. 흐어어어엉~~ 올해 4월이면 아이폰 X를 만 2년 사용하게 된 것인데.. 고럼 바꿔볼까 싶다가도 이거 살 때 10년은 더 써야지(?)라는 마음으로 샀으니 그냥 욕망을 누르기로 했다. 아니 그나저나 아이폰 프로 카메라 너무너무 좋은 것 아니냐고 힝.

간신히 구해온 굴튀김(저래뵈도 2만원.. ㅎㄷㄷ 미친 미국의 물가)과 시애틀 도착하자마자 먹게 될 줄 몰랐던 한쿡의 라면. 두 개 같이 먹었더니 어찌나 맛있던지.. 시애틀 도착하면 바로 맛난 거 먹자~라고 했던 우리는 이렇게 조촐한 첫 식사를 마쳤고.. 먹방 후 다시 딥슬립에 빠졌다. 먹었으니 다시 밖에 나가서 야경을 즐기고 올 법도 한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두 번 다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가을용 바람막이가 소지한 옷 중 가장 두꺼운 나에게는 이 날의 바람은 이 여행의 고난의 서막에 불과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