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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책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by 여름햇살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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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국내도서
저자 :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 김정훈역
출판 : 쌤앤파커스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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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물리학에 심취(?)했던 때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던 내게 이론만으로도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게 만드는 물리학이 참 매력적이었다. 중학생 때 서점에서 우연히 고른 상대성이론 책(책 제목이 '청소년을 위한 상대성이론'이었다)을 읽고 받은 그 큰 충격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던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에도 과학 선택과목을 물리로 했었고, 복잡한 그림 없이 간단한 계산식으로 힘의 원리가 이해되는 것을 신기해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딱히 재능은 없었던 것 같아서, 마지막 진로 선택에서 기계공학에서 한약학으로 진학을 정한 것은 나의 인생을 위한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지만 짝사랑(?)은 지속되어 아주 가끔씩 교양서로 나온 책들을 보곤 하는데, 그러다가 요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고(글도 좋고 번역도 매우 잘된 듯하다) 마지막에 감동마저 얻었으니,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이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의 감동이랄까?

 

 책은 기원전부터 시작된 물리학(그때는 철학에 가깝겠지만)부터 현대최신 물리학인 양자중력 이론에까지 아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원전 물리학과 현대의 물리학의 갭은 엄청 크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다. 모든 것은 유한한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나중에 양자역학의 양자로 이어지는데, 다시 양자중력으로 넘어가면서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다. 시간이란 것은 절대적이고 존재하는 것이 아닌(이 부분은 상대성이론으로도 설명되지만), 양자의 변화를 나타내는 변수로써 관찰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관찰하는 한 이 세계는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향하는 시간이라는 놈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를로 로벨리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물리학의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뿅 하고 사고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소름 돋는 현대 과학)

 

 하지만 카를로 로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이 사라지고 양자장만이 남은 세계는 아니다. 양자학에서 나(관찰자)로 인해 변화하는 세상을 확인했고, 그것을 정보(bit)라는 것과 연관시켜 논리를 이어간다. 그래서 그의 표현에 따르면 "양자역학에서 우리가 어떤 물리계와 상호작용 할 때에는 우리가, 무언가를 얻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동일한 물리계에 관한 관련 정보의 일부분을 '삭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즉, 유한한 개수로 존재하는 정보를 절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관관계만을 기술할 수 있으며, 결국 우리와 세계는 '앎', 즉 '복합적인 매듭'으로서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글 말미에 그는 플라톤의 <파이돈>에 기재된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한다 "나는 확신하지 않는다." 

 

우리의 무지에 대한 이런 날카로운 의식이 과학적 사고의 핵심입니다. 우리 지식의 한계에 대한 바로 이러한 의식 덕분에 우리가 세계에 관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P254)

 

 즉 저자는 기원전부터 최신의 물리학까지 과학적으로 물리학의 발달사를 설명한 뒤(그것은 마치 세계를 정확히 설명하고 묘사하는 듯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른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렇기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에 대한 의식이 "과학에 특별한 신뢰성을 부여"하며 "우리 지식의 실직적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지가 가득한, 따라서 신비가 가득한 삶을 받아들인다" 고 이야기한다. 

 

 무지하기에 "더 멀리 보려고 더 멀리 가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고 하는 카를로 로벨리가 보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알면 알수록 거만해지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깊이 있는 공부를 통해 그가 얻어낸 것은 우리가 아직 이 세계에 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그 앎을 추구하는 삶이기에 우리의 삶이 아름답다고 말을 한다. 

 

 살다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을 속단하며 살아간다. 한평생을 살아도 자신에 대해서 모르면서, 하루 이틀 혹은 1년 2년 본 상대방에 대해서 너무나도 쉽게 속단한다. 그 사람은 이렇고 이런 사람이야, 내가 다 알아. 아마도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일수록 사람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과거를 떠 올려봐도 젊었을 적의 나는 상대방을 그리고 세상을 너무나도 단정 지으며 살았다. 삶의 경험치도 적었고, 그만큼 무식했다. 이 재미있는 물리학 이야기를 읽으며 나를 반성해본다. 과거의 나라고 칭했지만 여전히 나는 경험치가 적고 그래서 그만큼 무지의 상태이다. 고로 조금이나마 이 세계를 파악해보고자 오늘도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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