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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2014 Korea

나홀로 서울 여행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by 여름햇살 2014.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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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기 직전인 나. 남은 시간동안 악착같이 공부를 해둬야 호주가서 헤매지 않을텐데, 자꾸 책은 눈에 들어오질 않고 머리에 온통 서울의 어디를 가볼까 라는 생각뿐이다. 이날도 매일 출근 도장 찍는 스타벅스에가서 Grammar in use를 깨작거리며 보다가, 2개의 Unit만 보고는 뛰쳐나왔다. 이 날의 즉흥 방문장소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에 위치해있다.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자마자 이렇게 안내판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9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는 2014년 가을 관광 주간을 맞이하여 관람료를 20%를 할인해주는 서비스릉 제공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9월 24일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래도 뭐 600원 정도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발전을 위하여..(아 통크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들어가면 첫번째 건물인 역사관과 함께 형무소 내부의 안내도를 볼 수 있다. 때마침 내가 방문 했었을때,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을 와서 조금은 정신 없이 역사관을 둘러 보았다. 이런 장소에 와서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치는 그들의 모습이 묘하게 씁쓸했다.




전시된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애국심이라고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라를 위하여 몸바친 선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감정이 격해졌다. 내가 태어나서 살아왔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나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무소의 모형.




일제강점기에는 독립투사들을, 독재정권 시대에는 민주화 운동가들을 투옥시켰던 서대문형무소. 사라져간 그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인데, 나라는 사람은 그 정도의 가치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라는 자기 반성이 들었다. 아니면 그러지는 못하더라도 종종 그들에 대한 감사함은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나는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이 정말 작게 느껴졌다.




전쟁이라는 것이 평화적일 수는 없겠지만, 왜 일본은 그토록 나의 조국을 짓밟고 싶었던 것일까?  베트남전에 한국 군인들이 참전했을때 그토록 잔인하게 굴었다고 하니, 전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만을 탓할수는 없을 것 같다. 전쟁이라는 잔혹함이 인간의 광기를 건드리는 것일까.




이렇게 실제 형무소에서 사용되었던 물품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방의 3면을 가득 채운 독립운동가의 수형기록표들. 그들의 얼굴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지하층에는 실제 일본인들이 독립운동가에게 가했던 고문의 종류들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보았던 것보다 조금 더 적나라게 표현되고 있어서 놀랬다. 섬뜻한 지하층.



이 것은 상자 내부에 못이 박혀 있는데, 독립운동가를 안에 가두고 나무 상자를 흔들어 못에 찔리도록 고안해낸 고문장치라고 한다.  




선열들의 옥중일기 발췌 내용. 내용을 읽으면 내 자신이 더 작아진다. 그분들이 지켜준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는 이대로 지내도 괜찮은 걸까?



이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밥을 퍼 주는 기구라고 한다. 이 곳 말고 다른 건물에서 상영되는 영상을 보았는데, 꽤 빠른 속도로 밥을 펄 수 있었다. 



그리고 뜻밖의 횡재, 보도사진전 역대수상작들의 사진들과 그 외에 전민조 기자의 사진, 그리고 그 외의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1회 사진전의 사진만 없이 모든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사의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는 사진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마주한 기분은 묘했다. 슬픈 사진들도 많았으며,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한 사진도 많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진. 한국과 호주간의 교류를 위한 자리인데, 순진하게 생긴 북한의 군사가 안에 무슨 일이 있나 들여다보는 순간이 찍힌 사진이었다. 우리가 빨갱이라고 욕하는 그들 중에는,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호기심이 발동해서 창문을 기웃기웃 거리는 청년도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된 감옥. 위에 있는 마네킨이 너무 진짜같아서 깜짝 놀랐다. 내가 겁이 많아서 그런지, 혼자 다니기는 조금 무서웠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잔디가 참 잘 가꾸어져있다. 그 역사와는 달리 외부 풍경이 너무 예뻐서 더 서글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각이 났다.




이 곳은 독립운동가들이 노역을 했던 곳으로, 전쟁물자를 만드는 일이 주류였다고 한다. 이 일과표를 보면서 잠시 불경한 생각을 가졌다. (하루에 16시간을 일한적 있었던 내 과거를 비교했다....) 




밥그릇으로 위가 독립운동가의, 아래가 일본 간수들의 것이다. 찌그러지고 구멍난 밥그릇에서 다시 한 번 눈물이 났다. 



이 곳은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시켜 놓은 곳이다.






애국선열의 혼을 기리는 예술 작품으로 저 동그란 조형물 안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사형장 앞의 미루나무.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들이 이 미루나무를 붙들고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을 통곡하였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웠다고 한다.




이 것 역시 미루나무인데 사형장 밖의 미루나무와 같은 시기에 심어진 것인데, 크기가 더 작다. 애국지사들의 한이 어려 크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사형장으로 내부는 출입금지였다. 창문으로 내부를 조금씩 엿 볼수는 있었는데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 곳은 죽은 독립운동가들의 시체를 몰래 빼돌리기 위한 통로였다고 한다. 고문을 받았다는 증거가 너무 명확히 드러나는 시체들을 숨기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하늘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격벽장. 수감자들이 운동을 할때 서로 대화하는 것을 금지 시키기 위해 벽을 쌓아 두었다고 한다. 원래 없어졌다가, 다시 재건된 건물.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사진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좁다. 무슨 운동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말이다.



아우슈비츠때도 그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푸른잔디와 붉은 벽돌의 조화는 시각적으로 참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여옥사.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건물이다. 그 시대에 여성으로서 나서기 쉽지 않았을텐데.. 우리 조국은 대단한 사람들이 지켜내고 만들어온 국가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이렇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관림이 끝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하고 핸드폰의 시계를 보는데 깜짝 놀랬다. 무려 3시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보지 않은 내가 3시간이 걸린 것으로보아, 상당한 컨텐츠를 지니고 있는 역사관임이 틀림없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에는 공원이 있다. 안내판이 있길래 읽어 보았더니 치매 예방의 관련된 안내문이다. 가장 놀란 것은 그 어떤 활동보다 매일 3km 이상 걷는 것이 치매예방에 가장 큰 효과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종일 무언가를 다짐하게 만든다.




현충사가 여기에 있다는 것 또한 이날 알게 되었다. 이런 시낭송 이벤트들은 초등학교때 참 많이 했던 것 같은데.



3.1 독립선언 기념탑.



독립문. 이 외에 좀 더 구경할 것이 있다는 것을 서대문형무소홈페이지(http://www.sscmc.or.kr/newhistory/index_culture.asp)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약속시간 때문에 더 구경하지는 못했다. 참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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