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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의 이력부터 나를 놀라게 했다. 아이슬란드를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한 작가가 평범한 50대 아줌마였다는 점도(우리 엄마는 과연 해내실 수 있을까?), 물가 비싼 아이슬란드레 넉넉하지 않은 돈을 가지고 여행했다는 것도, 그리고 돈을 아끼기 위해서 줄곧 캠핑장에서 숙박을 해결했다는 점도 말이다. 그 디테일한 어려움(?)들은 여행기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녹아 있는데, 그녀의 지독히도 솔직한 그 마음을 표현한 글들이 좋았다.
나도 내 인생의 첫 배낭여행인 유럽여행을 진짜 어렵게 했다. 대학교 3학년부터 과외를 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탕진잼에 맞들린 소비지상주의였기에 버는 족족 써대고 있었고, 4학년 1학기 여름방학이 되었을때에 모은 돈이 거의 없었다. 그 당시 100만원 정도 하던 캐논 450d를 구매하고 나니 정확히 인천에서 런던으로 가는 '편도'티켓 가격만큼만 수중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가불을 받아 여행을 했었다. 부모님은 내가 요청했던 300만원보다 더 많은 금액으로 400만원 정도를 선뜻 내주셨지만 나는 기쁘지만은 않았다. 내 힘으로 온전히 돈을 모아 가고 싶었던 여행이었기에, 나는 최대한 돈을 아껴서 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주셨던 금액보다 150만원도 더 남겨서 돌아왔으며, 아빠는 그런 날 보며 밥은 먹고 돌아다닌거냐고 물어보셨다. (2009년 여름 당시 유로화는 1800원과 1900원을 오가며 사상 최고의 환율을 찍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내가 번 돈으로 여행을 갔기에 쓰고 싶은 만큼 쓰는 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때 개고생하며 돌아다녔던 유럽여행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작가의 여행기를 읽으며,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갔다. 아주 생생하게. 1유로에도 벌벌떨며, 여행 내내 돈을 쓸 때마다 잔액을 생각했던 그 때.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내가 50이 되어도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는게 아니라 하기 싫을 뿐이라고, 이루기 어려운 일이면 노력과 정성을 들이면 되는데 그게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런 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으로는 이 책의 작가보다 내가 더 늙은기분에 착찹한 심정도 든다. 그래서 나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 않고 방안에서 그녀의 모험담으로 대리만족을 삼았던 것이리라.
작가는 스스로를 평생 실패만 하고 살아왔다고는 표현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결혼에 실패했다고 말을 했지만 그 말인 즉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육아에도 실패했다고 하지만 그 말인즉 아이를 낳는데 성공해봐야 가능한 일이다. 번번히 자신의 책을 내는데에 실패했다고 했지만 그 말인즉 자신이 쓰고자 하는 책을 완결짓기까지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인생의 여러 실패를 겪었지만 50이 되어서도 혼자 히치하이킹으로 아이슬란드를 용감하게 여행하는 용기가 남아있는 삶을 살다니! 어느 누가 그럴 수 있을까. 그녀의 삶은 실패로만 점철되어 있지 않았다. 그 속에 많은 성공도 가득 차 있었다. 멋있는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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