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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책 날마다 새날

by 여름햇살 2018.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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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날
국내도서
저자 : 법륜(Ven.Pomnyun)
출판 : 정토출판사 201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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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즉문즉설로 법륜스님을 처음 알게 된 이후 그 분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정토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거나 불교신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불교에 조금 더 관심이 가게 되었다. ('종교'라는 단어만 들어도 질색팔색하던 나였으니, 법륜스님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그래서 도서관에 방문할때마다 법륜스님이 쓰신 책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살펴보게 된다. 여태까지 읽은 책은 삶의 시시콜콜한 문제들에 대해 통찰력을 안겨다주는 책들만 골라왔는데, 이번에는 불교 그 자체에 대한 책을 읽고 싶었다. 처음 고른 책은 너무 두꺼워서 머뭇거리다 다시 서가에 꽂아 놓았고, 좀 얇은 책으로 고르다가 발견한 것이 이 책이었다. 불교 명절에 담긴 수행 이야기. 불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책이 얇아서 완독했다는 성취감도 가질 수 있으니 꿩먹고 알먹고 가 아닌가.


정초, 입춘, 부처님 오신 날, 출가일, 성도일, 열반일, 백중, 동지로 챕터가 나누어져 있고, 그때 기도를 드리는 이유, 혹은 부처님이 하셨던 행동이나 말씀들에 의미를 법륜스님이 해석해주시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법륜스님의 모든 책이 그렇듯이, 이 책도 이러쿵 저러쿵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를 호되게 꾸짖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당연하다, 조금씩 노력해가면 된다 라고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 준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나 또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앞으로 밀어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법륜 스님의 말씀이건 글이건 모두 다 좋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은 존재하는 방식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더러운 곳에 있으면 더러움에 물드는 존재, 중생입니다. 두 번째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 더러움을 떠나는 존재, 출가사문입니다. 세 번째는 더러운 가운데 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존재, 보살입니다. 네 번째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더러움을 오히려 깨끗이 하는 존재, 부처입니다.


이 구절을 보고 웃음이 났다. 우리는 모두 첫 번째 존재에 가까운데 타인에게 하는 짓은 꼭 자신이 부처인 것마냥 자기가 맞다고 가르치려 들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으로써가 아니라 우리는 항상 자신이 살아온 삶을 근거로 상대방을 그리고 모든 일들을 판단내린다. 그 각자의 삶이 옳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우리는 매순간 확신을 하며 살아간다. 확신인 걸까 아니면 확신하고 싶은 걸까. 애매모호한 영역이다.


등불은 어두울 수록 빛이 납니다. 밝을 때에는 밝혀봐야 표도 안 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수록 보살은 빛이 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이 이렇게 혼탁하고 어지러운데 나 혼자 잘하면 뭐하나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할수록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더 빛이 나게 됩니다.


연등을 밝히는 보살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과 같습니다. 그러니 자꾸 세상 탓 하지 말고, 세상이 혼탁할수록 더욱 귀한 존재가 되십시오. 세상이 어둡다고 말하지 마세요. 내가 등불이 되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이 어두울수록 나의 등불은 더욱 더 빛이 납니다.


스터디에서 내가 토픽을 정하고 질문을 만들 기회가 있었는데 첫번째 토픽으로 Zero waste로 정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유심히 살펴 보았는데, 5명 중 3명만이 환경보호에 관심이 있었고, 2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는데 왜 내가 그런 수고를 해야 하느냐 는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에 사실 나는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싫어하는 마음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그들의 삶을 이러쿵 저러쿵 할 자격은 없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신념대로 행동하고, 그 것이 그들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진실되게 행하는 것 뿐이었다. 등불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작은 촛불이라도 되기 위해 나 스스로의 행동이나 점검해야겠다.


부처님은 고락을 벗어난 세계를 말하는데 우리는 고와 낙 둘 중에 하나를 계속 얘기하는 거예요. 낙에 집착하는 것이 쾌락주의고 고에 집착하는 것이 고행주의고 고를 싫어하고 낙을 얻으려고 하는게 중생이에요. 하지만 중생이 추구하는 낙은 그 낙이 곧 고이므로 아무리 낙을 추구해도 고에서 절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리프레쉬 마인드에서 배웠던 깨달음 중 가장 컸던 것은 '행복과 슬픔은 짝꿍'이라는 것이었다. 왜냐면 둘다 '조건'에 근거하여 생산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을 내 귀로 듣기 전까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에서야 내가 행복하거나 즐거워할때, 그리고 슬프거나 화가 날때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자동완성기능마냥 조건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모르면 알 수 없지만, 한 번 알게 되니 매번 내 감정의 작동원리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회전목마로 변했다. 몰라서 그런것이지 알면 쉬운 것, 이 것이 '무지'로 생긴 고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뭐, 내가 뭘 알겠냐만은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 자신을 계속 관찰하는 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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