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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불친절한 감상자

책 김영하의 여행의 기술

by 여름햇살 2019.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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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바캉스 에디션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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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소설로밖에 접하지 못했다. 오직두사람이라는 단편소설집이 내가 접한 그의 첫 작품이었는데, 단편 소설중 옥수수와 나라는 작품을 읽고 이래서 상을 받고 유명하구나를 단박에 깨달았다. 작법등에는 무지랭이라 그가 어떤식으로 글을 쓰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의 철학은 참 매력이 있다. 그의 철학은 깊이가 있다. 아마도 많은 정보를 접하고(알쓸신잡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잡학다식하겠지), 스스로가 접한 지식으로부터 상상과 의문등의 고찰을 계속하며 쌓인 것들이 아닐까 싶다. 뇌가 섹시한 사람은 아마 김영하 작가가 아닐까.


최근 나온 신간 여행의 이유는 내가 접한 그의 첫 에세이다. 겸손한 어투, 그렇지만 절대 겸손할 필요 없는 사고는 매우 매력적이라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게 만들었다. 그가 겪은 여행 이야기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게 여행이란 뭘까 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3학년 수학여행으로 세부를 간 것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패키지 여행이었는데, 그 여행을 처음으로 나는 용감하게 4학년 여름방학때 혼자서 유럽으로 40일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홍콩을 경유하여 런던으로 향하는 나의 비행기는 연착이 되어 예상한 날짜보다 하루 늦게 런던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렇게 유럽땅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나의 여행 계획은 모두 일그러졌다. 처음 방문하는 낯선 땅이었지만, 나는 런던 이후로 숙소를 미리 예약해본 적이 없다. 유레일을 타고 다음 도시의 기차역에 도착하면, 여행책자에 기재된 호스텔의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가는 것이 나의 유럽 여행의 기억이다. 요즘처럼 업데이트가 빠르지 않아서 없어진 호스텔도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야간 열차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여자애와 즉흥적으로 독일에서 호텔 숙소를 쉐어하기도 했다. 숙소 예약을 제때 하지 못해서 결국 난생 처음 호스텔의 믹스룸에서 머무르게  된 날도 있었다. 무섭다며 2층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초조해 하고 있던 나는 트렁크만 입은 콜롬비아 남자와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독일 여자 2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보며 내가 참 바보같았다고 생각했다. 


비행기연착, 그리고 40일의 여행일정 모두를 뒤흔들어버린 그 경험은 내게 인생의 진리를 알게 해주었다. 그건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인생은 내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예상하지 못하는 그 우연이 나를 색다른 경험으로 이끌고 성장시킨다는 것이었다. 계획한대로만 내 인생이 흘러가야 된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자 인생이라는 것에 철저한 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여행으로 자아를 찾는다고 한다.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돈이 주어진 낯선 여행지에서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하게 된다. 두번다시 없는 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교회나 미술관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보다 허름한 로컬 카페에서 말이 안통해 손짓발짓해가며 어설픈 맛이 나는 커피를 시키고, 그 맛에 얼굴을 찡그리는 나를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주인 아저씨의 표정을 보며 다시 웃는 것을 내가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진짜 내 욕구를 찾는 시간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니 다시 기나긴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 작가는 호텔 침대를 볼때 느끼는 안도감에 대헤 이야기를 했다. 배낭여행자 신세일 때는 그 안도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멀쩡히 길을 걷는데 내 목을 풀스윙으로 내려치는 꼬마가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사람 목이 자기 발 밑으로 굴러왔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여행자를 만났던 남미에서는 많은 짐을 들고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무서울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숙소에 도착해 안전에 대해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침대에 눕는 그 순간의 안도감이란. 긴장감의 오르내림으로 내가 진짜 살아 있다고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어쩌면 나는 그 호르몬의 업앤다운에 중독이 되어 그렇게나 짐을 짊어지고 타국을 싸돌아다녔던 것은 아닐까 싶다. 


햇살이 머리위로 쏟아지며 보도블럭의 열기가 내 몸을 자글자글 익혀버리던 스페인에서의 그 어느날을 생각한다. 잡념이 내 머리를 꽉 채우고 있어서 내 몸의 신체 반응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순간과 대비되게, 더위에 아무 생각없어져 오직 내 몸의 감각에만 집중했던 그 순간이 눈물이 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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