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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커플라이프

신혼생활 1 - 먹고 사는 이야기

by 여름햇살 2019.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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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일어나서 아침밥을 해서 먹는다. 결혼 전이나 후나 아침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에는 이 문장 하나면 되지만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다. 결혼 전에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꺼내 해동하고 된장국(매일마다 재료가 다르다. 재료로는 시금치, 배추, 두부, 가지, 여러 버섯 종류, 애호박 등등이 있다)을 끓여서 먹었다. 결혼 후에는 아침마다 밥을 새로 짓고 가급적 새로운 국(2틀 연속 같은 국을 먹을 때가 더 많지만)을 끓여서 남편과 '함께' 먹는다. 

 

매일 요리를 하니 냉장고에 매일 다른 재료가 쌓이고, 그걸 보면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집에서 아침 한끼를 같이 먹는 일정이다보니 재료의 소진 속도가 빠르지는 못하다. 그리고 국이나 찌개는 왜 딱 2인분으로 떨어지지 않고 2.7인분 정도로 끓여지는 걸까. 그래서 결심한 것이 도시락싸기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보온도시락인가. 

 

라떼는 말이지, 좀 더 촌스러운 색의 그놈의 질 좋다는 일제 보온도시락만 있었는데, 요즘에는 이렇게 세련된 국내산(이라지만 제조국은 어김없는 차이나) 도 있구만 껄껄껄.

보온의 효과가 있다는 가방이라지만, 그렇게 보온력이 좋은 것 같아 보이진 않다. 국물류가 샐 일은 없겠구나.​

​하나는 밥통 하나는 국통(구별은 없다), 2개는 반찬통. 반찬통들은 보온이 안된다. 남은 밥과 국, 반찬을 싸기에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이다. 

 

그래서 이틀째 약국에서 도시락 까먹음. 맛있다. 중학생 시절도 생각나고 좋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시락을 싸다녀야지. 매번 약국에서 끼니떼우기만 했는데(믿을 수 없겠지만 세달동안 약국에 시리얼을 사다놓고 종종 먹었다. 성에 차지 않아 1인분량을 3번 그릇에 퍼담아야 했다), 이제는 제대로 된 끼니를 먹어야지. 책임져야할 남편이 있어서 아프지 않아야해.

​요건 1.5리터 보온 물병. 1.2리터를 사고 싶었는데 같은 모델 1.2리터보다 2,000원 싸길래 요걸 주문했는데 그냥 2,000원 더 내고 적은 용량을 주문할 껄 그랬다. 등산가서 컵라면 먹으려고 대용량으로 샀다. 

​그리고 선물받은 기프티콘이 너무 쌓여서 스타벅스에서 텀블러를 샀는데, 산지 1주일만에 플라스틱 뚜껑을 깨먹어서 한동안 텀블러 없이 지내다가 이번에 여러 보온물품 주문하면서 주문했다. 흰색 검은색 세트였는데 남편과 나 하나씩 써야지 하면서 샀는데, 생각해보니 애시당초 내가 기프티콘 긁어모아 스타벅스에서 텀블러를 산 이유가, 내가 잘 쓰고 있던 텀블러를 남편놈이 가져가서였다는걸 깨달았다. 내가 두개 다 쓸테다.

​주말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은 표정을 짓는 남편을 끌고 관악산에 올랐다. 

​세상 서글픈 남편의 뒷모습과

​세상신난 김초딩의 뒷모습. 

 

정상에서의 메뉴는 스낵면, 시작점에서 산 김밥, 그리고 집에서 깎아온 감. 냠냠냠. 밖에서 먹으면 뭐든 맛있다. 내가 요리해서 먹지 않으면 더 맛있다. 식후에는 믹스커피까지. 크흑. 나에게는 완벽한 주말이었다. 남편은 죽어났지만.


​굿투데이의 계절메뉴 애플시나몬실론티. 음청 맛있다. 고급진 맛이다. 

첫 개시. 메뉴는 밥, 생선찜. 진미채, 깻잎 김치. 이건 전날의 메뉴고 오늘의 메뉴는 밥, 김치찌개, 감자에그샐러드, 진미채. 진미채 없으면 밥을 안 먹는 인간이라 아침에도 먹고 점심에도 또 싸왔다. 진미채만 먹는 초딩이라고 남편이 놀려대는데......에헴...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산발인 상태로 돌아다니며 집안일(밖에서는 바깥일, 집에서는 집안일, 이건 뭐 놀팔자는 아닌가보다)을 하고 있었더니, 남편이 머리 자를때가 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머리 자를 때가 되지 않았느냐니, 지났지. 미용실을 마지막으로 갔던게 9개월전이었나..으흠으흠.. 그래서 오늘 출근하고 약국 문 잠깐 닫아놓고 미용실에 머리도 하러 갔다. 이 동네에선 처음 머리를 해본다.​

기분전환으로 앞머리도 냈다. 시스루 뱅이라는 남사스러운 이름을 꺼내지 못해 머리길이는 그냥 다듬기만 하고 앞머리좀 자르려구요.. 라고 했더니 디자이너분이 찰떡같이 내 맘을 알아차리시고 앞머리는 시스루뱅이요? 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네라고만 이야기했고, 부끄러운 단어를 내 입으로 내뱉지 않고서도 (왜 부끄럽냐면 이건 마치 한예슬 공효진 정도는 되어야 그런 단어를 자신있게 내뱉으며 주문할 수 있을 것만 같단 말이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서 매우 행복했다. 내 성질만큼이나 가마가 아주 또렷이 나서 의도치않게 계속 갈라져버리지만 내일 아침에 머리를 말릴 때 잘 말리면 되겠지. 신난다.

 

다들 결혼하니깐 좋냐고 물어보는데 좋다. 왜 좋냐면 재밌다. 왜 재밌냐면 나는 남편이랑 시덥잖은 장난치고 수다 떠는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사람인데, 그 시덥잖은 장난을 아침에도 치고 저녁에도 치니깐 재밌다. 남들, 아니 우리 부모님 앞에서도 안그러는데 이상하게 남편 앞에서는 우주 1등 개구쟁이가 되서 카카오프렌즈의 어피치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꾸 장난만 치고 싶다. 내가 치는 장난도 재미있고, 남편의 반응도 재밌다. 그래서 눈떠서부터 눈감을때까지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러면 좋은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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