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새 이모님이라고 하기에는 몇 달 되셨다.
커피를 좋아하게된 것은 2009년 여름방학때 유럽여행을 다녀와서부터다. 가난한 대학생이 배낭여행으로 갔던거라, 커피라고 해봤자 b&b나 호스텔에서 조식으로 딸려나왔던 싸구려 커피였지만. 그럼에도 두달간의 시간동안 나는 커피의 매력에 푹 빠지게되었다. 아니면 카페인 중독이 되었거나.
커피라고는 시험기간 잠을 쫓아내기 위해서나 마셨던 나였지만, 그 이후로는 커피에 많은 관심을 쏟았고, 그러고 나서는 핸드드립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돈이 많았다면 몇백하는 좋은 기계를 집에 들였겠지만, 비루한 자취방에는 핸드드립 도구들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그 이후 나는 꽤나 커피매니아로 혹은 카페인중독자로 커피를 즐겼다.
그러다가 커피를 줄이게 된 계기는 첫째아이의 임신이었다. 커피를 즐겨하게 된지 13년만이다. 매일 아침 눈도 제대로 뜨기전에 핸드밀에 고소한 원두를 넣고 드륵드륵 갈던게 나의 루틴이었는데, 그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니 차라리 그때는 하루에 한 잔 정도는 가볍게 마실 수 있었다. 진짜로 바뀐 계기는 출산 후 모유수유를 시작하면서다. 그때는 진짜 커피의 향 조차 맡을 일이 없었다.
혼합수유를 하다가 힘이 들어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 모유수유를 끊고 분유수유로 바꾸면서 다시 커피를 마실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이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였다. 여유롭게 원두 내려 마실 시간이 있다면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커피는 사서 마시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카페까지 갈 수도 없어서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병이나 캔에 담긴 커피를 잔뜩 사놓고 집에다가 쌓아두었다. 커피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음료가 된 기분이었다.
맛없는 커피만을 접하다다 캡슐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한창 캡슐커피머신 붐이 일어날때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너무나 멋진 대안으로 보였다. 남편에게 이야게를 하고 인터넷으로 열심히 알아본 뒤에 네스프레소 매장에 방문하고 이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당일에 캡슐커피를 넣고 내려본 에스프레소, 그리고 그 향기. 나의 지난 고된(?) 시간 덕에, 그 누구도 내가 느꼈던 황홀감은 느끼지 못했으리라. ㅎㅎ
둘째를 갖게 된 시점이라 하루에 두개 이상은 내려 마실일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 캡슐머신이 너무나 좋아졌다. 매일 닦고 청소하고 캡슐을 정리하는 날 보며 남편은 머신을 내 친구라고 부른다. 그 정도로 머신에 열정을 가지는데, 이것은 잊고 있던 나의 소박한 취미생활이 부활했기 때문이다. 육아만 있던 나의 삶에 드디어 온전히 나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런 친구와 당분간 작별을 해야한다. 출산을 하러 다시 친정에 내려가고, 약 3개월 정도 머무를 예정이다. 작별인사를 하기전에 나의 남편을 부탁해달라고, 오늘 부띠끄에 방문해서 캡슐도 잔뜩 구매해왔다.
안녕, 가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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