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고지가 보이는데? ㅎㅎ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나.
새벽에 도착한 꾸스꼬 터미널. 택시 기사들이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을 겹겹이 둘러싼다. 그래도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택시기사가 영어를 잘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나도 에스빠뇰은 젬병. 호스텔 주소를 확인하고, 택시기사무리를 쳐다봤더니, 그 중 한 명이 목에 걸고 있는 이름표 같은 것을 내민다. 뭔가 하고 봤더니, 인증받은 택시기사임을 나타내는 certi 같은 것으로 보였다. 의심스런 눈초리로 wild rover의 주소를 보여주었더니 뭐라고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 팔자에 꾸스꼬의 낯선 택시기사에게 납치당해 토막살인나는 기구한 운명은 없겠지 라는 심정으로(ㅋㅋㅋㅋㅋ) 택시기사를 따라갔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던 것 같다. 아니면 긴장된 상태라서 멀게 느껴졌던 건지. 여하튼, 호스텔에 겨우겨우 도착했다. 24시간 운영하는 카운터를 자랑하더니, 역시나 스탭이 카운터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라, 라고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웃으며 아블로 에스빠뇰?이라고 물어본다. 고개를 저었더니 다시 웃으면서 영어로 설명을 시작한다. 내가 예약했던 6인실은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야 체크인 할 수 있지만 8인실에는 지금 바로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12시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8인실을 달라고 했더니 바로 방을 안내해준다. 그리고 짐을 널부려두고 바로 2층침대로 기어 올라가 휴식을 취했다. (여담으로, 여행하다 보면서 느낀 것은 호스텔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단 한번도 호스텔에서는 짐을 도둑 맞은 적이 없다. 운이 좋았던 것이려나?)
누워는 있었지만, 또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은 오지 않았다. 누워서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면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잠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호스텔 구경에 나섰다. 라빠스에 있는 것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더 복도나 계단 같은 공용 건물은 더 크고, 객실은 더 작은 느낌이었다. 이 호스텔 특유의 분위기 답게, 빡세게 돌아다니는 애들은 아침만 먹고 숙소를 나서고, 그렇지 않은 애들은 빈둥빈둥 꿈쩍도 하지 않는다. ㅎㅎ 오늘은 나도 빈둥빈둥 모드. 바에가서 커피를 좀 마시고, 선배드에 드러누워서 햇살을 좀 즐겼다.
잉여를 즐기다가 나선 꾸스꼬 시내 구경. 꾸스꼬는 기대했던 것보다 예뻤따.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남미의 파리였다면, 개인적으로 꾸스꼬는 남미의 로마정도라고나 할까?
개팔자가 상팔자 ㅋㅋㅋㅋㅋㅋㅋ
활기찬 아르마스 광장.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보다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비율이 월등하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에까지 스며든 스벅커피.
광장을 조금 구경하고 투어 회사들이 즐비한 거리로 향했다. 삐끼들이 좀 많았는데, 그 중 가장 선량(?)해 보이는 아저씨를 따라 각종 투어를 예약했다. 그리고 각종 유적지의 입장티켓 역할을 하는 투어리스트 티켓 구매. 1시간만에 폭풍지출 ㅜㅜ 돈이 부족하여 추가적으로 인출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멍 때리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기.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은 이 곳의 단 하나의 단점은, 잡상인이 너무 많이 들러붙는다.
아르마스 광장 근처의 거리. 건물의 색이 참 예쁘다.
시내 자체가 하나의 유적지 같아서 돌아다니는 맛이 있었다.
걷다보니 발견한 골목. 돼지고기와 야채를 푹 우려낸 아도보라는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 늘어서있었다. 그럼 점심으로 먹어줘야지 ㅎㅎ
콩을 튀겨서 설탕을 묻힌 듯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전부리. 하나 씹어 먹다가 성치 못한 이빨 다 빠지고 페루에서 틀니 맞출 뻔...
그리고 나온 아도보. 그냥 뭐랄까. 깊은 맛이 있기는 하고, 얼큰한 맛이 있긴 하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꾸스꼬의 명물 12각의 돌. 별다른 표지만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절대 지나칠 수 없다. 사람들 틈바구니속에 끼어 사진을 찍었더니 이렇게 그늘이......
골목골목을 걸어다니는 재미가 있다. 이런 골목골목을 돌아 다닐떄는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생각났다. 물론, 피렌체만큼 골목골목을 돌아 다니는 재미도있다.
소년이 구경하고 가라며 나를 붙든다. 구경하는 시늉만 하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신기한듯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면서 하뽄이냐 치나냐 이래저래 질문을 늘어 놓기 시작하는데, 꼬레아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팔찌를 하나 구매하며, 꼬레아라고 확실히 각인을 시켜줬다.
새하얀 벽의 골목이 이국적이다. 다양한 매력의 꾸스꼬.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했던 도시.
너무 많이 걸어 다녀서 벤치에 다리 올려 놓고 쉬는 중. 근데 발이 아주 난민 수준이다. ㅋㅋㅋㅋㅋ 주인 잘 못 만나, 한 달 넘게 고생중인 불쌍한 발들.
그리고 드디어 첫 투어의 시작! 먼저 시내에 위치한 꼬리깐차(Qorikancha). 종교와 관련된 역사적인 장소라고는 들었는데, 가이드의 설명 중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돌에 대한 설명도, 매우 자세히 듣고 나름 감명 깊어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아무 생각 나는 것이 없네? ㅎㅎㅎㅎㅎㅎㅎㅎ 아이고, 이 핑계로 다시 갔다와야하나.
꼬리깐차에서 내려다 보는 꾸스꼬의 전경. 꾸스꼬는 정말 어디에서 바라보더라도 흠잡을 곳 없는, 예쁜 도시이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엽서 사진 작가 마냥 풍경 사진만 찍고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같은 투어에 참가했던 어떤 아주머니가 찍어 주셨다. 딸과 함께 투어에 참여 중이었던 그 페루 모녀는 내가 신기한지 계속 뭐라고 말을 건넸지만.. 난 스패니쉬가 불가능 할 뿐이고... ㅋㅋㅋㅋ
꼬리깐차의 투어가 끝난 다음으로 간 곳은, 꾸스꼬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삭사이우망.(Saqsayhuman) 발음 때문에 sexy woman 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기도 한 곳.
바위만 찍힌 사진으로는 돌의 크기가 별로 커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사람과 비교되게 찍은 사진을 보면, 바위 하나의 크기가 가늠이 된다. 꽤 넓은 지역에 이런 석벽들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지금의 것은 원래의 20% 규모만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잉카제국과의 싸움에서 이긴 스페인 군대가 80%의 돌들은 현재 꾸스꼬 시내의 건물들을 짓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사람들을 미니미로 만드는 석벽의 규모들.
우리 말고도 10그룹은 넘어 보이는 투어 무리들이 삭사이우망에 각기 흩어져 있었다.
저렇게 사람크기만한 바위들을 가져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쌓아 올렸다니. 볼수록 놀랍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보다 더 좋았던 것은 이렇게 붉은 기와의 꾸스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이에 위치한 것이 더 마음에 드는 삭사이우망. 라빠스의 전망대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시내의 모습이 펼쳐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구름의 그림자.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곳에 위치한 꾸스꼬. 이렇게 구름의 그림자를 구경 할 수도 있다.(!)
어딜가나 있는 야마와 전통의상의 주민들.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는 예수상. 꼬르꼬바도의 예수상이 생각났다.
그리고 벤에 다시 올라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삭사이우망으로부터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껜꼬(Q'enqo). 껜꼬는 'Zigzag'라는 의미라고 한다. 가이드 아저씨를 따라 지그재그 모양으로 유적지를 돌아 다니는데 사실....... 재미도 감동도 없다. ㅜㅜ 잉카 역사 공부 좀 하고 왔으면 더 재미있었을까?
제물을 올려서 의식을 치르던 곳....으로 기억되는데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걸까?
막상 껜꼬보다, 껜꼬의 구경을 끝났을때 돌아보는 주위의 풍경, 해가 지면서 풍경이 붉게 불들어가는 그 전경이 더 좋았다. 전날 뿌노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와서였는지, 노을을 바라보니 진짜 하루가 마감 되는 기분. 2일만에 첫 저녁을 맞이하는 기분. 길었던 하루를 지내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동한 곳은 뿌까뿌까라(Pukapukala). 붉은 요새라는 의미라고 한다.
요새라고 하기엔 너무 낮은 것 아닐까? 삭사이우망정도 되야 전투를 벌이지 ㅎㅎ
뉴욕에서 온 크리스티나. 이날 나와 함께 투어를 구경한 친구. 실제로는 샌프란시스코가 고향이고, 학교가 뉴욕에서 있었다고 한다. 간호사로 꾸스꼬에는 의료봉사를 왔다고 한다. 평일의 낮에는 꾸스꼬의 달동네 같은 곳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고, 오후에는 스패니쉬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여행을 다니고. 왜 스패니쉬를 배우냐고 물었더니 미국에는 생각보다 영어를 쓰는 사람보다 스패니쉬를 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자기도 학생때 실습을 하다가 언어의 벽을 느껴, 본격적으로 일을하기 전에 졸업 후 바로 이곳으로 어학연수 겸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고 한다.
내가 영어를 제대로 이해를 못한건지, 미국은 그런게 가능한건지, 자신의 최종 목표는 클리닉을 오픈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간호사 면허로 그것이 가능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다른 클리닉이란 것이 있는건지. 여하튼, 모태미국인 크리스티나가 외국에서 영어 배우고 온 것 아니냐며, 나의 영어 실력을 칭찬했으니(다니엘과의 하드 트레이닝의 효과가 정말 대단했던 듯, 지금은 완전 벙어리 수준인데 ㅎㅎㅎ) 내가 제대로 듣고 이해한 것은 맞는 듯 한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오늘의 마지막 관광지 땀보마차이(Tambomachay). Inca's bath의 의미라고 한다. 벤에서 내려서 수로를 볼 수 있는 곳 까지 걸어 올라간다.
괴물의 눈과 입같아 보이는 것은 나만? ㅎㅎㅎ 이 곳도 종교의식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는 하는데 자세한 내막은 또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생각나는 것은 꾸스께냐라는 페루의 맥주가 이곳의 물로 만들어 진다는 것 말고는.......(역시 술...)
그리고 기념품 판매 장소에 들렀다가 벤은 시내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발견한 중국 음식점.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고국의 음식(?)이 그리울 때 흔하게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향수를 달랜다고 하는데, 내 눈에 처음 발견된 중국요리 음식점. 배도 고프고, 숙소에 가보았자 햄버거 종류만 있을 것 같아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했다!
세트메뉴로 매우 저렴한 것을 주문했는데도, 치킨 한조각과 볶음밥에 완탕까지 나온다. 엄청나게 많은 양. 종업원에게 주문을 하는데, 너무나도 당연히 중국말로 나에게 물어본다. 3초간 멍떄리며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배웠을떄 제대로 배워둘껄 그랬나 등등의 심란함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고, 나의 표정을 읽은 종업원은 스패니쉬로 주문을 받았다.
식사를 끝내고 호스텔의 객실로 돌아 왔더니, 내 밑의 침대칸을 사용하고 있는 훌리오가 나를 엄청 반긴다. 스페인에서 업무차 오게 된 훌리오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자꾸 나보고 파티, 파티 하며 오늘 밤을 세며 파티를 즐겨야 된다고 한다. ㅋㅋ 그의 익살스러움이 날 즐겁게 했지만 난 이미 2일간의 강행군으로 녹초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내일 놀자며 그를 달래고 샤워후 침대에 기어 올라가서는, 바로 기절해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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